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작 게임, ‘중원 정벌’ 나선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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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들, 중국·미국 이용자의 기대 순위 ‘톱 10’에 들어…중국산 등장 등 변수 많아 낙관은 어려워

지난 1월25일 서비스를 시작한 ‘테라’를 필두로 ‘블레이드앤소울’ ‘길드워2’ ‘아키에이지’ 등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이하 MMORPG) 대작들이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단순히 거액이 투자된 대작이어서가 아니다. 앞서 언급된 신규 대작 MMORPG는 모두 중국과 미국 게임 이용자의 기대 순위 ‘톱 10’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모두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면? 과연 중국은 국내 게임 산업의 엘도라도가 될 수 있을까.

2009년을 기준으로 온라인 게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31.3%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23%로 2위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한국과 중국의 순위가 뒤바뀌었다. 유진증권 김동준 연구원은 “지난 2003년 이후 중국에 진출한 게임들은 나오는 족족 다 망했다고 볼 수 있다. 리니지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게임의 차별성이 없었다.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아이온’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백기였다. 돈을 아무리 많이 투자해도 성공하지 못했고, 실질적으로 하락세였다”라고 말했다. 리니지의 성공 이후 비슷한 형태의 아류작들이 출시되면서 수요자들을 자극할 만한 요인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뉴스와이어

MMORPG는 어느새 온라인 게임의 주류로 성장했다. 지금의 MMORPG는 혼자 혹은 두세 명이 즐기는 고전적 롤플레잉 게임과 달리 수만 명 이상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처럼 게이머는 게임 스토리를 바탕으로 요새를 만들고 병사를 키워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게임 속 가상 세계를 돌아다니며 게임 요구(퀘스트)를 완수한다. MMORPG 열풍은 세계 게임업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세는 전세계 게임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시장, 인구 수에 비례하는 게임 수요, 그에 상응하는 수익은 국내 게임사가 중국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이다.

‘게임 한류’를 이끌었던 2000년대 초반, 중국 게임 시장에서 국내 게임사의 약진은 눈부셨다. 1세대 온라인 게임으로 평가받는 ‘미르의 전설’(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은 서비스 초기 온라인 게임의 불모지였던 중국에 진출해 ‘게임 한류’를 이끈 주역이었다. ‘미르의 전설2’는 지난 2001년 인터넷 인프라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불리한 외적 조건에도 1년 후인 2002년 동시 접속자 35만명을 돌파하며 중국 내 대표 온라인 게임으로 자리 잡았고, 2003년에는 중국 동시 접속자 수 81만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또 2004년에는 단일 게임으로 중국 게임 시장의 65%를 차지하며 2005년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며 신작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고 게임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하락세에 놓여 있다. 하지만 ‘미르의 전설2’라는 하나의 게임만으로도 현재 2억명에 달하는 중국 내 누적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이경호 사업본부장은 “온라인 게임은 수익뿐 아니라 서비스와 콘텐츠의 지속성, 고객의 만족 등이 결합되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미르의 전설2’를 서비스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온라인 게임을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중국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무술’도 접목

▲ 2004년 11월 중국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Ⅱ. ⓒ엔씨소프트

문제는 역시 ‘적응’이다. 게임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바탕에는 게이머들의 ‘니즈(욕구)’ 변화가 깔려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적응도 필수이다. 문화·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국내에서 개발한 게임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자칫 무리수가 될 수 있다. 블루홀스튜디오 김경범 과장은 “중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에 진출하더라도 문화적인 성향을 고려해서 서비스를 해야 한다. 게임 자체의 큰 틀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시나리오나 캐릭터에서 일부분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해골이나 좀비가 중국에서 안 좋게 받아들여진다면 다른 형태의 몬스터로 변형되어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게임을 수출할 때 ‘현지화’하는 것이 이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라고 말했다.

하반기에 출시될 ‘블레이드앤소울’(엔씨소프트)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블레이드앤소울’은 고화질의 그래픽과 쉬운 조작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 무협을 소재로 한 동양적 세계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MMORPG 대부분이 서양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에게 친숙한 소재로 다가간 것이다. 김동준 유진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 게임처럼 칼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술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히 중국인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다. 기존의 게임들과 차별화되면서도 현지화하는 이런 전략은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MMORPG라는 게임 자체가 스토리 전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만큼 동양적 세계관과의 결합은 중국 내 게이머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프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제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은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중국의 컴퓨터 사양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고 통신망 역시 낙후했다. 한국에서 개발한 게임이 중국에서 그대로 구현되는 데 게임 외적인 요인이 장애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통신망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고 특히 베이징·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의 경우 인터넷 보급률이 50%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더 이상 외부 장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중국도 MMORPG에 필요한 인프라 요소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또 국내 환경과 비슷하게 중국에서도 PC방 문화가 발전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도 PC방 문화 속에서 성장했듯이 중국의 PC방 문화도 게임 산업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현지법상 직접 서비스할 수 없어 애로

중국 내 게이머들의 시선을 끌 만한 차별화된 대작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픽을 구현하고 게임 엔진을 구동시킬 만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이대로만 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변수는 남아 있다. 바로 ‘중국산 게임’이다. 그동안 MMORPG가 끊임없이 출시되었다. 그 와중에도 게임들이 서로를 잠식하지 않고 전체 파이를 키워왔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올해 최대 변수는 따로 있다. 중국에서 개발한 다크호스 게임의 등장 여부이다. 중국 내 게임 1위 업체인 텐센트는 규모 면에서 한국을 훨씬 앞서는 상황이다. 시가총액만 해도 50조원을 넘어선다. 게다가 한국, 미국, 유럽 등이 달려드는 중국 게임 시장에는 전세계 모든 게임 정보가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 이재성 상무는 “현지법상 중국은 국내 게임업체가 직접 서비스할 수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한국·미국 메이저 회사들의 게임 정보가 다 모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만든 게임이 한 번 크게 ‘잭팟’을 터뜨리면 그 파급력이 굉장히 커질 수 있다”라고 우려한 바 있다.

현재 ‘테라’의 개발사인 블루홀스튜디오와 기대작 ‘블레이드앤소울’ ‘길드워2’의 개발사 엔씨소프트는 중국 시장 진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블루홀스튜디오 관계자는 “퍼블리셔(중국 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게 될 파트너 업체)와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다. 아직은 확정된 바가 없지만 올해 안에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이다”라며 조심스럽게 계획을 내비쳤다.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이 ‘대작’들이 중국에서 ‘잭팟’을 터뜨리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까. 뚜껑은 곧 열린다.


 게임 산업에서도 ‘중국의 역습’ 시작됐다

중국산 게임을 ‘복제’와 ‘짝퉁’으로만 인식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편견도 이제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 게임 산업에서도 이른바 ‘중국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다. 보통 중국 업체들은 국내 게임을 수입해 서비스하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게임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불멸 온라인’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완미시공’이 만든 MMORPG 장르로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MMORPG 게임’을 모토로 내세운 게임이다. 이같은 모토는, 게임 내 시스템을 외워야 하고 적지 않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국내 정상급 MMORPG 게임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시도였다.

결과는? ‘불멸 온라인’은 최고 동시 접속 8만명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중국산 온라인 게임인 ‘진 온라인’ ‘환상유희’ ‘무림외전’도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국내 게임보다 간단한 조작과 쉬운 레벨업 시스템이 특징이다.

게임의 역습보다 국내 게임업계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의 역습’이다. 최근 중국 게임업체들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국내 게임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1위 게임회사인 ‘텐센트’는 벤처캐피탈인 캡스톤파트너스와 함께 리로디드 스튜디오, 스튜디오 혼 등 국내 일곱 개 게임사에 총 1백84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계에서는 텐센트가 한국 게임 개발사에 투자한 총 자금이 2백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내 2위 게임회사인 ‘샨다’는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2004년 국내 개발업체인 액토즈소프트를 약 1천억원에 인수했던 샨다는 지난해 9월 국내 업체 아이덴티티를 9천5백만 달러(약 1천100억원)에 인수해 국내 게임업계를 술렁이게 했다. 당시 아이덴티티는 매출도 얼마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개발사에 돈을 푸는 이유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직접 개발에 나서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텐센트는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라는 국내 게임 덕분에 중국 게임업계에서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샨다는 텐센트의 그런 비상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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