“미국은 핵우산부터 접어라”
  • 정리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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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재단 셀리그 해리슨 연구원 … 북한 세미나서 ‘선 양보 후 핵사찰’ 제안



 북한 핵 문제 해결을 향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미 국가안보회의가 미국의 북한 정책을 수정하자고 대통령에게 건의한 11월16일 워싱턴에서는 ‘미국의 북한 정책’을 주제로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 · 북한 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갈루치 차관보와 카네기 평화재단 셀리그 해리슨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정책변화 배경을 소상하게 밝혔다. 셀리그 해리슨의 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북한 지도부 내에는 외교 및 국방 정책을 둘러싼 폭넓은 논쟁의 일부로서 핵문제를 놓고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다. 특히 지난 5년간 노동당 내에서는 핵무장 여부를 놓고 치열한 정책 논쟁이 벌어졌다. 한 · 미 · 일 3국은 이 논쟁이 유리한 방향으로 낙착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뜻한 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우선 개혁파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기존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두개의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한다. 하나는 경제개방, 특히 한 · 미 · 일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일 중국식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과 군축협정을 맺어 국방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개혁파가 서방측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핵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반면 군부와 군산 복합체를 기반으로 하는 강경파는 한 · 미 · 일이 독일식 흡수통일을 획책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가득차 있다. 이들에게는 핵무기야말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미국은 이미 55년 1월 래드포드 장군의 발언을 통해 “미국은 북한 재공격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항하여 북한은 63년 소련에 핵무기 개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독자로 핵 개발에 착수했다. 핵무기는 끝없는 재래식 군비경쟁에 비해 훨씬 경제적인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체 경제’ 아래서 핵 프로그램은 좀처럼 완성되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한반도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와 팀스피리트 훈련이다. 그런데 91년 9월27일 부시 대통령의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으로 강경론의 한 근거가 사라졌다. 이후 북한 지도부 내에서는 새로운 논쟁이 시작됐다. 91년 12월의 노동당 중앙위 회의에서 정점에 달한 이 논쟁에서 개혁파는 ‘조건부 승리’를 거두었다. 내가 만난 북한 고위층과 외교관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 회의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 주었다. 회의에서 개혁파는 ‘핵사찰을 수용하면 미 · 일의 경제 · 외교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강경파는 그것이 ‘실현불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핵개발 (포기가 아니라)중단에 동의했다. 당중앙회의가 끝난 뒤 북한은 미국측에 핵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북한은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핵사찰을 수용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했다. 그리고 92년 1월 아놀드 캔터 정무차관과 김용순 노동당 서기의 역사적 회담이 열렸다.

북한, IAEA를 미국 앞잡이로 인식
 이 무렵까지 한 · 미 · 일은 대체로 북한 핵 문제에 잘 대처해 왔다. 그러나 92년 이후 지금까지의 북한 정책은 자기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는 정보가 확인된 88년 이래 한 · 미 · 일 3국은 당근과 채찍 정책을 구사해 왔다. 그런데 김용순 · 캔터 회담 이래 모든 양보를 거부하고 강경 일변정책으로 돌아서버렸다. 북한에서 개혁파가 주도권을 잡도록 도와준 것이 아니라 압박을 가해 강경파의 득세를 초래한 것이다.

 92년 6월 북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첫번째 핵사찰이 이루어질 무렵 리스카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 정부와 서전 협의도 없이 ‘팀스피리트 재개’를 발표했다. 북한 지도부는 즉각 반응을 보였다. 북한의 개혁파는 낯을 들 수 없게 됐고 ‘협상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하게 됐다.

 게다가 92년 7월22일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미 하원 외무위에 출석하여 발언한 사실은 북한으로 하여금 이 기구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수하라는 인상을 갖게 했다. 사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일개 회원국 의회의 한 기구에 출석하여 증언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블릭스 총장이 미국 의회에서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북한을 맹공하는 것을 보고 북한은 그가 북한을 고립시키고 김일성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전략을 고분고분 대행하는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믿게 됐다.

 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결과와 자기들이 제출한 보고서 사이에 발생한 오차는 서로가 사용하는 컴퓨터 코드 및 분석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재토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블릭스 총장은 이를 묵살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에 북한이 핵안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북한 강경파를 크게 자극했다.

 나는 북한 및 미국 관리들과의 면담 결과 ‘북한은 애초에 인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 · 미 · 일 3국이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고 경제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관계 개선을 보장하며 흡수 통일을 부인한다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적 핵사찰을 받을 것이다’는 전제를 세우게 됐다. 북한 핵 문제가 점차 꼬여가기 시작하고, 북한에서 강경파가 정책 주도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했다. 비록 클린턴 행정부의 태도가 좀더 탄력적인 것이긴 하지만, 두차례에 걸친 갈루치 · 강석주 회담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93년 6월의 1차 회담에서 미국은 전에 없이 북한측 주장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정치 · 경제 관계 정상화라는 핵심 문제는 여전히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7월의 제2차 회담에서 미국측은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건드렸다.

 지금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세가지 정책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 김영남 외교부장 회담을 통해 핵문제, 정치 · 경제 관계 정상화, 군축을 논의해야 한다. 전면적 핵사찰을 수용하는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국내 미군기지 사찰에 대한 미 · 북한 고위급 협상이 없이는 남북사찰 협상도 이루어질 수 없다.

 둘째, 한국은 북한의 흡수통일 우려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보장책은 북한이 요구해온 상호 군축이다. 북한은 GNP의 21.3%(한국은 4.4%)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북한은 한국이 북한 경제를 고갈시키려고 엄청난 규모의 군비경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김영삼 정부의 통일 방안이 흡수통일을 겨냥한다고 믿고 있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하게 하려면 평등의 원칙에 따라 미국의 핵우산 정책도 버려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재래식 전력으로 공격해오면 핵무기로 반격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미 태평양 잠수함대가 갖춘 핵미사일은 한반도 유사시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너희들은 핵무기를 버려라. 그러나 우리는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 때문에 버릴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래 가지고는 결코 북한으로부터 핵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여 이를 사용하려 할 경우 우리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꿔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미국 · 중국 · 러시아가 참여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는 재래식 군비 통제와 핵 군비 통제가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미국이 핵우산을 거둬들일 경우 곧바로 휴전선에 전개된 북한군의 감축 및 재배치 문제가 제기된다. 북한은 87년 이래 매년 전향적인 군축방안을 제의해 왔다. 한국측은 90년 9월 1차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이같은 제안을 인정하지 않았다. 1차 고위급회담 기조연설에서 강영훈 총리는 다섯가지 원칙을 제시하여 남북한 군축의 길을 여는 듯했다. 그러나 구체적 협상은 신뢰 구축 이후로 미뤄졌다.

팀스피리트 운련은 신뢰구축 장애물
 냉전시기 동 · 서 유럽의 재래식 전력 군축협상을 주도했던 제임스 굿비는 “남북한 사이에는 예상보다 공통점이 많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측은 내용상 대단히 유사한 구체적 신뢰 구축 조처들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공지전(air-land battle) 전술을 채택하고 있는 팀스피리트 훈련이 핵전쟁 연습이라며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미국은 이 훈련을 무기한 중단함으로써 커다란 장애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측이 군비통제에 나설 수 있을까. 군부와 군산복합체는 북한의 군축방안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북한에도 강경파와 연계된 군산복합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경제 문제 때문에 군축이 불가피하며, 군축 문제는 이미 당내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 비해 한국은 군축의 부담이 덜한 편이다. 고도성장 덕분에 GNP상의 비율은 높이지 않으면서도 고액의 국방비를 조성할 수 있었다. 또 주한미군의 존재도 군축을 늦추는 요인이다.

 그러나 국방비 감축으로 한국은 중 · 저 수준 계층에 상당한 혜택을 줄 수 있다. 이같은 요구는 좌(경실련)와 우(전경련)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군축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부 관료들이 아니라 △군수산업가 △군부 엘리트 △통일된 뒤 일본 ·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군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경파 전략가들이다.

 북한은 한 · 미 · 일 3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지 않는 한 결코 핵선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교관계 수립의 전단계로 연락사무소 설치 △평화협정 체결 △남북한 군축으로 북한의 국방비 감축 △적성국 법(Enemy Act)에 따른 대북한 무역 · 투자 규제 폐기 △미국의 북 · 일, 남 · 북 경협지원 △경수로 건설 지원 △북한의 국제기구 진출 지원 △북한의 APEC 가입 지원 △미국 기업의 대북 합작투자 장려 △남북한 군축 진전에 따른 미군 철수 고려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처지에서 이는 터무니없는 대가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자기의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키려면 이 정도의 비용은 지불해야 할 것이다.
정리 · 韓宗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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