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돈으로…진화 끝없는 병역 비리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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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법 고도로 지능화해 당국도 속수무책…‘유전면죄, 무전입대’ 현실에 서민 분노 깊어져

▲ 입영 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서울지방병무청 입구와 어깨 탈골 수술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 강남의 ㅁ병원. ⓒ시사저널 임준선


대한민국 남자 중에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열에 아홉은 부정적일 것이다.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하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남자들이 숙명적으로 져야 할 병역 의무이기도 하다. 군대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면서 기피 1순위이다. 때문에 병역 기피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주로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 아들, 운동선수, 연예인 등이 병무 비리의 단골손님들이다. 

병무청도 병역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제도를 보완했다. 지난 2003년도부터는 담당 직원 두 명과 대학생 병무 홍보요원 60명이 매일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병역과 관련 있는 불건전한 내용이 게재될 경우 수사 기관에 통보하고 있다. 포상금까지 내걸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범죄 수법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방패가 창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번번이 뚫리고 말았다.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신종 병역 비리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아직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병역을 면제받거나 현역에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병역 비리는 갈수록 지능화·전문화·기업화되고 있다.

경기도 일산경찰서와 서울 광역수사대가 수사하는 병역 비리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지금까지 수사 대상에 오른 병역 비리 대상자만 해도 1천명이 넘는다. 역대 최대 규모이다.

마치 고구마 줄기에 달린 고구마처럼 무더기로 달려나오고 있다. 경찰은 수사 인력을 대규모로 편성하고 수사 범위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참에 병역 비리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며 사실상 ‘병역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병역 비리 브로커들의 정확한 숫자와 규모 등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 병역 기피 수법이 계속 진화하고 있어 이를 근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병역 기피자 대다수가 사회지도층의 아들이어서 수사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 수 있을지도 두고 볼 일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병역 기피자와 브로커가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다. 브로커들은 카페나 블로그 또는 지식 검색 등을 통해 병역 기피 대상자를 찾고 있으며,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의 상담이 잇따르면서 자연스럽게 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이다. 인터넷에서는 ‘병역 연기’ ‘병역 기피 방법’ 등을 검색하면 기묘한 방법들이 버젓이 소개되고 있다.

일명 ‘환자 바꿔치기’로 불리는 이번 병역 비리 사건도 매개체는 인터넷이었다. 지난 9월16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체포된 병역 브로커 윤 아무개씨(31)의 경우는 전형적인 기업형 병역 브로커이다. 윤씨 등은 서울 창신동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병역 비리 전문 브로커로 활동했다.

윤씨의 수법은 이렇다. 인터넷 병역 상담 사이트를 개설하고, 발작성 심부전증 환자의 진단서를 의뢰인(병역 기피 대상자)의 것으로 바꿔치기했다. 여기에는 동일 증상을 가진 환자 김 아무개씨가 가담했다. 김씨는 윤씨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의뢰인을 모집하면 건강보험 카드로 병원 치료를 받은 뒤 진단서를 의뢰인들에게 건넸다. 이들은 환자가 발작이 일어나 응급 치료를 받을 때 병원이 환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에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주로 야간 응급실을 이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환자의 의료보험증을 의뢰인의 것과 쉽게 바꿔치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자신의 의료보험에 발작성 심부전증 치료 기록을 남긴 뒤 병사용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했다. 병무청은 병원의 진단서를 믿고 ‘면제’나 ‘공익’ 판정을 내림으로써 병역 비리가 완전 범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병역 검증 절차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씨는 이런 수법으로 지난 2006년 1월부터 최근까지 의뢰인 30명으로부터 3천7백여 만원을 챙겼다. 발작성 심부전증 환자인 김씨는 3천3백여 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병원-병무청-브로커 유착 가능성도 수사

하지만 이들이 병역 비리를 저지른 기간이 3년 정도인 데다가 전문 수법을 사용한 점으로 볼 때 실제 병역 비리를 알선한 병역 기피자의 브로커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윤씨의 의뢰인 중에는 유명 가수와 카레이서 그리고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아들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병원이나 병무청이 직·간접적으로 브로커들과 유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감면이나 면제받은 인물들을 진단한 대학병원 등을 압수수색했다.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야간 응급실에 발작 환자가 오면 환자를 먼저 살피는 것이 병원의 의무이다. 당장 환자의 상태가 심각한데 주민등록증과 건강보험증을 가지고 환자의 얼굴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어깨 수술’ 병역 비리를 수사 중인 경기 일산경찰서에서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어깨관절 전문 ㅁ병원이 병역 기피용 어깨 탈구 수술을 해주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 이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 2백여 명이 병역 기피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 중 1백60여 명을 소환해 69명의 혐의를 확인했다. 여기에는 운동선수, 고위 공무원의 아들, 대기업 간부 아들, 중소기업 대표 아들 등이 포함되어 있다.

병역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ㅁ병원은 고문변호사를 내세워 “우리는 환자의 증세를 보고 수술을 했고, 병역 기피 목적의 수술은 권유하지도 않았으며 그런 의도를 듣지도 못했다”라고 항변했다. 경찰은 이 병원 의사들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지난 9월24일에는 지방 병무청 10곳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경찰청은 병무청과 공조해서 각종 질환으로 신체검사 재검을 받아 병역 감면이나 면제를 받은 사람들을 전면 재조사할 방침이다.

병역 비리를 보면서 가슴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부모들이다. 군 입대에도 ‘유전면죄’ ‘무전입대’가 적용되는 현실에 대다수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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