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의 굴레’ 벗어도 민주화 여정은 ‘가시밭길’
  • 조홍래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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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쿠데타 30주년 기념일 실시한 국민투표로 개헌 이뤄…쿠르드족 등 문제로 EU 가입 불투명

터키가 오랜 군사 문화의 굴레를 벗고 새 역사를 썼다. 지난 9월12일 군사 정부 때 만든 법률을 대폭 수정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승인되었다. 개정 헌법은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군부에 예속되어온 사법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제부터 판사와 검사들은 군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군의 세속주의 노선에 압도당했던 이슬람 문화도 가까스로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군정의 잔재를 청산한 이번 개혁 결과에 정부는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다. 정부 대변인은 터키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선언했다.

관영 TRT 방송은 개헌안에 58%가 찬성하고 42%가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반대 표를 던진 사람들은 사법 제도가 정부에 예속되었다고 불평했다. 터키 헌법은 1980년 쿠데타 이후 누더기가 되었다. 이슬람을 근간으로 삼는 민간 정부와 전통적 권력 엘리트로 구성된 군부는 헌법의 본질을 놓고 끝없는 투쟁을 벌여왔다.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쟁점이 된 26개 조항이 개정되었다. 투표율이 78%나 되었다.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드러내주는 수치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재신임을 받은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이스탄불에 위치한 당사에서 가진 회견에서 터키가 향상된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문턱을 넘었다고 말했다.

▲ 지난 9월2일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군부 쿠데타 세력이 저지른 고문으로 실종·사망한 피해자들의 사진을 모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AP연합

터키는 군부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과두(寡頭) 정치 속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이런 시대가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 터키인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군부 우위 사고도 퇴장했다. 개헌에 따라 군인들도 민간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공무원들의 파업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야당의 입장은 다르다. 법관 임명과 관련해 의회에 더 많은 발언권을 줌으로써 군과 민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 온 법원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쿠데타를 주동한 군 엘리트들에 대한 면책은 없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쿠데타 주동자들이 법정에 설 가능성도 열렸다.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고 대통령에 취임한 케난 에브렌 육군참모총장은 이제 93세의 노령에 와병 중이다. 그의 쇠락은 터키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개헌 국민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일부 투표장에서는 쿠르드족과 충돌이 일어났다. 쿠르드족들은 개헌으로 소수 민족의 권익이 향상되지 않는다며 투표를 거부할 것을 독려했다. 경찰은 투표를 방해한 혐의로 전국에서 1백38명을 검거했다. 수도 앙카라에서 압둘라 굴 대통령은 화목을 호소했다. 그는 터키 국민들이 자랑스러운 결단을 내렸다고 치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터키 국민들의 갈망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독일 외교부는 터키가 마침내 EU 가입 자격을 얻었다고 말했다.

개헌은 터키에 권력 배분을 가져온 분수령이다. 그러나 개혁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다. 강경파 민족주의자 야당 세력인 국민행동당의 데블레트 바첼리 당수는, 개헌으로 국가는 허약해지고 자치권을 추구하는 쿠르드족의 반란은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당들은 거의 개헌에 반대했다. 터키를 위험과 모험이 가득한 ‘암흑의 시대’로 몰고 간다는 이유에서다. 에르도안 총리는 일련의 비판들을 일축하고 새 헌법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 지난 9월12일 터키 이스탄불의 한 투표소에서 터키인들이 개헌 국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EPA

최고 법원 판사 및 검찰 회의에 대한 개혁을 어느 선까지 할지 주목

개헌을 했음에도 많은 터키인은 EU 가입 전망에 회의적이다. EU가 터키의 회원 가입에 내심 부정적이고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를 둘러싼 분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부분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터키가 최근 서방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이란과도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 ‘중재자’로서 위상을 크게 높였기 때문에 EU 가입을 낙관하는 시각도 많다. 터키 국민 7천만명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5천만명이 투표에 참가한 이번 국민투표는 어쨌든 파란 많은 터키의 과거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투표일은 마침 쿠데타 30주년 기념일이었다. 쿠데타로 오랜 정치 혼란은 종식되었으나 체포, 고문, 비사법적 처형이 뒤따랐다. 쿠르드족은 반란을 일으켜 지금까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군부의 입김은 겨우 최근에야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군부와 사법 기관은 1923년 터키를 창건한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의 세속주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갈등이 따랐다. 강경파 군부는 세속주의를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를 고수하려 한 반면, 민간 엘리트들은 쿠데타 이전의 이슬람주의로의 복귀를 추구했다. 2008년 전환점이 왔다. 헌법재판소는 대학에서 얼굴 스카프 착용 금지를 해제하려는 법 개정을 저지함으로써 민간 정부에 타격을 주었다.

터키는 세속주의 군부와 이슬람주의 민족 세력 간의 투쟁에서 1차전을 치른 셈이다. 이번 개헌으로 군부는 다소 위축되고 이슬람식 민주주의는 힘을 얻을 것이 확실하다. EU 가입 전망도 더 밝아졌다. 정부는 이미 터키 권력의 또 다른 축인 보수적 세속주의의 근원인 군을 일부 거세했다. 이것은 EU가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공직 사회에 대한 민간 정부의 영향력도 강화되었다.

남은 과제는 국부 아타투르크가 심은 세속주의 원칙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세속주의 야당 세력이 부패와 실정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에서 한 가닥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야당은 집권당이 언론 자유를 제약하고 권력의 오만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하지만, 터키의 조류를 역행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군부의 원로들은 숙청되거나 은퇴했다.

터키는 쿠데타 2년 후인 1982년에 비준된 국민헌장에 의해 통치되어왔다. 헌장은 EU 가입 조건을 만들기 위해 몇 번 수정되었다. 향후 최대 쟁점은 최고 법원 판사 및 검찰 회의를 어느 선까지 개혁하느냐이다. EU는 사법 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기구는 고위 법관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개혁을 잘못하면 오히려 사법 기관을 정치적 시녀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는 이제 굴곡의 과거사를 접고 미지의 항로에 들어섰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개혁주의자들의 소망대로 EU에도 가입하고 종교와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 민주 국가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축제를 벌이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앞길에 너무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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