쩔쩔 매는 ‘귀국 유학생’을 구하라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10.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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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만4천여 명 환국, 대 부분 학교생활 적응 못해…특별학급 등 운영해 적응력 키워주고 해외 경험 활용해야

 
김은영양(가명․고1)은 오는 겨울, 미국 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갈 예정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2년 동안 말레이시아에 조기 유학했던 은영이는 귀국 후 학교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새벽 2~3시까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해도 성적은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도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은영이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공부가 재미있고 학교 생활도 즐거웠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학교 생활과 공부는 ‘지옥’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털어놓았다. 은영이는 고되고 팍팍한 한국 학교 생활에 점점 싫증이 났고, 자신감도 잃었다. 견디다 못한 은영이는 부모에게 다시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부모는 유학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한국 학교에 적응해보라고 요구했다.

귀국 중학생들 “공부할 과목 너무 많다”

결국 은영이는 부모 몰래 유학원에 가서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시험을 치렀다.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유학 비용이 저렴해 부모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영이는 교환학생 시험에 합격한 소식을 부모에게 전하면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학비를 지원해주면, 대학은 스스로 벌어서 다니겠다’고. 부모는 더 이상 은영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다 귀국해 한국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 학생은 비단 은영이만이 아니다. 2004년 한 해에만 초․중․고교생 2만4천9백59명이 해외로 나갔고, 1만4천9백63명이 귀국했다. 해마다 1만명 이상의 청소년이 외국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하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은영이와 비슷한 진통을 겪는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이동훈 상담 조교수는 “최근 한국청소년상담원에 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귀국 청소년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역문화 충격, 학교 부적응, 귀국 후 진로 고민, 귀국 부적응으로 인한 재출국에 대한 고민 등 상담 내용도 다양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부모와 함께 유학을 다녀온 청소년들은 귀국 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편인데, 홀로 조기 유학을 다녀왔던 청소년은 귀국한 뒤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최근 실시한 ‘귀국 청소년 국내 적응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귀국 청소년이 느끼는 한국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조사에 따르면, 귀국 청소년은 친구 관계나 선생님 관계에서는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학교 생활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귀국 후 학교 생활 중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초등학생과 중학생 모두 학교 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답했다(표 참조). 초등학생은 평가가 자주 있어 부담스럽다(38.2%), 학원으로 인해 여유가 없다(28.7%)는 애로를 털어놓았다. 중학생 역시 평가가 자주 있어 부담스럽다(45.3%), 공부할 과목이 너무 많다(45.3%), 학원으로 인해 여유가 없어 적응하기 어렵다(31.3%)고 토로했다(표 참조). 특히 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사이에 이 두 나라의 학제 차이로 인해 학년을 건너뛴 경우에는 더욱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뉴질랜드에서 귀국한 한 학생은 “귀국하고 바로 중학교에 들어가니 한자 과목도 어렵고 전 과목 학원을 다닌 아이들을 쫓아가기 힘들었다. 성적이 크게 떨어져서 충격이 컸다”라고 말했다.

“일선 교사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라”

귀국한 학생들은 학교 공부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지만 친구 관계는 대체로 원만하게 풀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친구들의 거친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고, 아는 친구가 없어 낯선 점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표 참조). 필리핀에서 귀국한 한 학생은 “한국에서는 친구들이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있어 어디든 속해야 하고, 친구들끼리 자주 때리고 욕하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친해지는 문화가 낯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교사와의 관계는 대체로 원만했지만, 일부 학생은 ‘한국 교사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지시적’이라고 느낀다. 또 거친 말과 매를 사용하는 것이나 친절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도 있었다(표 참조). 한 귀국 학생은 “외국에서는 학생이 선생님과 장난도 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큰 벽이 있는 느낌이다. 외국에서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생각을 이해하려 하고 선생님도 모르면 함께 상의하는데, 한국에서는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분위기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떠들어도 제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울사대부설초등학교에서 ‘귀국 학생 특별학급’을 지도하고 있는 김윤아 교사는 “귀국학생은 나날이 증가하는데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는 그들을 교육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현실이다. 귀국 학생을 지도할 학습 자료나 정보가 없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지적했다.

과중한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못지않게 ‘문화 충격’ 역시 귀국 학생들이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설문조사에서 중학생들은 한국 사회가 경쟁적이고(73.3%), 질서를 지키지 않는 점(34.4%)이 외국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외국과 달리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학교 시설이 열악하다고 느꼈다.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수업 시간에 필요한 준비물이 너무 많은 것도 불만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한 귀국 학생은 “한국 학교에서는 머리, 가방, 실내화 주머니, 손톱까지도 검사하며 학교 규칙을 엄하게 적용한다. 너무 강압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문화적 괴리 현상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귀국 청소년은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

“귀국 유학생, 독립심 강해”

귀국 학생들이 지적한 문제들을 보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가 그들의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단 귀국 유학생뿐 아니라 절대 다수의 청소년을 교육 낙오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교육 현실이니 말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우리나라 교육 과정은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이 획일화되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는 법인데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가르치다 보니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탈락하는 학생들이 양산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외국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 후 한국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을 ‘국제 미아’로까지 표현하며 절망한다.

 
귀국 청소년들을 심층 인터뷰한 한국청소년상담원 이영선 선임상담원은 “아이들 대부분이 외국 학교와 교사, 친구들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귀국하는 것을 싫어했다. 오기 싫은데 억지로 왔으니 귀국에 대해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귀국 후에 느끼는 부자유나 부적응은 불안감을 더 조장해 학교 생활이나 교우 관계 등에 영향을 준다”라고 지적했다. 정향진 교수(서울대·인류학과)는 “특히 청소년기는 사회마다 ‘문화적 교육’을 심화시키는 때로서, 그러한 시기에 문화 충격을 경험하는 것은 그 어려움이 더 클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번 실태 조사에 따르면 귀국 유학생은 해외 생활을 통해 외국어 실력이 향상되었고,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과 스스로 하려는 마음가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 조사를 진행한 한국청소년상담원 신효정 연구원은 “귀국 학생은 두 개 언어 이해 능력이 있고,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한다. 또 배운 대로 인사를 잘하며, 독립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세다”라고 분석했다.

학교와 나라가 나서서 ‘적응’ 도와줘야

이런 장점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귀국 학생들은 해외 생활 경험이 드러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노력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영선 선임상담원은 “아이들은 외국에 다녀온 표시를 내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자기 주장을 죽이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나 의견을 드러내거나 표현하기보다는 평범한 학생으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요구받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귀국 청소년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귀국 청소년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절실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하면 국가에 필요한 인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훈 상담 조교수는 귀국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언어 능력, 해외 문화에 대한 이해, 국제적 감각 등을 교육 자원으로 삼으면 우리나라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해외 문화의 경험을 국내 거주 청소년에게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국제화’ 교육 프로그램 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이들을 미래의 효과적인 국제화 인력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귀국 학생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 국가 모두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국내에는 현재 귀국 청소년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귀국 학생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교들이 있다. 서울에서는 초등학교 다섯 곳, 중학교 두 곳이 있다. 그러나 모두 합해도 수용 인원이 2백명이 채 안 되어 수요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김윤아 교사는 “귀국반 아이들은 일종의 소외 계층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아이조차 문화가 달라 힘들어한다. 늘어나는 귀국 학생의 수요에 맞게 귀국학생 학급의 수를 늘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귀국 학생 특별 학급을 설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향진 교수도 지금부터라도 귀국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귀국 청소년은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문화 간 접촉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학교 역시 사회의 변화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귀국 청소년들의 경험에서 배우고, 우리 교육 자체에 대해 비교 문화적인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교수는 아이들에게 지배적인 문화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소속감을 키워주어야 하고, 개인이 경험한 문화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문화적 환경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귀국 학생들이 지적한 한국 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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