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겨루기냐 코드 불일치냐 따로 노는 당정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8.05.0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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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책 운영 기조 싸고 사사건건 대립 청와대 정책 조정 능력 부재도 한몫

 

“이명박 정부의 철학을 공무원들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은 여전히 노무현 정권의 좌파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토요일인 지난 4월26일 한나라당과 정부 간 2차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국회 정책위 의장실에서 가진 회의 브리핑에서 쏟아낸 말이다.


이날 당정협의회는 4월23일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1차 당정협의회의 후속 회의 격이었다. 첫 회의야 탐색전 성격으로 본다고 쳐도 이미 한 배를 탄 여당과 정부가 두 번이나 모여서도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해 의견을 모으지 못한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회의 뒤 정부를 겨냥해 이의장이 내놓은 날선 말들은 과연 집권 여당에서 나온 말인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58건에 이르는 주요 법안을 조율한 이날 회의에서 당은 감세 조치 및 각종 규제 완화가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정부측은 세수 부족 및 행정적 부작용 발생 등을 우려하며 평행선을 그렸다. 2차 협의에서 합의가 된 것은 58개 안건 중 10여 건에 불과했다.


문제는 당정 간 불협화음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내수 진작용 추가 경정 예산 편성 논란이다. 지난 4월18일 한나라당과 정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고위당정청협의회를 열어 머리를 맞댔다. 새 정부 들어 부활한 고위당정청협의회는 정부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등 각 부처 장관, 한나라당에서 강재섭 대표와 당 3역, 청와대에서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각 부 수석비서관 등이 참여하는 최고위급 국정 조율 기구다.


이 자리에서 추경 예산 편성을 놓고 당과 정부는 또다시 충돌했다. 먼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추경 예산 편성 필요성에 대해 운을 뗐다. 강장관은 “내수 진작을 위해 세계 잉여금 4조9천억원을 추경 예산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한다. 감세 정책도 할 수 있지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해 감세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한구 의장이 곧바로 강장관의 논리를 맞받아쳤다. “모든 경제 정책은 단기적 안목이 아니라 정기적 안목을 가지고 수립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추경 편성보다 감세를 통해 내수를 진작하도록 하고 세계 잉여금은 국가 채무를 더 갚는 데 써서 오히려 금리를 인하해 내수 진작을 고려할 수 있다.”


이때 나왔던 ‘추경 편성이냐, 감세냐’의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27일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을 늘려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산을 효과적으로 잘 쓸 수 있는 방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4월 임시국회 추경 편성 계획은 좌절된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정부의 반격이 뒤따랐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4월29일 “6월 임시국회에서 국가재정법 개정과 함께 재추진하는 것으로 당과 협의할 것이다”라고 말해 추경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렸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경 계획을 접었다기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했다고 이해하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부가 현 이한구 정책위 의장이 5월 말 교체된다는 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첫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는 이밖에도 향후 당정 관계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있는 말들이 나왔다. 강재섭 대표는 회의 모두에 “무엇보다 여당으로서 무조건 정부의 편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나라당은 국민 편에 설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혁신도시 재검토, 학교 자율화 방안 등이 당과 조율 없이 발표된 데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동갑내기 이한구 정책위 의장-강만수 재정부장관 대결 구도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여당으로서 운명 공동체인 정부를 감싸주기보다 주도권을 쥐고 일방적으로 훈계하는 듯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집권 초 청와대와 정부가 여당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과거 정권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대통령 임기 말 레임덕 상황이 올 때면 모를까, 정권 초 청와대가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브레이크를 거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김영삼 정부 초기 여당이었던 민자당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지금의 변화는 상전벽해나 다름없다”라고 말한다. 당시 민자당 총재를 겸임했던 김 전 대통령은 당 대표는 물론이고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인선을 혼자서 했다. 당 관계자는 “취임 초 사정 정국을 조성했던 청와대와 정부를 상대로 당이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죽했으면 당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는 말이 나왔겠느냐”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매우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다 보니 한나라당 내에서도 자제론이 고개를 들 정도다. 왜 이럴까. ‘당의 군기 잡기다’ ‘시장주의 운영 기조에 대한 견해 차다’ ‘두 경제 컨트롤타워의 개인적인 성격 문제다’ 등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물론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먼저 군기 잡기 성격을 보자. 한나라당 밑바닥에는 ‘이번 정권 교체는 10년간 야당으로 노력해 온 한나라당의 승리’라는 자부심이 흐르고 있다. 따라서 당정 간 관계에서도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이명박 정부의 철학을 공무원들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이한구 의장의 말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디자인’은 역시 당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정권 교체로 천막 당사까지 거친 10년간의 풍찬노숙에서 벗어난 데 따른 보상 심리도 적지 않다. 서울 지역 한나라당 당선인들이 총선 때 공약으로 내건 뉴타운 추가 지정을 성사하기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데서도 이런 기류의 일단이 엿보인다. 당정 갈등의 최전방에 서 있는 이한구 의장과 강만수 장관이 웬만해서는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는 소신주의자인 것도 사실이다.


63세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나란히 영남의 명문인 경북고(이의장)와 경남고(강장관)를 나왔고, 서울대 65학번 동기다. 또 두 사람은 1년 차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후 이의장은 1980년 이재과장을 끝으로 재무부를 떠나 민간 부문으로 옮겼고, 1년 늦게 고시에 합력한 강장관은 계속 남아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까지 지냈다. 나중에 외환위기가 터지자 한 사람은 민간 경제연구소장으로, 또 다른 사람은 경제 정책의 수뇌부로 공방을 주고받던 사이가 되었다. 당 관계자는 “강장관은 ‘강고집’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직선적이고 원칙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다. 이의장 역시 3선에 성공한 정치인답지 않게 성격이 좀 뻣뻣한 편이다. 두 사람의 엇갈린 이력과 강한 성격이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결 구도에는 경제 운용 기조에 대한 정부와 당의 견해 차이도 한몫하고 있다. 가령 정부는 추경 편성이나 환율 개입 등을 통한 경기 부양을 선호하고 경기 후퇴에 대응할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서도 지나친 감세는 피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당내에 정부와 정책 조율할 인물 거의 없어

이에 반해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시장 개입은 어떤 경우에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밝혀와 어느 정도 충돌의 여지는 존재했던 셈이다. 당 관계자는 “민심에 좀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당과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시각 차가 존재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정 간의 엇박자를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정병국 의원은 최근 “과거와 같이 여당이 무조건 정부나 청와대의 입장을 옹호하고 무조건 거수기 노릇만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좀더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먼저 정치권이 17대 국회에서 18대 국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당 정책 기능이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는 점이 꼽힌다. 4·9 총선 때까지 당은 사실상 선거 총력 체제로 운영되었다. 정책 파트를 맡은 의원들도 지역에 내려가 선거운동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선거 후유증까지 감안하면 4월 중순까지 당정이 손발을 맞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셈이다.


더구나 당 정책조정위원장을 맡은 정문헌(2정조)·김애실(3정조)·박승환(4정조)·안명옥(6정조) 의원은 당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불출마 또는 낙선했다. 또 5정조위원장 자리는 이주호 의원이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으로 옮긴 뒤에도 계속 공석으로 남았다. 이한구 정책위 의장과 수석 정조위원장인 권경석 의원을 빼면 당내에 정부와 정책을 조율할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협의나 조율이 안 된 정책들을 발표해 국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준 것을 지적하기 이전에 과연 당이 정부와 실질적인 당정 협의의 통로를 제대로 마련해 놓았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당의 한 정책전문가도 “5월22일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 선거가 끝난 뒤 정책위의장실 인선이 완료되어야 유기적인 당정 협의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이와 함께 청와대의 정책 조정 능력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정부조직 개편에서 국무총리실은 ‘조정자 역할’을 청와대로 넘겼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유일한 국정의 컨트롤타워가 되었지만, 정작 당정 관계 조율에는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치 경험이 없고 정무 라인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는 정책실이 정책 조정을 일괄 담당한 반면, 정책실이 폐지된 현 청와대에서는 각 수석비서관들이 당과 접촉해야 하는 구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창구가 많아지다 보니 집중력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당정 관계를 보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의 두 축인 정부와 여당이 경제 정책 운영 기조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이제 갓 두 달을 넘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순항하기 위해서는 당정 관계의 문제점을 좀더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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