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면 다야” 증시 울리는 살벌한 리포트
  • 정선영 (아시아경제 기자) ()
  • 승인 2008.12.23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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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등 잇단 ‘매도’ 의견에 국내 기업 ‘부글’

▲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JP모건 사옥. ⓒ시사저널 우태윤

최근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를 놓고 증시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JP모건이 하나금융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낸 것을 비롯해 프랑스 크레디리요네(CLSA), 다이와증권,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 ‘매도 리포트’를 내놓으면서 해당 기업의 주가가 급작스레 주저앉는 등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았다. 증권업계에서는 외국계 금융사들의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 행렬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얌체 리포트 마케팅’ 같은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투자자들의 민감한 심리를 자극해 오히려 증시에 불안감을 심어주고 증권사 브랜드 인지도 제고만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매도 리포트 랠리의 시발점은 JP모건의 리포트였다. JP모건이 지난 12월2일 하나금융지주에 대해 중소기업 무수익여신(NPL) 비율 상승이 부정적이라며 목표가를 4만원에서 1만8천원으로 낮춘 후 “하나지주가 최근 투자자 설명회 등 정보 접근을 제한해 독립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을 제시하기가 어려워져 기업 분석을 종료한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하나금융은 주가가 2만원대에서 1만원대로 반 토막 났다.

GS건설 역시 크레디리요네(CLSA)증권의 매도 리포트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CLSA증권이 목표가 하향 조정과 매도 의견을 내놓으면서 GS건설의 주가는 14.92%나 곤두박질 쳤고 이틀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다이와증권의 리포트는 자동차주를 명중시켰다. 다이와증권은 “11월 자동차 내수 판매는 2006년 이래 최대 감소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자동차 내수 판매의 급격한 감소 등으로 올해 4분기 수익이 예상보다 약화될 수 있다”라고 언급해 현대·기아차 주가가 하루 만에 7.25%, 12.82%씩 급락했다.

한 증권사 수석 애널리스트는 “외국계 증권사들의 경우 매수이든 매도이든 목표 주가를 올릴 때는 크게 올리고 내릴 때도 과감히 깎아 목표가 변동 폭이 큰 편이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어 목표가를 과감히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표 주가를 크게 조정하는 것이 기관투자가의 관심을 끌기에도 유리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처럼 과감하게 목표가 조정을 하면서도 충분한 자료를 뒷받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지주·GS건설 등 큰 피해

“내년 적자 예상이라고 했으면 마이너스에 대한 분석을 해줘야 하는데 달랑 한 페이지 반짜리 보고서를 내놓고 자세한 설명이 없어 미흡한 부분이 많다.” CLSA의 ‘삼성전자 적자전망 리포트’를 보고 국내 애널리스트 김 아무개씨가 한 말이다. 메릴린치는 삼성전자가 올 4분기 최악의 경우 영업이익에서 5백억원 손실을, CLSA는 내년 상반기 8천억원의 손실을 각각 전망했는데 이와 관련해 그는 “중요 변수인 환율이 올 3분기만 해도 100원 변하면 영업이익이 2조~2조5천억원까지 차이가 났는데 이를 어떻게 고려했는지도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환율이나 경제 상황에 대한 전망, 밸류에이션이나 실적 전망 테이블 등 어느 하나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적자 전망’이라는 자극적 문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애초부터 부정적인 면만을 담은 의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전자 리포트에서도 내년도 PC 성장률을 국내에서는, 삼성전자는 +3%, 하이닉스나 가트너는 +5%로 보았는데 유독 CLSA만 -9%로 예상하는 등 과도하게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지난 11월 JP모건은 하나금융지주 리포트에서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한 중소기업 무수익여신(NPL) 비율 때문에 금감원의 구두 경고를 받기도 했다. 금감원은 “JP모건의 하나금융지주 보고서가 NPL 비율을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이 아닌, 요주 이하 여신 비율로 삼은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하나금융지주에 관한 JP모건의 보고서는 문제가 있다”라며 구두 경고를 내렸고, JP모건은  “정부 당국이 정의하는 하나금융지주의 무수익 여신 비율은 1.68%가 맞다”라는 노트를 냈다.

▲ 외국계 증권사들이 내놓는 리포트는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것이라 과감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시사저널 우태윤

그러나 과도하게 부정적인 의견을 낸 리포트로 해당 기업이 입는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주주의 몫이 된다. 이같은 미흡함에도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는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또는 증시를 좌지우지해온 ‘외국인’ 프리미엄 덕에 신뢰를 얻은 측면이 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리포트 원문을 기관투자가들에게만 제공하고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리포트를 구하려면 거금을 들여 해당 증권사의 고객이 되든지 아니면 인맥을 총동원해 해당 증권사의 고객사로부터 전달받든지 해야 한다. 증권 애널리스트들조차 외국계 리포트를 보는 ‘퍼스트콜’이라는 사이트에 별도로 가입해서 검색해야 볼 수 있다.

게다가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 내용이 영어로 쓰여 외국에도 발간된다는 점도 외국계 증권사의 영향력을 키워주었다. 외국인이 리포트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국내 증시의 ‘외국인 울렁증’을 한층 가중시킨 셈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외국계 리포트가 영어로 작성되어 자료가 덜 뒷받침되더라도 국내 투자자들이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해외 자료에 대한 맹신에서 오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는 “외국계 증권사에서 나오는 리포트의 질이 국내 증권사의 그것보다 특별히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국내 증권사에서는 매수에서 중립으로 의견을 바꾸면 시장에서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완곡 화법이 통하는데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대놓고 매도 의견을 말한다. 일종의 문화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국내 증시에서 이같은 논란이 일고 있음에도 정작 당사자인 외국계 증권사들은 태연하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애널리스트들의 독립성은 물론 기관투자가 우선 정책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차이니스 월’이다.

영어로 작성된 자료 맹신도 문제

차이니스 월은 지난 1929년 대공황 시절 미국 정부가 투자은행과 증권사 간에 부당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내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금지한 데서 비롯된 용어로 ‘내부 거래의 만리장성’이라는 뜻에서 차이니스 월이라 불린다. 최근에는 기업 각 부문 간에서 중요한 미공개 정보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한 ‘이해 상충 방지 체제’ ‘정보 방화벽’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외국계 증권사와 국내 증권사의 리서치 모델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외국계 증권사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차이니스 월’이다. 같은 계열사인 투자 자문사가 M&A 등과 같은 중요한 거래를 할지라도 리서치 부서에서 셀 리포트를 내는 것에 대해 항의할 수 없다. 부서 간의 철저한 독립성 유지와 애널리스트의 전문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설명도 국내 증시의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행진에 대한 의문점을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리포트가 기업의 본질 가치보다는 외국인 투자가의 입장에서만 기업을 평가하고 있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가 외국인 투자가의 매매 행태에 따라 널을 뛴다는 것이다. 신영증권의 조용준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자동차의 경우 매도 의견을 내려면 8만원대에서 의견을 냈어야지 3만원대까지 떨어지고 난 뒤에 매도 의견을 내는 것이 투자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주식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고려해서 거래하는 상품임에도 최근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가 기업의 본질 가치보다는 단기적인 외국인 투자가의 입장에서 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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