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무드에 日·印 ‘반기’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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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년의 몰타정상회담을 고비로 미·소간의 군비경쟁은 막을 내리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해 7월말 모스크바에서 미·소간에 조인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다. 물론 이 협정은 향후 7년간에 걸쳐 미·소 핵무기 수를 30%만 감축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핵없는 세계를 향한 큰 걸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 11월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35개국간에 역사적인 재래식전력(CFE)감축협정이 타결됨으로써 유럽도 군축의 길로 들어섰다.

 도표에서도 나타나듯이 제3세계의 군비지출 규모도 89년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전세계는 앞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군비경쟁의 짐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미·소 초강대국의 군축노력과 달리 일부 나라들은 군비확대의 움직임을 보여 주목되는데 일보과 인도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일본의 경우는 60년부터 국방비 비율이 1% 내외로 일정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30여년가 ㄴ수십배 늘어난 국내 총생산규모를 감안할 때 그 액수는 엄청나게 크다. 일본은 63척의 전함을 보유해 세계 3위의 해군력을 갖추고 헬리콥터 전용 항공모함 2척의 실전 배치와 함께 미국으로부터 4척의 구축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주변국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

 파키스탄과의 국경분쟁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도 작년초 소련에서 핵잠수함 1척을 사들이고 2척의 항공모함을 배치한 데 이어 새르 13기의 핵탄두를 증강했다.

냉전시대 유산 ‘군비경쟁’ 막내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 미·소의 군축협상이 물꼬를 튼 시기는 70년대. 대륙간탄도탄의 5년간 실험 및 배치금지를 공자로 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Ⅰ:72년 체결)과 각종 전략핵의 보유상한선을 규정한 SALT Ⅱ(79년 체결)의 결실을 본 시기였다. 물론 두 협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핵무기 수의 ‘균형조정’이지 감축은 아니었으므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게 중평이다.

 이같은 군축무드는 그러나 지난 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깨졌다. 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에티오피아 앙골라 모잠비크에 잇따라 親蘇정권이 들어선 데다가 소련이 급기야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우려를 느낀 미국이 대대적인 군비확충에 나선 것이다. 특히 ‘강력한 미국’을 주창한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선 후 국방비는 매년 3백억달러씩 증액됐다. 이에 맞서 소련도 국방비를 증액하여 미·소는 ‘신냉전시대’로 접어든다.

 그러나 85년 고르바초프가 등장해 이른바 ‘신사고’ 외교정책을 취하면서 미·소는 본격적인 군축시대에 들어섰다. 특히 86년 네이캬비크 정상회담으로 군축환경을 조성한 미·소는 87년 중거리 핵전력(INF) 협정을 맺어 유럽배치 중단거리 전술핵미사일을 철거한 데 이어 유럽배치 재래무기(CFE)감축협정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타결함으로써 냉전시대의 유산인 군비경쟁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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