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안 터진다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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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가상 시나리오로 분석해본 제2 한국전쟁

“199○년○월○일 ○○시. 동해 공해상에 정박중인 미 제7함대의 핵항공모함으로부터 발진한 수 미상의 F-14 톰캣기와 괌기지에서 출격한 B-52 폭격기가 야음을 틈타 핵시설이 밀집해 있는 북한의 영변 일대에 융단폭격을 가한다. 북한 핵시설 폭격이 한반도의 전면전으로 발전해서는 안된다는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사전묵계에 따라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평시와 전시의 중간 경계령인 데프콘-3(Defcon-3) 상태에 돌입하되 한국군은 미?북한간의 교전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불과 수분 만에 기습공격을 끝낸 미국의 폭격편대는 북한의 반격이 있긴 해도 별 피해 없이 모함과 기지로 귀환한다.

 기습공격을 받은 북한은 동이 트자 즉각 전투기 편대를 미 항모를 향해 발진시키는 한편 최신예 스커드미사일로 사정권 내에 있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를 공격한다. 그러나 상당한 외부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스커드미사일의 파괴능력에 한계를 느낀 북한은 이번엔 치명적인 생화학무기를 장착한 스커드미사일을 서울 등 인구밀집 대도시를 향해 발사한다. 한국은 이를 사실상의 남침으로 규정하고 북한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다. 주한미군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한반도는 제2의 한국전쟁 불길에 휩싸인다.”

강제 핵사찰 결의??가 시나리오 서막
 이상은 국제핵사찰 압력을 끝내 무시한 채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려는 북한에 대한 온갖 비군사적인 국제적 제재가 실패로 끝났을 때 미국이 택한 최악의 대북한 시나리오이다. 물론 제2의 한국전쟁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지해야 되겠지만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최악의 경우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한반도를 또다시 전쟁의 비극으로 몰고갈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전쟁시나리오의 서막은 일단 유엔에 의한 대북한 강제 핵사찰 결의안이 채택됐을 때부터 시작된다. 핵전문가인 金星勳 박사는 “강제사찰의 경우 피검사국이 사찰단원에게 신변 위협을 가한다면 이는 사실상 국제기구에 의한 군사적 선택을 가능케 해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사찰을 받는 당사국이 제공한 1차적 자료에 근거해 사찰을 실시하는 일반검사와는 달리 강제사찰은 ??의심나는 곳이면 어디든지??사찰할 수 있으며 피사찰국이 이에 불응할 경우 곧장 군사적 제재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지난 8월 강제핵사찰을 당한 이라크의 예를 보자. 미국은 걸프전에서 패배한 이라크가 국제핵사찰 단원을 억류하는 등 신변의 위협을 가하자 무장헬기까지 동원해 그들의 신변을 경호했다. 만일 무장헬기에 이라크측이 군사적 행동을 취했더라면 곧바로 미국 등의 군사대응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제핵사찰이 실행단계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군사적 긴장은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제재에 나설 경우 어떤 군사적 선택이 있을 법한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 직접 공격에 나서는 경우 △걸프전처럼 미국의 주도 하에 다국적군을 동원하는 국제연합군 형태로 공격하는 경우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합세하는 경우의 세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첫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교전이 있게 된다면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이 공해상의 항공모함에서 작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주한미군기지를 발전기지로 삼을 경우 한국군이 어쩔수 없이 가세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하한 경우에도 주한미군의 참전을 막기 위한 한?미 양국 정부간의 치밀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군사문제전문가 池萬元 박사의 평가다. 문제는 공해상에 떠 있는 미 항모가 공격을 받게되고 지구전 양상이 돼 항모에 대한 병참보급마저 원활하지 않을 때 과연 주한미군이 팔짱만 끼고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미?북한간의 1차적 충돌은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끌어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다국적군을 통한 북한의 무력제재를 상정한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국제적 공감을 얻는 데 최선이긴 하나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걸프전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한 데 따른 침략자에 대한 ‘국제적 응징??차원에서 벌어졌지만 북한에 대한 무력제재는 성격이 다르다. 더욱이 중국과 소련이 북한의 핵카드를  군사적 성격이 아닌 ??정치적 지렛대??로 받아들인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참여할 이유가 없어진다. 만일 두번째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미국이 소련이나 중국을 발진기지로 삼아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끝으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개입된 세번째 시나리오를 상정해보자. 처음부터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북한핵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 해도 미·북한간의 직접충돌을 가정한 첫번째 시나리오가 세번째 시나리오로 발전한 가능성은 크다. 국방연구원에서 가상전이론(war game)을 연구하고 있는 張相龍 박사는 “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전쟁양상은 제한적이고 국지적이 아닌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군사전문가들은 그러나 세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결국은 북한의 대응방식에 따라 전쟁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의 溫暢一 교수는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만큼 북한도 당연히 남한 내 미군핵기지를 공격목표로 삼을 것??이라며 ??만일 스커드미사일을 서울로 쏠 경우 이는 한국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때쯤에는 이미 한국 내 전술핵이 모두 철수한 다음이 될 것이므로 북한의 공격목표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며 이 경우 북한은 전면전을 감수하고라도 한국 내 목표물을 무차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인민무력부의 金英哲소장이 최근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하면 결사항전으로 맞설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우리측에서 볼 때 최악의 상황은 북한이 스커드미사일에 생화학탄을 장착해 무차별 공격하는 것이다. 최대 사정거리가 5백km이상인 개량형 스커드의 경우 남한 전역이 사정권안에 들어간다. 북한은 현재 2백50t의 화학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을 전방기지에 비축해두고 있다. 흔히 ‘무색무취의 핵무기??로 불리는 화학무기는 치사량이 강해 신경가스 5t이 수소폭탄 20메가톤의 위력에 맞먹을 정도다. 화학무기 15t이면 2백km 지역의 인명을 살상하며 30~40t이면 인구 1천만명의 서울시를 유령도시로 만들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북한의 생화학 공격
 북한이 스커드미사일로 한국 내 원자력발전소를 공격해 방사능에 의한 오염을 극대화 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90메가와트급이 주종을 이루는 국내 9기의 원자력발전소는 외부 콘크리트의 두께가 1m20cm나 되고 그 속은 5~6겹의 철근이 들어 있어 설령 비행기가 추락해도 끄덕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과학기술처의 李昇九 안전심의관은 “무방비 상태에서 집중적인 폭격을 당해 전파되면 몰라도 스커드미사일 정도의 외부충격은 충분히 견뎌내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지만원 박사도??핵미사일 공격이면 몰라도 폭탄을 장착한 스커드미사일로는 원자로 시설을 파괴하기 힘들 것??이라고 평가한다.

 전면전이 얼마나 걸릴지는 전문가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국방연구원 장상룡 박사가 “재래전일 경우 최소 1년이상 갈 것??이란 분석을 하는가 하면 육사의 온창일 교수는 ??걸프전처럼 空地戰에 입각해 첨단무기를 대량동원하면 90일 이내에 끝날 것으로 본다??고 평한다. 미국이 전술핵을 사용한다면 전쟁은 하루아침에 끝날 수도 있으나 핵의 사용이 가져올 엄청난 영향 때문에 국제적으로 거센 여론의 반작용이 있을 것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북한의 우방인 소련과 중국이 취할 태도도 관심거리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공격대상이 북한 전역이 아닌 특정 핵시설인 만큼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 가능성은 적지만 막상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대북지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전쟁시나리오는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무력제재에 들어가기 전단계에서 굴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미국도 엄청난 인명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감행하기는 어렵다. 특히 사막과 달리 산악지형으로 이뤄져있는 한반도에서 북한이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는다면 사태는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하나 이라크 핵시설 폭격에서 증명됐듯 여타 지역에 피해를 주지 않고 특정 핵시설만 정확히 폭격할 수 있는 능력을 미국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땅 속 깊이 숨겨진 핵시설 파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국방연구원 장상룡 박사의 얘기다. 미국도 정작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국내외적 여론과 군사적 공격의 효과측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군사전문가들은 남북한 모두의 생존을 담보하는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는 최악의 경우에나 상정해볼 수 있는 글자 그대로 ‘시나리오??로 끝날 확률이 크며 북한이 미국의 군사제재에 앞서 핵사찰에 응하는 등 신축적인 태도로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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