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권력의 눈과 귀 DNA가 바뀐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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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권력 지도’ 어떻게 그려지나 국정원 등 정보·사정 기관 세력 교체 진행 중

정부 내의 핵심 권력 기관에 회오리가 일고 있다. 이른바 인사 광풍이다.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장악하는 것이 권력 기관이다. 그중에서도 정보 기관과 사정 기관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눈과 귀이며 손과 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기관을 장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수단은 인사권이다. 충성도가 높은 자기 사람을 수장에 앉히고 주요 요직에 심복을 심어놓으면 상황은 끝난다.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군부 독재 시절에도 그랬고 진보 정권이라고 불린 DJ 정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의원들 “사정 기관이 영남 향우회냐”

이명박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대통령도 취임한 후 권력 기관을 새 정권에 맞게 탈색하고 있다. 핵심 요직을 중심으로 사람을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권력 기관의 요직은 주로 호남 출신 인사들이 장악해왔다. 그 자리를 영남 출신들로 대체하고 있다. 이명박 시대의 권력 기관에서 영남 출신 인사들이 득세하는 형국이 되었다.                                                                                                                              최근 인사에서 지역적인 색채는 뚜렷하다. 이미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영남 출신들로 채워졌다.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은 경남 남해 출신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부산, 어청수 경찰청장은 경남 진양 출신이다.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장관을 지냈으나 청와대 386들과의 불화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것이 오히려 ‘소신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임채진 총장과 어청수 청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임총장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BBK 사건에서 무혐의 처리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를 잡았다. 어청수 청장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명박 정권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권력 기관내 영남 출신 인사 중용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사정 기관이 영남 향우회냐”라며 지역 편중 인사를 비난했다.
경찰의 정보 업무를 총괄하는 곳은 경찰청 정보국이다. 치안감인 정보국장을 비롯해 경무관인 기획정보심의관 1명과 총경 과장 4명이 정보1과(서무), 정보2과(정책정보), 정보3과(경제·노동), 정보4과(사회·문2008.3.18화·학원·종교·언론)를 맡고 있다. 기획정보심의관은 국장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정보1과와 2과는 내근직, 3과와 4과는 외근직으로 구분된다. 이 중 3과와 4과는 각각 3개의 계를 두고 있는데 3계는 각각 외부에 따로 정보분실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정보관리부에서 정보를 총괄한다. 부장은 경무관이며 산하에 2개의 정보과가 있다. 지방청은 총경급 정보과장 밑에 소속 계, 일선 서는 경정 또는 경감 과장 아래 서무를 맡는 정보1계와 외근을 하는 정보2계를 두고 있다.
어청수 청장은 부임하자마자 경정급 이하 본청 정보국 직원들을 대폭 물갈이했다. 약 20%를 바꿨는데 대부분 호남 출신들이었다고 한다. 정보국에서 밀려난 호남 출신들은 서울경찰청이나 일선 경찰서로 발령이 났다. 이번 인사는 어청장이 향후 조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다.

 

경찰청 정보국장 유임은 이변

지난 3월4일에 단행된 치안감과 치안정감 인사에서는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청 정보국장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속설이 완전 빗나가는 일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김정식 현 정보국장이 유임된 것이다. 김국장은 충남 예산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막판까지 서울경찰청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김국장이 유임됨에 따라 곧이어 있을 경무관·총경급 인사가 주목되고 있다.
경찰 내에서 ‘정보 부서’는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힌다. 거미줄같이 연결된 경찰 조직을 통해 사회 구석구석을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조직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외근 정보는 관할 행정관청 또는 주요 시설에 한 명씩 맡지만 근무 형태나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부서원들은 매일매일 자신이 맡은 출입처에 나가 정보 보고 거리를 찾는다. 정당, 관청, 기업, 노동계, 언론사, 시민단체 등 사회 곳곳의 민심을 파악한다.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정보들 가운데 특급 정보는 매일 밤 밀봉된 채 청와대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다. 정보국장의 정보는 곧바로 대통령과 연결된다. 어떤 정보를 선별해서 올리느냐에 따라 그 파급력은 달라질 수 있다.
정보국장의 힘은 경찰 정보의 독점에서 나온다. 이런 이유로 역대 정권에서는 정보국장 자리에 심복이나 믿을 만한 사람을 앉혔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는 영남 사람이 독식했고,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호남 사람이 독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권력자들은 경찰 정보를 사유화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정보국장을 비롯한 정보국 수장과 지방경찰청 또는 일선 경찰서의 정보 책임자를 자기 사람으로 심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정보국장의 파워도 그만큼 막강했다. 여권의 한 정치인은 “경찰에서 쓸만한 것은 정보 경찰밖에 없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이다.
경찰 정보는 한때 정치인과 민간인 사찰, 재야 인사 감시·미행 등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이때문에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들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경찰의 정보 활동이 정책 정보 수집으로 바뀌었다. 과거 경찰 정보 파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 정치적 오해를 없애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특정 인사를 사찰하지 않는다. 루머에 가까운 정보는 아예 올리지 못하게 한다. 문서로정보를 올리려면 어느 정도 사실 확인이 되어야 한다. 경찰 내부에서도 ‘정치 사찰’이라는 오해를 받지않기 위해 여러 가지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정보관들이 보고하는 내용의 상당수가 ‘사람’에 관한 것이어서 결국 인물 사찰은 어떤 명목으로든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경찰청 산하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겉으로는 사찰을 하지 않는다. 선거철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때는 더욱 조심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 정보를 못 올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서장이 새로 부임하면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에 관한 정보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례적으로 A4 한 쪽짜리 ‘범죄 첩보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이 ‘늑장 수사’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이 보고서를 면피용으로 공개해 파장이 일었다.

 

국정원, 정보 기능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 방향 잡혀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을 개혁하겠다고 피력해왔다. 국정원의 정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외 정보 수집·분석·판단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개혁의 방향은 완전한 순수 정보 기관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국정원의 정보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정원 개편과 관련해 현재 청와대 국정상황실, 국방부, 검찰청, 경찰청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국가 정보 취합 기능을 국정원 중심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무현 정부 때 폐지했던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 부활은 백지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정원 개편과 관련해 현재 청와대 국정상황실, 국방부, 검찰청, 경찰청 등으로 분산되어 있는 국가 정보 취압기능을 국정원 중심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국정원 개혁의 기본 방향은 조직 개편이다. 현행 국정원 조직은 원장 밑에 3차장 1기조실을 두고 있다. 실무 부서인 1차장(해외), 2차장(국내), 3차장(북한)이 있고, 지원 부서인 기획조정실이 있다. 그 아래 국장-단장-처장-과장-팀장-정보관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새 정부는 당초 북한을 담당하고 있는 3차장을 폐지하려고 구상했으나 원점으로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조직의 슬림화에 관해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개혁 구상이 흐트러지고 있는 모습이다. 기존 체제보다는 다소 줄이겠지만 큰 폭의 조직 개편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4개 국·실을 폐지하고, 업무를 다른 국으로 이관하는 수준에서 정리할 것이라고 한다.
김성호 원장 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받으면 국정원은 내부적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를 운명이다. 그 강도가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람들로 분류되는 인물들을 색출하는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조직특성상 원장 이하 차장·실장은 정치적인 입김에 좌우되는 자리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1~3차장을 비롯해 기조실장의 교체가 유력하다. 1, 2차장에는 외교통상부·경찰청 인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담당 3차장에는 남성욱 고려대 교수의 내정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국정원의 인사 태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꺼번에 5백81명을 해직시킨 일이 있다. 단장, 과장 등 핵심 요직에 있던 직원들이 강제 퇴직 명단에 올랐다. 영남 출신 인사들을 내몰고 호남 출신 인사들로 채웠다. 그때에 버금가는 인사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20일에는 국정원에서 강제 퇴직당한 전직 직원들이 ‘국정원 강제 퇴직 진상 규명 촉구 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날 상임대표에 선임된 송영인 전 국정원 제주지부 부지부장은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인사 보복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공채 형식을 빌려 들어온 특채 직원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국가정보원법과 직원법에 따라 엄격한 인사 기준이 있어야 한다. 만약 무자격자가 있다면 국정원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하게 되었다. 사정 라인의 법무부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국정원장 등이 모두 검찰 출신이다. 이대통령도 검찰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인사에 있어서도 외부 영향을 가장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권력 기관에 비해 인사와 관련한 부침이 적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권에 줄대기 여전히 기승”

검찰 내의 범죄 정보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총괄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국의 모든 범죄 정보가 모여든다.
정병두 기획관은 사시 26회로 법무부 검찰1·4과장, 송무과장 등을 지냈다. 최근에는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을 나가 새 정부 인사들과 호흡을 맞추었었다. 그는 임채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형사1부장을 맡았고, 임총장의 인사청문회 때 준비단장을 맡는 등 임총장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
범죄정보기획관실 산하에는 제1담당관과 제2담당관이 있다. 제1담당관실은 부정부패 사범의 범죄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제2담당관은 대공·사회단체, 종교 관련 범죄를 수집하고 관리한다.
통합민주당 최재천 의원은 “수사 기관이 정보 기관처럼 되어가고 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범죄 정보가 아닌 정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온상이다”라고 말하며 범죄정보기획관실의 폐지와 조직의 개편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면 의례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정치권의 줄대기이다. 권력 기관도 마찬가지이다. 국정원이나 경찰 내부에서는 영남 출신들과 호남 출신들 간의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권력 기관의 줄대기로 인해 정권 말기에는 내부 비밀 정보가 상대측에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정보 거래를 통해 보험을 드는 것이다. 그동안 국정원과 경찰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터져나왔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조직을 배신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검찰 내에서도 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인사철에는 더욱 심하다. 지금도 권력 기관 내에서는 ‘은평에 줄을 대면 만사형통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명박 정권의 권력은 이미 영남권으로 기울었다. 여기서 살아남고자, 또는 요직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줄을 대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대통령이 원하는 ‘순수한 정보 기관’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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