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고공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
  • 김유진(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2.0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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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경선 과열 등 자충수로 여권 노림수에 말릴 수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집권당이 ‘식물 정당’으로 전락해가면서 한나라당 분위기는 둘로 갈린다. 집권당 무력화는 곧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의 궤멸 가능성을 말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 분열이 또 다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고도의 책략이라는 해석이다. 집권당 궤멸을 믿는 분위기는 이명박-박근혜-손학규, 이른바 ‘빅 3’의 경쟁을 가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여권의 술수로 간주하는 시각은  2년 전의 ‘노대통령 탄핵 역풍’을 경계한다.

 
현재 한나라당은 여권 분열을 즐기는 분위기이다. 열린우리당 분열이 정교하게 짜인 ‘위장 이혼’이며 ‘기획 탈당’일 가능성도 있지만 서로 등 돌리는 모양새로 볼 때 책략이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빅 3’ 관리에 정성을 쏟고, 후보 경선만 잘 치르면 정권 획득은 어렵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제2의 이인제’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인식이다.
여권 분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의견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김재원 의원이 “여당 의원들의 탈당은 ‘기획 탈당’으로 볼 수밖에 없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라고 줄기차게 경고하고, 일부가 귀를 기울이는 정도다. 김의원은 한나라당이 후보를 결정하고 한참 지난 10월께 열린우리당 이탈 세력과 잔존 세력, 당 외곽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해 ‘신 여권’을 구성한 뒤 전격적으로 후보를 내세워 판을 뒤집을 가능성을 경계한다.
물론 한나라당 주류의 판단대로 여권 분열이 ‘기획 탈당’과 ‘위장 이혼’이라 해도 그 결과는 ‘가정 파탄’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간판을 바꿔 달든, 위장하든, 새로 태어날 신 여권이 국민을 감동시키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1997년과 2002년 이른바 DJP  연합 같은 결합과 대통령 후보 단일화 깜짝 쇼가 재현되기도 쉽지 않겠지만, 국민들도 더 이상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한나라당의 기대대로 여권이 이대로 주저앉을까? 그렇지 않다. 여권의 분열은 한나라당을 기다리는 묘혈이 될 수도 있다. 여권이 지리멸렬할수록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의 경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50% 이상이 이명박-박근혜의 후보 단일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여권의 추파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이명박-박근혜-손학규 3인의 경쟁만으로 앞으로 10개월 남은 대선까지 흥행을 끌고 가기 어렵다. 국민 사이에는 수년 전부터 과다 노출된 3인에 대해 식상해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게다가 후보 경선은 과열과 흠집 내기를 동반한다. 정권을 손에 넣은 양 설치기라도 하면 유권자들이 당장 등을 돌릴 수도 있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의 35%가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절대 지지층 37.2%에서 유동성이 큰 지지자들을 빼면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은 20% 남짓이다.


한나라당 지지층 35% “지지 정당 바꿀 수도”


 
한나라당이 ‘그들만의 리그’로 빠져들 때, 위기는 스멀스멀 다가올지 모른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과 박근혜 전 대표의 ‘한·중 열차 페리’ 구상이 감명을 주기는커녕 동네북이 되기 시작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소프트웨어와 지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일축한 것은 상징적이다.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변신에 성공한 새 정치 집단이 문국현 사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변호사 등을 오픈 프라이머리에 내세워 감격적으로 후보를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그럴 경우 한나라당 빅 3는 상대적으로 관심권에서 밀려날 수 있다. 국민들은 새로운 뉴스에 눈길을 더 주기 마련이다.
위장 이혼과 기획 탈당이라는 여권의 ‘꼼수’에 한나라당이 대응하는 길은, 울타리를 빅 3로 제한하지 않고 문호를 넓혀 노선과 이념의 지평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뜬금없기는 해도 손학규 전 지사가 지난 1월29일 목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개방적 태도와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의 첨단적 마인드, 손학규의 정치적 리더십이 모이면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이 되새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도 내 것을 지키는 데만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여권의 괜찮은 분들에게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그의 말은 한나라당에 던지는 충고일 수 있다.
 손학규 전 지사가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손 전 지사 주장대로 한나라당이 만약 대선 후보를 ‘빅 3’로 국한하지 않고 외부 인사에게 문호를 개방했을 때 그 시너지 효과는 얼마나 될까. 현대자동차 CEO 출신으로  “열린우리당은 죽었다”라며 탈당한 이계안 의원 같은 인물이 한나라당에 들어가 후보 경선에 나선다면 흥행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아마 그럴 경우 여권은 후보를 내세우기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한나라당 집권의 최대 장애는 ‘빅 3’일 수 있다. 현재 세 사람의 지지도를 합하면 70%를 훌쩍 넘는다. 당장 선거를 치르면 누가 나서도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기다리는 함정은 매우 깊다. 이들 ‘빅 3’ 때문에 당 밖의 유력 인사는 한나라당을 기웃거릴 틈도 없다. 정운찬 전 총장이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불쾌하다”라고 했지만, 한나라당이 그를 주목하는 흔적은 없다. 박근혜 대표 시절 그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권했다는 얘기 외에 들리는 게 없다. 정 전 총장에게 유의하지 않는 것은 혹시 한나라당에 던져질지도 모를 ‘비수’를 방치하는 것이 아닐까?
한나라당의 ‘빅 3’가 비좁은 우물 안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을 떠나는 탈당 세력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는 그들의 신선놀음’을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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