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검은 구름 한반도서 걷힌다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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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 전술핵 폐기 선언 …군축·통일 새 전기 北, 핵사찰 수용하면 남북한 교차승인 빨라질 듯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미군의 전술핵 폐기를 골자로 한 지난달 28일의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선언은 한반도 안보환경은 물론 향후 남북한 관계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핵은 지난 53년 한국전 종전 이후 단순히 대북한 전쟁억지력 외에도 기존의 남북관계에 일종의 ‘정치적 핵’의 성격을 띠어왔다. 북한은 총리회담을 비롯한 각종 남북회담에서 주한미군과 핵의 철거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으며 최근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핵사찰 수용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왔다. 바로 이 ‘핵고리’가 부시의 선언으로 끊어지게 된 상황에서 북한 은 물론 한국 정부도 군축과 통일을 포함한 남북관계 향방의 전기를 맞은 것이다.

북, 남북대화·핵사찰 기피 명분 사라져
 주한 지상핵의 철수로 짜여질 대차대조표는 일단 북한에 불리한 상황이다. 주한 지상핵의 철수가 명백해진 만큼 북한은 더 이상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 요구를 피할 명분이 사라졌다. 또한 주한미군의 핵문제로 그 동안 교착상태에 빠진 총리회담에서도 한층 신축적 태도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남한의 경우 핵철거로 인한 안보공백이 우려되긴 하나 유사시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주한 미2사단이 여전히 배치돼 있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놓여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는 없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핵은 미국 정부의 ‘시인도 부인도 않는다’(NCND)는 정책 때문에 확인되지 않았으나 1백50~1천여개의 전술핵 배치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달리 핵에 관한 여하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해온 정부는 북한의 공세에 항상 수세적 입장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부시선언으로 정부는 적어도 핵문제에 관한 한 앞으로의 남북협상에서 북한과 대등한 입장에서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앞으로 정부가 미국정부와 협의를 거쳐 “한반도에 핵이 없다”는 사실을 내외에 공표하게 되면 핵에 관한 한 자주적 입장에 설 수 있게 된다.

 한편 부시선언은 현재 국제적인 핵사찰 수용압력에 직면해 있는 북한에 대해 심각한 정책상의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핵이 철거될 경우 북한의 핵사찰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란 김용순 노동당비서겸 국제부장의 발언에서 엿보이 듯 일단은 부시선언을 반기고 있다.

 문제는 주한지상핵 철수가 곧 북한의 무조건적인 핵사찰수용으로 이어지겠느냐 하는 점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핵무기의 불사용까지 담보하는 협정을 맺자고 촉구한 바 있다. 또한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안은 지상은 물론 영해와 영공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북한은 총리회담이나 대미접촉에서 지상핵 뿐만 아니라 영해 및 영공을 포함하는 전면적인 한반도 비핵지대화안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주장은 한국을 여전히 핵우산 아래 두겠다는 미국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돼 주한 지상핵철수 이후의 전망이 반드시 밝지만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이 더 이상 주한미군의 핵을 빌미로 남북대화와 핵사찰을 기피할 명분이 없어진 상황에서 일단 군축을 포함한 남북대화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이 그 타개책으로 과도한 국방비를 삭감하는 것 외에 다른방도가 없다는 점에서 군축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문제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이 “북한으로선 경공업 및 소비재 생산에 자원과 노동력을 집중시키려면 군축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북한은 지난 30년 이상 무려 2백40차례에 걸쳐 군축회담을 수정, 제의해왔다. 북한은 작년 5월 △신뢰조성방안 △병력감축 △외국무력(주한미군)의 철수 △군축 이후의 평화보장을 골자로 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내놓았으나 최우선 해결과제로 주한미군의 핵문제를 꼽았다.  즉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 핵무기 철거와 같은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측의 교류에 바탕한 신뢰구축방안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해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린 3차례의 남북총리회담은 겉돌았다.

총리회담 질적 변화 예상
 따라서 ‘핵고리’가 풀린 상황에서 남북총리회담도 질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태우 대통령이 10월22일부터 평양서 열리는 제4차 총리회담에서 “한반도 핵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주목된다. 북한문제 전문가 金南植씨는 “남북은 앞으로 총리회담에서 노대통령이 유엔에서 밝힌 평화통일 3원칙에 따라 군축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한반도 핵철거의 영향은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 중국 소련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장 핵철거가 가시화되고 북한이 이에 상응해 핵사찰을 수용하면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도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도 일단 북한이 핵사찰 수용을 받아들일 경우 현재의 참사관급 외교접촉의 수준을 대사급으로 격상하는 문제를 고려하는 등 적극적인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일본, 북한-미국 사이의 관계정상화가 이뤄질 경우 남북한 교차승인은 자동으로 이뤄지게 된다.

 대내적으로도 주한미군의 핵철수로 인해 야기될 안보공백을 두고 정부도 무기현대화 계획을 포함한 전면적인 국방정책의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한 지상핵이 철수돼도 언제든 핵탑재가 가능한 F-16 전투편대를 갖춘 제7전술공군사령부(오산 소재)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는 측면에서 남한은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권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전투원의 철수가 끝나고 2단계 조정기간(93~95년)이 눈앞에 닥치는 등 주한미군의 위상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군축협상에 대비한 종합적 군축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제 주한 지상핵의 철수가 기정사실화 됨으로써 그동안 이 문제를 두고 공세적 입장을 취해온 북한으로 공이 넘어간 셈이다. 만일 북한이 주한 지상핵 철수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 상황은 종전보다 긴장된 국면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노대통령이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유엔안보리 결의 등을 통해 강제핵사찰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심상치 않다. 또한 미국 정부도 지상핵 철수를 기정사실화하되 이를 북한의 핵사찰과 연계시킴으로써 반대 급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계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주한지상핵 철수 카드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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