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예외 없이 ‘허우적’ ‘집권 3년차 증후군’ 재발하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2.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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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때 ‘장관 수뢰’, DJ 때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노무현 때 ‘오일 게이트’…권력 단맛에 빠진 인사들 발호

▲ 1. 1995년 5월26일 대검 이원성 중수부장이 이형구 전 노동부장관 수뢰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 2000년 10월27일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대표이사가 구속 수감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법조계에는 “집권 3년차가 되면 검찰이 바빠진다”라는 속설이 있다. 역대 정권의 예를 보아도 이는 확연하다. 5년 임기 중 집권 3년차부터는 정권의 부패와 비리가 새어나온 경우가 많다. 권력의 맛을 알게 되고 집권 초기의 경계심이 사라짐에 따라 그 틈새가 나타나면서 그만큼 검찰이 개입할 여지가 생겨난다. 검찰이 대통령 5년 임기의 스케줄을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 11월30일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대개 검찰은 집권 1?2년차에는 살아 있는 권력의 문제를 숨겨두고, 2?3년이 되면 여당 의원부터 잡고, 마지막에는 친·인척, 정권이 끝나 죽은 권력이 되면 실세 등 모든 사람을 잡아넣는데, 최근에도 이런 시나리오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YS) 정권은 검찰에게도 새로운 기회였다. 이전 군사 정권 시절에 안기부나 군, 경찰 등 경쟁적인 사정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나 있던 검찰이 다시 전면으로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과 율곡 사업 비리 사건이 이전 정권에 대한 수사였다면, YS 정권 3년차에 있었던 이형구 당시 노동부장관 수뢰 사건은 현직 장관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이장관의 내사를 확인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처음에는 강력하게 부인하더니 이내 사실을 시인하며 “이제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수사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검찰의 자신감은 이후 YS 정권 말기인 1997년 당시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를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김대중(DJ) 정권의 집권 3년차인 2000년에 검찰은 젊은 벤처인들에게 칼을 꺼내들었다. 당시 32세의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KDL) 대표와 28세의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 등 두 젊은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그야말로 마구 뒤흔들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핵심 의혹인 정·관계 로비 네트워크를 밝히는 데 실패하면서 검찰의 신뢰도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권의 실세 이름들이 줄줄이 거론된 대형 게이트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부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먼저 터진 것은 ‘정현준 게이트’였다. 2000년 10월 정현준 KDL 사장과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 등이 5백억원대의 금고 돈을 횡령하면서 정치인과 금융감독원, 검찰 간부 등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쥔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이 자살하고 핵심 관련자들은 해외로 도망가면서 사건은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를 띠었다. 정현준 게이트가 휩쓸고 지나자 정치권은 진승현씨 문제로 다시 긴장하게 된다. 일명 ‘진승현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이다. 진씨는 2000년 8월, 투자전문 회사인 MCI코리아를 앞세워 한스종금을 단돈 10달러에 인수하려다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외자로 포장된 돈 3백30억원은 한스종금에서 나온 돈으로, 결국 한스종금과 MCI코리아의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진씨가 도피 생활을 하는 3개월 동안 한쪽에서는 진씨의 구명 운동이 벌어지는 촌극도 연출되었다. 검찰은 같은 해 12월20일 진씨를 배임 혐의로 기소하는 등 사건 관련자 22명을 구속 기소했지만, 이른바 정·관계 인사로 거론되던 몸통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 1. 2000년 12월1일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씨가 서울지검에 자진 출두하고 있다. 2. 2005년 6월25일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성남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행담도 개발 관련 서류를 압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2005년에는 ‘권력의 시녀’ 오명 벗으려 검찰이 직접 정권에 맞서기도

노무현 정권 역시 집권 3년차에 들어서자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2005년 상반기에는 ‘오일 게이트’와 ‘행담도 의혹’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유전 개발과 전혀 관련이 없는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철도재단)이 느닷없이 사할린 유전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급작스럽게 사업을 접고 그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엉터리 대출까지 받았던 오일 게이트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권력형 비리라는 의심을 받았다. 검찰은 2개월 동안 수사했고 특검까지 도입되는 굴욕을 당했지만, 실체는 밝혀내지 못했다.

정찬용·문정인·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속칭 ‘청와대 3인방’의 이름이 거론되던 행담도 개발 의혹 사건, 용도 변경으로 포스코 건설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을 받으며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의 이름이 거론되던 경기 광주시 오포읍 아파트 재개발 인·허가 비리 사건에도 검찰은 칼을 빼들었지만 용두사미라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 측근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라며 정치 공세를 펼쳤으나 검찰은 “물증이 없다”라고 결론지으며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뺐다.

검찰에게는 오히려 같은 해 하반기에 일어났던 국가 정보 기관의 불법 도청 사건,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이 더욱 상징적이었다. 이 사건은 검찰과 정치권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했다. 수사가 진행되던 10월 사상 처음으로 법무부장관의 수사 지휘권이 발동되고, 이에 대한 항의로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곧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당시 경찰의 손을 들어주는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하면서 검찰을 압박했다. 정총장은 “절대 수용 불가이다”라고 항의했고, 평검사들까지 “옷을 벗겠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2005년은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력과 직접 서로 맞부딪히는 역사적 첫 페이지를 장식한 원년인 셈이다. 이렇듯 역대 정권에서 집권 3년차는 검찰이 권력 핵심부를 향해 칼을 대기 시작하는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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