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病’고쳐야 한다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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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고위급회담 결과 낙관적… 정치적 이용 말아야

李東馥 남측 대변인의 평가대로 “소중하고 역사적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제4차 남북한 고위급회담은 5차회담에서 담길 내용에 따라 그 그릇의 모양이 정해지게 됐다. 그런 만큼 정부는 오는 7일부터 1주일 간격으로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갖고 북한의 거부반응이 강한 불가침 보장장치 7개 조항과 교류협력 실천방안 10개 조항에 대해 우리측 기본입장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유연한 협상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5차회담에서 좋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4차회담 때 남북이 합의한 4장으로 구성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판문점 실무회담의 성패와는 관계없이 12월10~13일 서울에서 열릴 5차회담에서 그 내용이 채워지게 된다.

남북한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3일밖에 안되었는데도 5차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작업은 시작된 느낌이다.

지난 30일 열린 미 국무부 리처드 솔로몬 아시아 태평양 담당차관보와 張萬淳 외무부 제1차관보의 회담을 필두로 11월중으로 예정된 한미 외무장관회동, 11월21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제23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와 한미 합참의장이 주재하는 양국 군사위원회(MCM), 12월2일 있을 盧泰愚 ·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양국은 남북 고위급회담에 주요 이슈로 제기된 한반도 핵 및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관한 정지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4차회담이 끝난 이틀 후인 지난 26일 한 정부 당국자는 이같은 일련의 접촉을 계기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전면철수함과 동시에 ‘한반도 핵부재’ 또는 ‘한반도 비핵화’를 공표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한 팀스피리트 훈련도 내년에는 그 규모를 30% 정도 축소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번 회담 결과는 11월초 북경에서 열릴 제5차 조 · 일수교협상 때 북한측의 입장을 유리하게 해줄 것으로 보여 북한이 1백억달러에 달하는 대일 보상금을 청구하리라고 관측자들은 예상한다. 비록 ‘5차회담에서의 기본 합의서 도출’이라는 전제가 있기는 하나 4차회담을 통해 남북대표단은 경제협상의 가능성까지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두번이나 연기(2월에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8월에는 콜레라 전염을 이유로)한 끝에 10개월만에 열린 4차회담에서 남북한이 명칭 형식 구성에 합의를 본 것은 양측 3인(남측 : 宋漢虎 林東源 李東馥, 북측 : 崔宇鎭 白南俊 金永哲)으로 구성된 실무회담에서였다. 우리측은 “그동안 그들의 주장을 이미 다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북한은 나름대로 이 회담에서 기본선언 대신 조약형식의 합의서를 만들고, 불가침문제를 화해문제 다음 의제로 삼고, 핵과 팀스피리트 문제를 협상과 연계하지 않고, 남한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겨냥한 법칙 · 제도적 장애의 제거를 요구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남측이 주장한 ‘이산가족 문제’ ‘파괴 · 전복 행위 포기’를 받아들이는 등의 뚜렷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이같은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5차회담 전망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평화체제 구축, 언론개방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 3통(통행 통신 통상)을 통한 교류, 상주연락소 설치, 핵문제, 팀스피리트 등의 현안이 풀리기에는 양측의 시각 차이가 크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5차회담을 낙관하는 사람들은 다른 한편 앞으로 우리측이 펴보일 양보의 폭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3차회담 때까지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던 6공정부가 5차회담 때 정치적 목적으로 북방정책과 남북대화를 연계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6공 치적의 하나로 삼고 있는 정부가 “고위회담이 성사되면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북측 입장을 염두에 두고 양보의 폭을 지나치게 넓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회담 대표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통일과정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한 것은 “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李相禹 교수(서강대 · 국제정치학)는 “정부가 ‘정상회담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북한이 헷갈리지 않도록 한반도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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