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대‘평양수복’
  • 김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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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붙은 위기 한·미 국방장관 최근 발언 무엇을 뜻하나

이병태 국방부장관은 3월23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정부가 유사시 무력통일 계획을 갖고 있음을 최초로 공개했다. 또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장관의 무력통일 발언과 관련해 평양 점령 등을 포함한 한·미연합사의 ‘신작전계획 5027’에 의한 도상 연습을 지난해 처음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사저널》제218호와 제227호의 커버 스토리 기사 내용들 (△북한의 선제공격 때 역습 전략으로 평양을 점령하는 계획이 포함된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OPLAN 5027’의 최초 확인 △한·미양국 정부의 평양 점령 이후 한반도 재편 절차를 다룬 ‘정치·군사연습’의 최초 확인)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장관은 이 날 ‘신작전계획 5027’이라는 명칭을 거론하며 “현재의 한·미 연합방위전략에는 적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응징보복 전략개념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이장관은 또 “북한이 서북 다섯 도서 또는 기타 특정 지역에 도발해올 경우, 한·미 연합 또는 한국군 단독으로 강력한 응징 보복을 실시하고, 도발 양상에 따라서는 이를 통일 전역 수행의 기회로 연계하는 전략개념을 세우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전역(戰役)’이란 주어진 시간과 공간 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일련의 군사작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장관이 말한 통일 전역이란 북한이 선제 공격을 해올 경우 군사력에 의한 무력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대외적으로 고수해온 평화통일 원칙을 벗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쪽의 ‘불바다’ 발언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민감한 시점에서 나온 이장관의 발언은 다분히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즉 ‘불바다’ 발언으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을 불식하는 한편으로 북한의 오판에 대해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대북관계에서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군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군에서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구조에서 군의 역할이 제한돼 있고, 팀스피리트 훈련 실시 및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문제 등이 군사적 고려보다는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이장관의 발언은 ‘서울 불바다’에 응답한 ‘평양 수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측 독자적 수복 계획 암시
 ‘서울 불바다’ 발언이, 같은날 열린 국회 외무통일위에서 한승주 장관이 말한 대로 “벼랑에 몰린 약자의 비명”이라면, ‘평양 수복’을 의미하는 이장관의 ‘응징보복’ 및 ‘통일전역수행’ 발언은 한·미 연합군의 전쟁수행 계획인 ‘OPLAN 5027’ (이하 작계 5027)에 의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북한이 도발해올 경우 “한·미 연합 또는 한국군 단독으로 강력한 응징보복을 실시한다”는 이병태 장관의 발언 대목이다. ‘한·미 연합’으로만 표현해도 될 것을 굳이 ‘한·미 연합 또는 한국군 단독’으로 밝힌 것은 한·미 연합 전쟁 주축계획인 작계 5027과는 별도로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준비해 놓고 있는 수복계획을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작계 5027은 본디 미8군 작계(한국방어계획)였는데 주한미군 철수로 78년 한·미연합사가 작계 (‘CFC OPLAN 5027')로 변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작계가 그렇듯이 작계 5027 또한 지금까지 전쟁 교리 개발 및 도상 훈련, 실병 기동훈련 등을 거쳐 몇차례 수정·발전해 왔다. 그중에서도 팀스피리트 훈련은 작계 5027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연습 공간이 셈이다. 특히 팀스피리트 훈련 기간에 포항 앞바다에서 전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륙훈련은 사실상 유사시 북한의 허리(원산 또는 평양)을 겨냥한 것으로 북한측은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팀스피리트가 ’북침을 전제로 한 공격 훈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이같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전·현직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70년대까지만 해도 작계 5027의 골자는 북한이 공격해 오면 불가피할 경우 일단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했다가 미군 증원군이 도착하면 반격에 나서 실지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 이후 북한군을 서울 이북에서 격퇴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고 80년대 들어서는 미 육군에서 개발한 공지전(Air Land Battle) 개념과 적 후방을 타격하는 종심공격 전술을 도입한 공세적인 방어계획으로 바뀌었다. 무기체계 발달을 토대로 80년대초 미 육군 교리발전사령부가 개발한 공지전 개념은, 종심공격과 전술핵을 두 축으로 한 작계 5027의 핵심 요소로서,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군의 작계에 도입된 뒤 한반도에는 83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통해 그 개념이 처음 선보였다.

 평양측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 유달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주한 미군 핵에 정통한 미국의 피터 헤이즈 박사에 따르면, 84년에 실시한 팀스피리트 훈련에서는 전방에서 ‘크로스 플로트(Cross Plot)’작전이 시도되었다. 헤이즈는, 이 작전은 비무장 지대가 전선이 되는 상황에서 북에 대한 공격을 상정한 공중기동작전을 포함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이 때도 작계 5027은 수정·변경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작계의 골자는 △전쟁 발발 즉시 특수부대를 북한에 투입하고 △비무장지대에서 방어전이 5~6일 계속된 뒤에 한국군이 북한의 해안 방어선을 점거하고 △그 다음에 한국군 비무장지대 북방 한계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군측 계산으로는 2주 만에 평양에 도달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공세적 방어전략이 구체화해 작계 5027에 공식으로 반영된 때는 87년으로 보인다.

89년부터 ‘평양 진격’으로 목표 변화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한국군 일부 장교들은 미군의 공지전 독트린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어느 선까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정확한 목표가 서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말업 전 3군사령관(예비역 대장)에 따르면 이같은 작계의 수정·변경에 따라 군의 도상 훈련도 89년부터는 평양까지 진격해 상황이 종료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작계상의 목표와는 달리 그전까지 통상 휴전선까지의 실지회복 단계에서 상황이 종료되는 훈련에 불만을 제기해온 한국군의 입장이 반영된 셈인데, 도상 훈련상의 ‘평양 진격’목표는 현재까지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현재 5단계로 설정돼 있는 작계 5027의 핵심 내용은 평양을 점령해 고립시키고 북한 정권을 무력화해 궁극적으로 군사적 통일을 이룬다는 단계로까지 발전해 있다.

 이를 단계 별로 보면 △1단계(전쟁 이전)에서는 전쟁 징후가 보이면 미국 본토에서 신속전개억제전력(FDO)을 한반도에 배치해 전쟁을 예방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2단계(거부)에는 서울 이북 지역에서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고 북한 후방의 전략 시설을 파괴한다.

△3단계(격멸)에서는 북한의 주요 전투력을 격멸하고 전선을 돌파해 북진하면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이 때부터 북한 주민에 대한 선무 및 피난민 대책 등 민사작전도 병행한다.
 △4단계(고립화)에서는 평양을 고립시켜 정권을 무력화하고 군사분계선 이북 점령지역에 대한 군사 통치를 실시한다. 중요한 점은 특히 이 단계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 지역 통치 절차 및 방법을 둘러싸고 중대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견해 차는 북한의 법적 지위를 헌법이 일시 정지된 수복 대상 지역으로 보는 한국과, 국제법에 의한 점령 대상 지역으로 보는 미국의 기본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시사저널≫ 제227호 참조)

 △5단계(종전 이후)는 전쟁을 끝낸 뒤의 상황으로, 국경선까지의 진격 여부에 관계 없이 평양·원산·신의주 등을 고립시키면 북한 정권이 사실상 붕괴해 한국 주도하에 통일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중국의 보호 아래 중국 국경선을 넘어가 망명 정부를 세울 경우 등의 변수가 예상되고, 또 한반도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력 행사를 꾀하는 미국측이 나름대로 ‘한반도 재편 절차’를 예비해 놓고 있어 통일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이같은 마찰은 사실상 위기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전쟁 개입 여부에서부터 비롯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최근 나온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의 강경 발언이다. 페리 장관은 3월30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의 대가를 치르는 상황이 될지라도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신문에 따르면 페리 장관은 회견에서 패트리어트 추가 배치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군사 조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늘 미국이 취하고 있는 정책과 전략 들은 북한을 도발시키는 위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뒤, 그러나 지금보다 2, 3년 뒤의 더 큰 재난보다는 지금 그러한 위험에 직면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페리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강온 양면 전술적 측면의 하나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자국의 국가 이익만을 추구하고 타국의 민족 생존권을 무시하는 발상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더욱이 페리 장관은 부장과 시절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일부 결함이 있는 전투기용 방해전파 발사기를 팔기 위해 한국 정부에 구매압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최근에도 미군에 배치되는 패트리어트는 미군 기지와 서울을 보호하는 것일 뿐 서울 이남의 대도시들을 보호하려면 패트리어트를 추가로 구입할 것과 아파치 헬리콥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공격용 무기를 한국이 구입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전쟁 위기설은 ‘핵문제와 연계’서 비롯
 그러나 미국 국방장관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전쟁 불사 발언’은 “정부의 일관된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이며, 핵문제로 인해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방지하고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라고 밝힌 이병태 국방부장관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설정한 핵무기 개발 저지와 전쟁 방지라는 두 목표는 서로 상충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전쟁 불사’라는 미국측 시각은 기본적으로 평화적인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라는 목표에 반하는 것이다.

 이병태 장관도 밝혔듯이 현재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제재 압력과 경제난 그리고 체제 유지라는 3중고에 의한 대내외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으나, 현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도발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으로서는 체제 유지와 생존을 위한 절대절명의 명제인 핵개발을 미국과 함께 막아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결국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전쟁 위기설은 핵문제와 전쟁 위기를 연계시킨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도발 위협이 고조될 때마다 공개적으로 핵 사용 의지를 천명해 왔다. 미국의 이러한 자극은 자신의 왕국을 체제 위협으로부터 온전하게 보존하려는 자존심 강한 김일성 주석이 오히려 핵개발에 집착하도록 한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의 핵카드는 미국에 의해 자극 받은 측면이 있고 ‘OPLAN’이 ‘서울 불바다’에 맞서면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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