劇中劇에 담긴 사랑의 불모성
  • 김성희 (연극평론가) ()
  • 승인 199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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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이순례〉- 다양한 연극적 이미지로 관객 정서에 호소

 인간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면, 그 삶을 예술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진정한 가치조차 이기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우리 시대의 거짓 가치에 짓눌릴 때, 불구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이해관계만 좇는 저급한 것으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연극〈그 여자, 이순례〉(극단 오픈·김광림 작·연출)는 바로 우리 시대 사랑의 불모성을 그려내기 위해 ‘극중극’이라는 장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극중극을 통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사랑의 순수성을 생각하게 하며, 일생을 걸려 완성해나가야 하는 것이 사랑이며 진실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연극은, 생명보험 가입자 김억만이 죽으면서 10억원의 보험금을 이순례라는 여자 앞으로 남겨놓았고 또 이 여자 역시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남편이 지급받게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펼쳐진다. 보험회사측은 김억만의 죽음이 자살임을 증명해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때 김대리의 제안으로 연극을 만들어서 가장 효과적으로 김억만의 자살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처럼 예정된 결말을 놓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회사원들이 각각 적당한 역을 맡아 김억만과 이순례의 삶을 재구성하게 된다.

 다라서 이 연극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허구를 연극 속의 연극을 통해 교차시키면서 동시에 연극이 은폐된 진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형식임을 주장한다. 또 김억만과 이순례역을 맡은 김대리와 미스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이들의 사랑방식이 극중극의 두 주인공과 확연히 대조적이어서 자연스럽게 50년대식 사랑과 80년대식 사랑이 대비된다.

 인민군 김억만은 쫓기다가 이순례의 집에 피신해 들어가서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이때 국군으로 나갔던 순례의 남편 박영문이 불쑥 찾아옴으로써 억만은 잡혀 총살형을 당하게 된다. 순례는 강간이 아니었다고 밝혀서 억만을 구해주고 감옥에 간다. 그후 김억만은 자기 때문에 일생이 망가뜨려진 순례를 찾아 25년이나 헤매다가 동두천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보상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했다고 말하는데, 이에 순례는 격분해 뛰쳐나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역시 유부남인 김대리를 사랑하는 미스리는 유부녀 이순례에 대한 억만의 사랑과는 달리, 욕망충족을 위해서는 비윤리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김대리 역시 부도덕한 사랑으로 인한 윤리적 갈등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회사원들 모두가 승진에 눈이 어두워 억만의 삶이 지닌 진실 따위는 은폐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김대리나 미스리는 자신들의 이기적인 삶과 사랑의 방식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며, 순례가 죽은 후 더 이상 삶의 존재이류를 느끼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 억만의 순수성과 사랑의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연극은 극중극을 통해 두 시대의 사랑을 경쾌하고 통속적인 정서로 대조시키면서, 언어를 통한 메시지보다는 다양한 연극적 이미지로 관객의 정서에 직접 호소한다. 그래서 전쟁의 상처를 걸인의 모습으로, ‘꿈’장면을 묵극으로, 사랑은 컴퓨터그래픽이나 사진의 투사나 노래 등을 통해 은유적 비유로 나타낸다. 사실 극중극 자체가 현실의 거짓을 비쳐내는 거대한 은유 구조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부분부분의 장면들이 주제의 메타포를 효과적으로 그려내지 못해 전체적으로는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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