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안 가르는 ‘큰 정치’의 힘
  • 파리ᆞ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8.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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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에게 주는 교훈
ⓒ로이터
얼마 전까지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 구도는 비슷한 양상을 보여왔다. 좌파의 궤멸과 우파의 득세, 그리고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기치를 내건 우파 대통령의 당선과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까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게 전개되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다르다.

특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국 상황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쪽은 외교에 죽을 쑤는 반면, 한쪽은 외교에 날개를 달았다. 한쪽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개혁 작업을 거의 포기하고 질척대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사회 곳곳에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며 세상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대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무엇이 달라 극과 극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일까. 사르코지의 성공담을 통해 그 원인을 알아본다.

첫째-당내 화합은 기본…국정은 집안 단속부터

이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당선 이후 당을 어떻게 추스렸느냐에 있다. 두 사람 모두 여당의 서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대통령이 당내 지지도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밀렸듯이, 사르코지 또한 당시 시라크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은 드 빌팡보다 열세에 있었다.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드 빌팡 전 총리가 최초 고용계약법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다 낙마하기 전까지 사르코지는 야당의 견제보다 여당 내부의 텃세에 시달려야 했다. 대선 전 후보 지명까지 시라크의 재출마설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미셀 안리오 마리 당시 국방장관이 당내 대선후보 토론에 참여하는 등 시라크 진영의 대안 찾기는 막판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여론을 기반으로 대세를 거머쥔 사르코지는 무사히 후보에 지명되었다.

이대통령 또한 국민적 인기를 기반으로 후보로 지명받는데에 성공하고 대권에 안착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행로는 사뭇 다르다. 사르코지는 당내에서 자신의 숙적이었던 시라크와 드 빌팡 계열의 수장 격인 쟝 프랑수아 코페를 의원 대표로 임명했으며, 그를 자신이 직접 추진하고 있는 방송개혁위원회의 자문 위원장으로 겸임시키는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 현 내각의 각료 중 대다수는 사르코지의 사람이라기보다 시라크 계열의 사람이다. 사르코지가 시라크 밑에서 숱하게 시집살이를 당할 당시 시라크 진영에 있던 인사들이었다. 당시의 국방 장관이었던 미셀 안리오 마리는 현재 내무부 장관이다. 보건부 장관인 로즐린 바슐로는 한때 시라크의 대변인까지 맏았던 정통 시라크맨이었다. 물론 내각의 서열 1, 2위는 사르코지의 최측근인 프랑수아 피용 총리와 베르트랑 고용부 장관이다. 이들은 시라크 내각에서 ‘팽’당했던 인사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국정 동반자로 여겨졌던 박근혜 전 대표조차 껴안지 않았지만, 사르코지는 자신의 정적이었던 시라크의 측근들을 모두 중용했다. 이러한 포용책은 당내 화합을 기반으로 의회의 동의를 끌어내고 장관들을 중심으로 개혁을 실천에 옳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둘째-인재 등용. 능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그도 없으면 쓰지 않는다

이명박 내각의 인사는 대통령 자신의 인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르코지의 인사 정책 또한 탕평책이라는 대의를 담기는 했으나, 논공행상에 치우쳤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집권 초기의 경우 오히려 ‘슈퍼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강력한 대통령 노릇을 하는 바람에 장관들이 할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의 사정은 달라졌다. 사르코지는 지난 1월, 마치 초등학생들을 다루듯이 장관들을 평가했다.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내고 석차까지 매겼다. 대통령이 수시로 돌아가는 현안을 챙기기 때문에 장관들의 손에는 서류가 없는 날이 없다. 좌파 인사로 인권부 장관에 지명되어 화제를 모았던 라마 야드 장관은 각료회의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라마 네 생각은 어때?’라는 말을 너무 들어 진절머리가 난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 제헌 60주년 기념 만찬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철승 헌정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왼쪽 사진은 사르코지 대통령. ⓒ연합뉴스
이런 분위기는 현재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개혁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방부 장관은 83개 군부대 폐지를 기반으로 하는 국방 개혁을 놓고 군 인사 및 시민들과 한창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그는 “10년, 15년 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육군중심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설득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군부대가 폐지되면 지역 경제가 무너진다고 반발하자 “군부대의 임무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국방이다”라고 총리까지 거들고 나섰다. 미디어 재벌의 딸이라는 이유로 여론의 몰매를 맞았던 베르케스 고등교육부 장관은 대학 개혁을 위해 학생 대표들을 수시로 만나며, 1주일에 한 번꼴로 방송에 나와 개혁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라시다 다티 법무부 장관은 중복된 법원 편재를 전면 수정하고 있다. 그녀와 일한 법무 관료들이 줄지어 자리를 떠나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여론이 있지만 개의치 않고 있다. 주택부 장관은 무주택자들을 위한 주택공급정책의 일환으로 하루 15유로를 적립하면 집을 제공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르코지의 개혁이 각개전투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이런 기류를 의회도 뒷받침하고 있다. 현 프랑스 정권은 출범 14개월 만에 53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무리안 법안의 개정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사회당의 우려도 있지만, 지난 어떠한 정권도 이렇게 빠르게 많은 법안을 처리한 적은 없다. 법안 가운데는 지난 7월13일에 이루어진 대통령 권한에 대한 개헌안이 눈에 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안은 한 표 차이로 통과되었으며, 그것은 우파의 표가 아닌 사회당 자크 랑이 던진 것이었다.

셋째-사르코지를 살린 적과의 동침. 생각이 맞으면 함께 간다

사르코지가 당내 화합을 위해 반대파를 끌어안은 것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좌파 인사들까지 끌어안은 시도였다. 구색 갖추기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사르코지의 구애는 적지않은 성과를 이끌어냈다. 최근 대통령 권한에 관한 개헌안 통과 또한 사실상 사회당의 한 표 덕분이었다. 외교적으로 큰 성과라고 평가되는 지중해연합 발족에도 국경 없는 의사회의 창립 멤버로서 국제적 인지도와 동유럽 지도자들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베르나르 크슈너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개헌을 둘러싸고 화제의 중심에 오른 것은 단연 쟈크 랑 문화부 장관이었다. 좌파 지식인으로 자문위원회에 참가했던 쟈크 아탈리와 같이 쟈크 랑은 사회당 출신으로 사르코지의 개혁 자문에 응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번 법안 상정에 앞서 이미 찬성을 공언해 왔으며, 결과가 1표 차의 승리로 끝나자 모든 시선은 그에게 쏠렸다. 세골레 전 후보는 그를 향해 배신자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개헌안에 사회당이 제시한 부분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습관적인 반대는 이로울 것이 없다” “사회당의 반대 전력은 부실했다” 사회당 내부에서 쏟아낸 비판들이다. 사회당 내부에서는 쟈크 랑의 축출에 관한 논의가 공공연히 일었다. 그럼에도 민심은 달랐다. 지난 7월2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53%는 당파를 넘어선 쟈크 랑의 선택을 지지했으며, 64%가 쟈크 랑이 사회당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정책을 향한 합의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던 셈이며 사르코지의 ‘적과의 동침’은 결국, 극적인 개헌 통과라는 성과를가져 온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초기 성격을 단정짓는 것 중 하나가 ‘반좌파’였다고 한다면 사르코지의 경우는 그 반대다. 사르코지가 시라크에게 정권을 이양받는 날 관례에 따라 전·현직 대통령의 독대가 30분간 있었다. 전임자가 핵무기를 비롯한 국가 기밀을 설명하고 조언을 하는 자리였다. 시라크 대통령이 사르코지에게 좌파의 스타인 베르나르 크슈너와 거리를 두라는 조언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프랑스 정가에 파다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베르나르 크슈너를 외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이후 불가리아 간호사 납치 사건, 베탕쿠르 구출 등은 물론 동구권에 발이 넓은 베르나르를 이용한 전방위적 외교로 지중해연합도 발족시킬 수 있었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넷째-형님 관리.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한다

2006년 사르코지가 공공연히 대선 출마 의도를 내비치며 시라크와 앙숙이 되어갈 무렵, 프랑스의 한 민영 방송은 “사르코지 두 형제, 프랑스를 지배할까?”라는 의미심장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다름아닌 사르코지의 친형인 기욤 사르코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메데프의 부회장이 바로 사르코지의 친형인 기용 사르코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형은 재계에서 동생은 정계에서 간판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다. 2년이 흐른 지금, 기욤 사르코지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취임식 기념 사진에도 얼굴이 없었다. 메데프는 부회장 자리를 2006년 8월에 떠났으며 현재 한 재단의 회장으로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조용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최근 르몽드의 자회사에 관여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발 빠른 좌파 인사들은 기욤 사르코지가 언론을 장악하려 든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르코지에게 재계 인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친인척 관리는 철저히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사르코지의 친인척으로 정계에 있는 인사로는 29살로 시의원에 당선된 아들 장 사르코지가 전부다.

다섯째-의혹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자세. 불도저라면 리더십을 발휘해 밀고 나간다. 그리고 비전을 내놓는다.

농민 운동가로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죠세 보베는 국민적 인기를 업고 지난 대선에 출마한 인물이다. 그가 대선 전 공개 토론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법적인 답안이 돌아왔다. “비폭력이 기본이다.” 질문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반대하며 밭을 뒤엎고 외국 문화에 반대한다고 멕도날드를 부순 것은 무엇인가.” 보베는 할 말을 잃는다. 인기는 있었지만 대통령 감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었다. 훌륭한 농민 운동가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지만, 국제적인 사안에 대한 견해와 대책, 자신의 행동을 뒷받침할 만한 확고한 논리가 없이는 국가 수반이라는 중책에는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그를 통해 재차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초기부터 BBK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명쾌한 답변도 없었다. 사르코지의 경우 유일하게 꼬여 있는 사안은 전부인 세실리아와의 관계였다.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하는 프랑스 정서에도 불구하고 저녁 뉴스에 출연해 “모든 평범한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커플 또한 문제가 있다”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한 그의 솔직하고 분명한 고백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는커녕, 오히려 강하기만 했던 그의 이미지에 인간미를 보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 ‘747’이었다면, 사르코지 또한 물가 안정과 소비자 구매력의 향상이 첫 번째 공약이었다. 물론 두 쪽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사르코지에게는 경제 문제 외에 많은 대안이 있었다. 외교·안보·입법·국가 체제·교육·건강 등 전방위적인 개혁 밑그림은 그의 리더십을 탄탄히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따지고 보면 지난 대선에서 패한 좌파에는 사르코지와 같은 인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정책적 대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사르코지는 이제 그가 그렸던 거대한 프랑스를 실천에 옳기고 있다. 이제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비전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표를 이루려면 주변을 아우르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그가 지금 고전하는 이유는 사르코지의 ‘큰 정치’와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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