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포털, ‘고립의 섬’으로 만들지 마라
  •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
  • 승인 2008.07.08 12: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원주의ᆞ상대주의가 언론의 자유 지켜…표현은 적극 보호하되 ‘광고 불매 운동’ 등 행동 보호하지 말고 자율 규제 나서야

촛불 집회, 신문사 광고 중단 압력, 인터넷 포털에 대한 검찰 수사, 공영방송 지키기 등. 한마디로 혼돈의 시대다. 누구나 떠들고 있는데,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다. 한쪽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신문사 폐간 운동을 벌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공권력 동원을 부추긴다. 광장을 이야기하지만, 광장에는 자기편만 모여 있을 뿐이다. 학자가 모여 토론회를 해도 그렇고, 서울광장에 나가도 그렇고,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도 그렇다. 끼리끼리 모여 논의하고, 상대방에 타격을 줄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부추기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이것도 언론의 자유인가?

언론의 자유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직접 현장에서 취재도 해보았던 전직 기자로서, 요즘처럼 헷갈리는 적도 없다. 먼저 조선·중앙·동아일보(이하 조·중·동)의 말바꾸기를 보자.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조·중·동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이라고 반발하였다. 세월이 바뀌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KBS에 대한 특별감사 및 KBS 외주제작사 세무조사를 실시하자 조·중·동은 이를 보도하면서 언론 탄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 후 동일한 사안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사례는 이들 신문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신문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부의 조사가 정치적 동기가 개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위법 사실의 확인과 그에 따른 정당한 후속 조치라면 법과 상식과 국민의 여망에 합치되는 것인데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를 왜곡, 비방하는….” 이 글은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이 쓴 것이 아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 후 낸 성명서의 일부다. 민변은 한겨레·경향신문 같은 진보 언론이 자주 인용하는 단체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 KBS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사가 실시되고, KBS 세금 소송과 관련해 정연주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민변은 정치적 동기를 의심한다. 민변은 6월17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검찰의 조치는 극히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을 권력 기관의 수족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충분히 의심할 만한 것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하며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자기편만 모아 상대방 공격하는 세태에 언론까지 가세해서는 안 돼

눈을 돌려 인터넷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시작된 촛불 집회로 가장 주목을 받은 인터넷 포털이 다음(Daum)이다. 여기에는 촛불 집회를 불붙인 토론 광장 ‘아고라(agora)’가 있고, 조·중·동 폐간을 주창하는 인터넷 카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http://cafe.daum.net/stopcjd)이 있다.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은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회사에 전화를 걸거나 e메일을 보내 이들 신문에 광고를 주지 말 것을 요구하는 광고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광고를 낸 회사 명단과 인터넷 주소, 전화번호 등을 숙제로 올려놓고, 해당 회사에 광고 중단을 요구한 경험을 공유하는 숙제 검사라는 코너도 운영 중이다. 해당 신문사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선일보는 다음에 이 카페의 폐쇄를 요청했고, 다음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공을 넘겼다. 방통심의위는 7월1일 다음 내 광고 불매 운동 게시글 58건에 대해 ‘불법 정보’라는 이유로 ‘해당 정보 삭제’의 시정 요구를 하는 결정을 내렸다. 광고 불매 운동 카페에 대한 폐쇄 여부도 곧 결정될 것이다. 검찰도 이 카페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자 방통심의위가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검찰을 권력의 시녀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나온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이 시점에서 아래와 같은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이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첫째, 무엇이 언론의 자유인지, 무엇이 언론의 자유가 아닌지 분명히 하는 것이다. 누구나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언론의 자유는 진리의 상대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진리가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본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다.

언론사의 특정 보도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반박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보도를 믿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그런 신문을 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보호하는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그러한 언론사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고, 폐간하도록 요구하는 행동은 언론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 아무리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도 무슨 말도 하지 못하도록 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특정 언론사의 폐간을 전제로, 그 신문사에 광고를 낸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항의하도록 독려하는 캠페인은 언론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

둘째, 언론의 자유는 표현을 보호하는 것이지, 행동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신문사의 보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표현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신문사 앞에 스티커를 붙이고, 쓰레기를 쌓아 놓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특정신문사 광고 불매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 불매 운동이 광고를 낸 기업의 영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이를 처벌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다음(Daum) 카페에서 진행되는 광고 불매 운동이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지 여부다. 처음 발생하는 사건인 만큼 법조계도 의견이 갈린다. 분명한 점은 피해자가 있고, 그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거 민변이 주장했던 것처럼 ‘위법 사실의 확인’을 위하여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을 두고 권력의 시녀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셋째, 이 모든 사건이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만큼 인터넷 포털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적극 나서야 한다. 흔히 인터넷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 촉진적인 매체’라고 한다. 따라서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해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이고, 이것이 민변의 논지다.

ⓒ연합뉴스


표현 촉진적 매체로 지속되려면 관리자 스스로 책임 다해야

그러나 최근 인터넷 포털을 놓고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터넷 포털, 그중에서도 카페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다 보면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광고 불매 운동 같은 행동이다.

인터넷이 표현 촉진적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 포털이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인터넷 댓글 체계를 바꾸고, 서로 다른 의견이 섞이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제를 주고 토론방을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대립되는 견해를 동일한 비중으로 네티즌에게 제공해야 한다. 베스트 글을 뽑는 데 신경 쓰는 것만큼 동일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인터넷 포털에 있다. 또 뉴스 기사 중에는 댓글이 필요 없는 유형도 있다. 댓글의 내용을 살펴서 욕설이 난무하고, 호·불호의 감정만 담겨 있을 경우 인터넷 포털이 과감하게 댓글 달기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인터넷 포털이 여과되지 않은 네티즌의 감정 표현물을 삭제하고, 불법 행위를 공모하는 카페를 폐쇄하는 것은 검열이 아니라 자율 규제다. 신문과 방송이 자율규제에 실패해 사안마다 공권력의 개입 빌미를 주었던 과오가 인터넷에서도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포털을 놓고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터넷 포털, 그중에서도 카페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다 보면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광고 불매 운동 같은 행동이다.인터넷이 표현 촉진적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 포털이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인터넷 댓글 체계를 바꾸고, 서로 다른 의견이 섞이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제를 주고 토론방을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대립되는 견해를 동일한 비중으로 네티즌에게 제공해야 한다. 베스트 글을 뽑는 데 신경 쓰는 것만큼 동일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인터넷 포털에 있다. 또 뉴스 기사 중에는 댓글이 필요 없는 유형도 있다. 댓글의 내용을 살펴서 욕설이 난무하고, 호·불호의 감정만 담겨 있을 경우 인터넷 포털이 과감하게 댓글 달기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인터넷 포털이 여과되지 않은 네티즌의 감정 표현물을 삭제하고, 불법 행위를 공모하는 카페를 폐쇄하는 것은 검열이 아니라 자율 규제다. 신문과 방송이 자율규제에 실패해 사안마다 공권력의 개입 빌미를 주었던 과오가 인터넷에서도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