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인정, 일본도 짐 벗는 일”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5.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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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병합 무효’ 선언 이끈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 “일본 지식인들 가세해 대화 가능해졌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2백13명이 지난 5월10일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한·일 병합 무효’를 선언했다. 1910년 일본의 강압으로 병합이 이루어진 지 100년 만에 조약 자체가 불법 협약이며 원천 무효라는 뜻깊은 공동성명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선언에 참여한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68)의 감회는 남다르다. 이교수는 20여 년 동안 한국 병합은 성립하지 않았다는 ‘절대 무효론’을 펼치면서 이를 뒷받침할 역사적 근거를 제시해왔다. 지난 5월14일 이교수를 만나 한·일 병합 조약의 불법성과 이번 공동 선언이 갖는 의미를 들어보았다.

이번 공동 선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국 병합 문제에 대해서는 한·일 간에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입장 차가 컸다. 일본의 경우 정계를 중심으로 ‘합법 시혜론’을 주장해왔다.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다는 것이다. 양심적인 지식인도 ‘합법 부당론’ 입장이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에 일본측에서는 1백5명이 참여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효 부당’에서 ‘무효 부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전에는 지식인조차 합법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한·일 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앞으로의 한·일 간 정치적 타결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일본 지식인들은 공개적으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본측에서 처음부터 100명은 참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지금까지 일본의 태도로 보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일본 인사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강한 표현은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측 이탈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굉장한 용기와 강한 의지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조약을 무효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조약의 형식과 진행 절차에 관해 밝혀진 사실만 보아도 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번에 일본 지식인을 대규모로 움직이게 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진실에 있다.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일으킨 러·일 전쟁 이후 한국 국권을 빼앗은 조약이 다섯 개 있다. 하나같이 국권에 관한 사항을 다룬 조약인데도, 정식 조약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 황제의 비준서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다. 억지로 하다 보니까 을사조약(1905년)은 제목 자체가 없다. 그래서 사후에 차수를 갖다 붙였다. 1차 한·일 조약, 2차 한·일 조약 하는 식이다. 영어로 번역해 미국과 영국 정부에 보낼 때는, 한·일협약(1904년)에는 약식 조약인 ‘agreement’를, 을사보호조약에는 정식 조약인 ‘convention’을 제목에 집어넣었다. 문서 위조이다. 그리고 1차 한·일 조약은 일본 외교 사료관에만 각서 형식의 문서가 남아 있을 뿐 규장각에는 한국본이 없다. 을사조약 이후에는 용지에 관련 기관명이 인쇄되어 있지 않다. 문서를 철한 청색 끈은 한·일 양측이 똑같다. 한국 병합 조약의 경우 종이 질이 똑같다. 심지어 한국어와 일본어 필체도 똑같다. 한 사람이 쓴 것이다. 일본 정부 안에 있던 한국병합준비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강행한 것이다.

당시 다른 공문도 그랬나?

1992년부터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대한제국의 공문서를 다 꺼내서 검토했다. 제일 먼저 법령 문서부터 조사했다. 그런데 순종황제가 1907년 결재한 문서들에서 서명 필체가 서로 다른 것들이 나왔다.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의정서부터 조약문까지 다 내놓고 보니까 엉망이더라.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일본 외교 문서 자료와 맞추어보았다. 통감부 직원 여섯 명이 두 달 동안 순종황제 몰래 그랬던 것이다.

공동선언을 하면서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동안 한국 학자 가운데서도 ‘힘이 없어 당했는데, 뭘 조사 하느냐’라는 핀잔을 하는 분이 있었다. 국제법을 전공하는 학자 가운데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제법의 원칙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법이 아니다. 을사조약이 강제되었을 때 프랑스의 한 젊은 국제법학자는 “이것은 불법이다. 무효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학자의 논문이 1937년 하버드 법대가 주축이 된 보고서에 남아 있다. 당시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조약 다섯 개 사례 가운데 하나가 을사조약이었다.

▲ ‘한·일 병합’ 관련 일본 서적들. ⓒ시사저널 유장훈

일본 내 언론 등의 반응이 예상보다 작은데.

일본은 현재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들어가 있다. 신문사나 방송국도 대부분 적자 운영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진보적인 주요 언론도 중도로 옮기고 있다. 언론이 한·일 관계와 관련해 전통적인 주장과 다른 보도를 하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을지 모른다. 한 신문사의 책임자가 서명에 참여하려다가 그만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기류도 있다. 한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해야 일본도 사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무효 선언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 정치권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정치권에서 나서야 한다. 여야 관계없이 일본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도록 성명서를 내 정부에 건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양 국가의 수장이 공동성명서를 내도록 해야 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시점을 하나의 기회로 맞이해야 한다.

현 정권 들어 과거사 문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처음에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과거는 묻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발언이 나오지 않더라.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지한 것으로 본다. 한편으로 독도 문제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해왔다. 그런데 별개가 아니다. 한국 병합은 한반도의 영토와 국민을 대한제국 황제가 일본 황제에게 넘기는 것이다. 강제로 해놓고 자발적으로 한 것처럼 문안을 만든 것이다. 독도는 러·일 전쟁 직전에 일본 영토로 병합이 되었다. 한국 병합 문제는 독도 문제의 본론이다. 그런데 한 쪽은 적극적이고 한 쪽은 소극적이면 자기 모순이 된다.

과거의 일로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한국인은 어떻게 보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선조들이 100년을 잘못된 역사 속에서 부당한 고통을 당했는데, 미래에 덕을 좀 보자고 물 타기를 하는 것은 떳떳하지가 않다.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일본에게도 벗어야 할 짐을 벗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일본을 돕는 일이며,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일본측에서 오는 7월까지 참여 인사를 5백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알려왔다. 우리도 거기에 맞추어 양측 합해서 1천명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게 될 것이다. 일본측에서는 이를 내각 수반에게 제출하겠다고 한다. 부담이 있는 쪽에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정리해서 실제로 부당하게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를 더 알려나갈 생각이다. 일본에 있는 출판사로부터 한국 병합에 이르기까지 강제된 조약의 문제점에 관한 책을 내자는 요청이 들어와 있는데 빨리 진행해야겠다. 그리고 시각적 자료가 굉장히 중요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요청으로 문제의 조약과 해석을 붙인 조약 자료집을 7월까지 낼 예정이다. 설명문으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넣기로 했다. 일본에도 보급되도록 해서 일본인들도 자신들이 자랑해 온 선조 정치 지도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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