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당 키운 것은 반이슬람 정서’가 8할?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1.03.14 10: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국민전선 대선 후보가 사상 최초로 여론조사 1위 올라

 

▲ 프랑스 마르세유 시내에서 이슬람 전통 의상 ‘니캅’을 입은 여성과 평범한 차림을 한 여성이 나란히 걷고 있다. ⓒAP연합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정치 사상 최초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이 1위에 오르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23%의 지지율로 현 대통령인 사르코지(21%) 그리고 좌파 사회당 당수인 마틴 오브리(21%)를 모두 앞섰다.

극우당의 대선 후보가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요넬 죠스팽을 누르고 결선에 진출해 파란을 일으켰었던 장 마리 르펜조차 사전 조사에서 1위에 오른 적은 없었다.

이번 조사 결과가 나오자 주말임에도 정계와 언론은 바쁘게 움직였다. 심지어 클리어스트림을 두고 세기의 앙숙이 된 사르코지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빌팡 전 총리가 여론조사 발표 이튿날인 3월7일 월요일 아침 8시30분에 조찬 회동을 가졌을 정도였다. 말로는 리비아 사태에 대한 논의로 만났다고 하지만, 우파를 양분하고 있는 두 사람이 극우의 득세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두 당사자 모두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이다.

정치 이슈 빨아들이는 블랙홀

이러한 극우 정당의 파란이 놀라움보다 우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그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바로 ‘이슬라모포비(islamophobie; 반이슬람 정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0일 마린 르펜은 파리 19구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신자들이 도로까지 나와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점령’이라고 규정했다. 심지어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파리 점령’과 비교하기까지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숱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것은 모든 정치 이슈를 ‘이슬람의 도로 점거’라는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결과가 되었다.

▲ 지난 1월16일 프랑스 서부 투르에서 열린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마린 르펜이 기뻐하고 있다. ⓒAP연합

주인공은 마린 르펜이었다. 그는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에게서 당권을 물려받았다. 프랑스 좌파 사회당의 대변인인 브누아 아몽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성토했다. “마린 르펜은 그의 아버지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정쟁의 주도권은 ‘국민전선’으로 넘어갔다. 지지율이 20%에 다다랐다는 추측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극우의 상승세에 역공을 놓은 것은 바로 사르코지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또다시 ‘이슬람’이었다. 지난 2월10일 프랑스 민영 방송 TF1을 통해 방영된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영국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을 거론하며 “프랑스 또한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라고 언급했다. “프랑스는 프랑스라는 하나의 공동체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1주일 후인 2월17일 여당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프랑스에서의 이슬람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단순한 ‘프랑스의 이슬람’이 아닌 ‘프랑스 사회 내부의 이슬람의 위치’에 대한 논의임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민영 카날 플뤼스의 정치 평론가인 쟝 미셀 아파티는 “사르코지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가 정체성’을 화두로 삼아 국가 차원의 토론을 열고 부처와 장관까지 만들었었다. 그러나 지난 개각에서 그 자리는 사라졌다. 이제 다시 ‘이슬람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것은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마린 르펜의 지지율이 20%에 다다랐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5백만명의 이슬람 신도들은 이주민이 아니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프랑스인들이다”라고 꼬집었다.

사르코지의 문제 제기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움직임이 일자, 프랑스 집권 여당인 대중운동연합의 당수인 쟈비에 베르트랑은 “대통령의 발언은 정교 분리를 이야기한 것이지 이슬람을 배격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만약 이번 논의가 ‘반(反)이슬람 정서’로 흐른다면, 나는 거기 없을 것이다”라고 입장을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9·11 테러 이후 불안 심리, 극우 득세에 한몫

이러한 파장을 두고 르 피가로의 정치 평론가 안느 풀다는 “던질 수 있는 질문이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그 시기와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편집장에서 최근 시사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투아>로 자리를 옮긴 로랑 죠프랑은 “사르코지가 들어선 후 무슬림들은 줄기차게 자신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들어왔다. ‘국가 정체성’에서 시작해 ‘부르카 착용 문제’와 ‘이민자 문제’ 그리고 이번 문제 제기까지 모두 이슬람에 대한 사회적 논의라기보다는 ‘반이슬람, 반무슬림’으로 읽힌다”라고 못박았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문제가 정계의 화두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통합의 차원에서 제기되기보다는 미셀 아파티의 지적처럼 늘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정치 성향은 우파와 좌파가 대치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파의 입장에서는 극우의 지지율을 끌어오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한 전략의 하나로 이슬람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지난 2010년은 유럽 극우 정당의 황금기였다.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들 가운데 극우 정당이 의회 의석을 차지한 국가는 네덜란드를 비롯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리투아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 여덟 개 국가에 이른다. 그런데 이러한 분포가 단순한 정치 지형으로 읽히지 않고 문제점이라고 제기되는 것은 이들 정당이 ‘반이슬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주의 전문가인 장 이브 카뮈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적인 유럽 정치인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9·11 테러 이후의 불안 심리 때문에 ‘반이슬람주의’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극우 정당들이 득세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제 그 물결이 프랑스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무료 일간 신문 마탱 플뤼스는 이번 마린 르펜의 부각을 ‘대세’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