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제국’에 왕이 돌아온다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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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투병 생활 끝에 6월 말 복귀…“이번에는 또 무엇?” 전세계 이목 집중

▲ 스티브 잡스 애플사 최고경영자(위)가 지난해 9월 아이팟나노를 선보이고 있다. ⓒEPA

피터 오펜하이머 애플 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4월22일 애플 사 1분기 영업실적을 발표했다. 애플 사는 1분기에 매출 81억6천만 달러, 순익 12억1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매킨토시컴퓨터 2백22만2천대, MP3플레이어 아이팟 1천100만대, 휴대전화 단말기 아이폰 3백79만대를 팔았다. 매킨토시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 줄었을 뿐 아이팟은 3% 성장했고, 아이폰은 1백23% 성장했다. 비휴가 시즌 실적으로는 사상 최고였다. 세계 경제 위기 탓에 미국 기업들이 사상 최악의 영업실적을 내놓고 있는 터라 애플 사가 거둔 실적에 미국 투자 분석가들은 놀랐다. 오펜하이머 최고재무책임자는 실적 발표가 끝나고 투자분석가들과 함께한 화상회의(컨퍼런스콜)에서 “6월 말 스티브 잡스 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과 함께 애플 사가 거둔 경이로운 분기 실적은 투자 분석가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화두가 ‘왕의 귀환’으로 바뀐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올해 1월 6개월 병가를 냈다. 잡스는 지난 199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다. 췌장암은 대부분 늦게 발견되는 탓에 수술 시기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잡스는 보기 드물게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을 앓고 있던 터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잡스는 건강을 회복했다. 건강 이상설이 다시 불거진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잡스는 지나치게 마른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애플 사는 지난해 1월 잡스가 ‘호르몬 불균형’을 겪고 있으나 치료가 어렵지 않다고 발표했다. 열흘 후 애플 사는 발표문을 수정해야 했다. 병증이 예상보다 복잡해 잡스가 6개월 병가를 낸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와 함께 애플 사 주가는 순식간에 10% 가까이 빠졌다.

잘나가는 애플에 날개 달아주는 격

팀 쿡 애플 사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경영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애플사 경영진은 애플의 실적보다 잡스 건강에 대해 질문을 더 많이 받아야 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는 스티브 잡스의 건강과 관련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애플 이사회는 현재 스티브 잡스의 주치의와 정기적으로 상의하면서 병세를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철저하게 잡스의 병세를 보안에 붙이자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일부 언론은 잡스가 완전히 물러나면 누가 애플을 이끌지를 전망하는 기사까지 내놓기도 했다. 그 어떤 언론이나 투자 분석가도 잡스의 역할을 대신할 인물을 찾지 못했다.

이제 스티브 잡스가 애플 사의 최고경영자로 돌아온다. 기술·디자인업계 관계자는 그의 복귀를 ‘왕의 귀환’에 비유한다. 전세계 정보기술(IT) 산업 관계자와 애플 마니아들은 ‘왕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술·디자인 전문가들은 그를 흠모한다. 세계 경제·경영 전공자들은 그를 배우려고 애쓴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마케팅 역량을 집중했다. 자사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선보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잡스는 제품 디자인의 미학적 가치에 주목했다. 고객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제품 성능이나 가격보다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전략은 주효했다. 한때 컴퓨터 제조업체로 전락했던 애플 사는 다시 정보기술 산업의 총아로 복귀했다. 애플 사는 지난해 매출 3백25억 달러, 순이익 48억3천4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세계 고용 인원은 2만2천명이다. 스티브 잡스는 지금까지 매킨토시컴퓨터, OS X 운영체제, 갖가지 응용 프로그램으로 산업 혁신을 주도했다. 애플은 디지털음악 시장에서도 혁명을 일으켰다. MP3플레이어 아이팟은 지금까지 2억대가량 팔렸다. 컴퓨터 사용자들이 냅스터 같은 음악파일 공유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음악을 배포하는 와중에 애플은 유료 음악파일 공유 사이트 아이튠을 운영했다. 애플 사는 아이튠을 통해 60억 곡을 팔았다. 애플 사의 영업실적은 늘 투자 분석가의 전망치를 넘어섰다. 애플 사 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0% 가까이 상승했다.

실패와 성공 거듭한 고집불통…결국은 그가 이겨

▲ 애플 사옥. ⓒEPA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4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스티브 잡스를 포함시키며 ‘재치 있고 환경 보호 열광자이고 섬세한 경영자’로 묘사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스티브 잡스를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선정했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 가치관을 파괴하는 반문화 영역의 우상이다. 그는 1972년 영적 깨달음을 얻고자 인도로 떠나면서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칼리지를 다니다가 한 학기 만에 그만두었다. 그는 신제품 발표자로 나서면서도 자기가 손수 만든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는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유명하다. 업계와 협의해 표준을 만들거나 공동 마케팅을 벌이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 경쟁자들을 제압하며 컴퓨터·음악·휴대전화 단말기 영역에서 소비자 취향을 장악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사를 공동 창업했다. 워즈니악이 기술 분야의 천재였다면 잡스는 마케팅의 귀재였다. 잡스는 1980년대 마우스 클릭으로 간단히 작동하는 사용자 친화적인 운영체제를 출시했다. 1986년 이사회와 불화를 겪으면서 애플 사 사장직을 사임하고 컴퓨터 제조업체 넥스트를 창업했다. 넥스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으로 고전했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실패로 참담해하다가 3D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픽사 애니메이션스튜디오를 공동 창업했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출시해 전세계적으로 40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기록했다. 또, 아카데미상을 20회 수상하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한 스티브 잡스의 외도는 모두 결실을 맺었다. 애플은 1997년 넥스트 인수와 함께 애플의 조종간을 다시 스티브 잡스에게 맡겼다. 픽사도 2006년 월트디즈니에 인수되었다. 이 협상 결과 스티브 잡스는 월트디즈니 최대 주주가 되었고, 디즈니 이사회에 합류했다.

스티브 잡스는 올해 6월 애플 사 경영에 복귀하면서 몸만 돌아오지 않을 듯하다. 애플컴퓨터는 올여름 새 아이폰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 노트북 컴퓨터보다 작지만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보다 큰 휴대용 기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그의 귀환에 맞춰 발표될 애플 사의 신제품에 주목하고 있다. 애플 사 관계자뿐만 아니라 전세계 정보기술 산업 관계자들은 ‘왕의 귀환’에 걸맞은 또 다른 스티브 잡스의 신화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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