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경찰’ 악의 뿌리 뽑아내라
  • 김성천 | 중앙대 법대 교수 ()
  • 승인 2010.06.2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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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선에서 사실 알고도 조직적 은폐 꾀했을 수도…진실 드러나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를 상대로 고문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슬퍼런 독재 정권하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날개 꺾기’와 ‘재갈 물리기’ 등의 전통적 수법이 동원되었다. 해당 경찰서의 강력팀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천장을 향하도록 각도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 피의자 고문 의혹 사건으로 수사를 받아온 양천경찰서 경찰관들(모자 쓴 사람들)이 6월23일 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뒤 차에 올라타고 있다. ⓒ연합뉴스

 

때문에 고문이 이루어진 카메라 바로 밑의 구석은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고문이 의심되는 기간의 영상 기록도 통째로 누락되어 확인이 불가능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고문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7개월간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피해자가 22명에 달한다.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은 다섯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난 6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문 행위를 한 경찰관들에 대해 ‘검찰 고발 및 수사 의뢰’를 하자 양천서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정은식 양천서장은 “2개월간 자체 조사를 했지만, 가혹 행위 사실은 전혀 없었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 처리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검찰 수사에서 인권위의 발표 내용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참으로 뻔뻔한 태도이다. 양천서는 고문 사실에 대해 반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고 덮기에 급급해했다. 더욱이 ‘법적 대응’ 운운하며 협박에 가까운 엄포를 놓았다. 어떻게 ‘국민의 경찰’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의 고문은 충격 그 자체이다. 그동안 경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민중의 지팡이’가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해 국민의 안위보다는 정권의 안위 지키기에 앞장섰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경찰에게는 ‘짭새’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었다.

경찰도 이런 과오를 인정하고 환골탈태하려고 노력했다. 진정한 ‘국민의 경찰’이 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고문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노력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국제적으로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검찰은 양천서의 고문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고, 경찰은 자체 감찰을 벌이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고문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지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여론을 의식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적당히 마무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고문을 자행한 경찰관들은 물론, 윗선에서 고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찰이 사는 길이다. 만약 적당히 덮으려고 했다가는 국민적인 반발에 부닥칠 것이고, 경찰의 명예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 고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한 존재이다. 또한, 고문은 한때 합법적인 수사 방식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형전을 들여다보면 고문에 사용할 도구의 규격, 하루에 때릴 수 있는 매의 횟수, 고문이 허용되는 기간 또는 금지되는 기간 등이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고문은 어떤 경우에서든 고문하는 자의 ‘의도’ 살리는 결과 낳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국가들만 야만적이어서 고문을 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의 고문 방식은 동양의 그것 못지않게 잔인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유럽 여행을 가보면 도시마다 고문 기구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하나씩 있다. 그곳에 가보면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고통을 주기 위해 발명된 각종 고문 기계들이 공포를 느끼게 한다.

고문은 고문을 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련해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백지 상태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고문을 한다. 둘째, 어떤 사실에 대해 정답을 정해놓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고문을 자행하는 일도 있다. 셋째, 수사관이 임의로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라 답을 조작하기 위한 고문이 있다.

본래 고문이 합법적인 수사 방법으로 인정된 것은 수사 기관의 고문이 첫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이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속하는 고문도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아주 잘 작동되었다. 첫 번째보다는 오히려 이것들이 더 잘 작동되고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건 세 가지 유형 모두 고문을 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답이 나온다는 점에서 분명히 공통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문은 대한제국 시절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 후에 한 번도 합법적으로 허용된 적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 경찰과 헌병에 의해서 고문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고문은 해방이 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서 실시한 우리나라의 인권 실태에 관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수사 기관에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시위가 격화되고 민심이 동요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간첩 사건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가장 전형적인 마녀사냥이었다. 인혁당은 수사 기관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조작이었다.

군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정치적으로 반대의 의견을 표명하더라도 수사 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며 살게 되었다. 실제로 수사 기관이 더 이상은 고문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 모두 믿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민주 경찰로서 수사권 독립까지 꿈꾸던 경찰이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없어졌던 고문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경찰의 행태를 잘 보면 피의자 고문이라는 지금의 결과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측면이 있다. 한번 보자. 촛불 집회 과정에서 예민해진 경찰이 해산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쌍용자동차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이미 체포된 노동자에게 분풀이를 하듯 마구 구타하는 일이 벌어졌다.

용산 철거민 사건에서는 무리하게 진압을 하다가 사람이 죽는 결과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담당했던 지휘관들은 모두 영전했다. 지나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범죄를 진압하기만 하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정권 차원에서 전달해 온 것이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다.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국가가 법에 따라 엄정하게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폭력을 독점할 당위성은 사라지고 만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일부 일탈한 경찰 공무원만의 잘못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경시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에서도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대책도 이원적이야 할 것이다. 해당 경찰관에 대한 처벌과 징계는 누가 보아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권력을 적법하게 행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 ‘범죄 피의자’라고 해서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번 고문의 책임을 몇몇 경찰관들에게만 돌린다면 오히려 경찰 내부의 불만만 쌓일 뿐이다. 경찰은 이번 기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진정한 국민의 경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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