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류’ 막을 길은 따로 있다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8.0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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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우의 한류 비판 글에 한국 네티즌 비난 ‘봇물’…민감 대응보다 콘텐츠 질 높이기에 힘써야

▲ ⓒ연합뉴스

영화 <박치기>에서 재일교포 역을 맡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배우 타카오카 소스케가 혐한류 발언을 했다고 해서 얼마 전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드라마 등을 많이 방영하는 후지TV가 한국 방송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다….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나오면 기분이 나빠 TV를 꺼버린다… 여기는 일본이니까 일본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면 좋겠다. 세뇌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한류라는 말 자체가 무섭게 들린다”라고 썼다는 것이다.

우리 네티즌들은 평소 혐한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이번 발언에도 역시 뜨겁게 반응했다. 문제는 댓글의 상당수가 타카오카 소스케를 비난하고, 심지어는 일본 자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섬나라 원숭이들아, 한국 가수가 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라’ 정도부터 시작해서 차마 내용을 전할 수 없는 수준의 증오 댓글도 많았다.

타카오카 소스케의 발언은 일본에서도 화제를 일으켜, 일본의 일부 네티즌이 후지TV 불시청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에도 역시 한국 네티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류를 사랑하고 외국에 한류를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는 동호회에서조차 일본을 조롱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이런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문화를 내보내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물건을 파는 쪽인 것이다. 세상에 고객을 조롱하고 욕하는 장사법은 없다. 물건을 사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가게 주인이 ‘내가 너희한테 팔아주는 것만 해도 황송한 줄 알아라, 이 천한 것들아~’,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 기분이 어떨까?

자연스러운 경계심 등 혐한류는 너무나 당연

▲ 타카오카 소스케와 아내 미야자키 아오이(왼쪽). ⓒ NEWSIS
우리의 경우에도 미국 문화가 한국에 밀려들어오면 각계각층에서 일제히 개탄하는 소리가 나온다. 과거에는 제국주의 쓰레기 문화라며 매도하는 목소리도 컸다.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가 직배되는 극장에 뱀을 풀어넣기도 했다. 이런 것이 인지상정이다. 외국 문화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데 경계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럴 때 미국 사람이 ‘한국의 천한 것들이 감히 미국 문화 고마운 줄 모른다’라며 우리를 조롱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격렬하게 규탄하는 여론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외국 사람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주로 인터넷 댓글로 그런 분위기가 표출되는데, 요즘은 상대국 네티즌의 댓글까지 다 번역해서 보는 시대이기 때문에 당연히 외국 네티즌도 한국의 분위기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들도 분노할 것이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국가의 위신에 민감한 네티즌을 상대로 선동 장사를 일삼는 언론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런 성격을 가진 외국의 언론은, 한국의 민감한 반응을 중계해 국가 간 대립 감정을 더 키울 것이다.

타카오카 소스케는 일본 배우로서, 일본 TV에 한국 드라마가 넘쳐나는 상황이 불편한 것은 당연한 입장일 것이다. 그가 트위터에서 그것에 대해 뭐라고 불평을 하건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런 식의 자연스러운 경계심마저 비난한다면 상대국으로부터 더 큰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선동 장사를 일삼는 언론이, 타이완이 한국 드라마 통제법을 추진한다는 식으로 보도해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던 일도 있었다. 그때도 증오 댓글이 넘쳐났다. ‘미개한 섬나라 ***가 한류를 탄압한다’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한국 드라마 통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사실은 타이완의 입법위원(국회의원)이 외국 프로그램의 무분별한 방영을 조절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유선라디오·TV법에 자국 프로그램 의무 방영 비율이 20%인데 40%로 상향 조정할 생각이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혐한류도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우리나라 방송에 외국 프로그램이 80%를 차지한다면 우리 기분은 어떠할까? 우리가 우리 것을 최소한 40%는 보겠다는데, 일본이나 중국 사람이 ‘이 반도 원숭이들아’라며 조롱하고 공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사람은 다 똑같다. 우리가 반응하는 것처럼 그들도 반응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나서면 혐한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럼 결국 문화를 내보내려는 쪽만 손해를 보게 된다.

문화 내보내는 입장에서는 이질감이나 경계심 주지 않아야

▲ 일본 팬들에게 환영받고 있는 장근석(오른쪽)씨. ⓒ연합뉴스

앞에서 든 예들은 모두 혐한류라고 할 것도 없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었는데, 진짜 혐한류에 대해서도 우리가 과민 반응을 보일 이유가 전혀 없다.

일본에서 한국 걸그룹이 성상납을 한다는 식의 혐한류 만화가 나왔다고 네티즌이 증오를 폭발시킨 일이 있었다. 우리 언론은 이를 ‘도를 넘은 명예훼손’이라며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했다. 이럴수록 쌍방 간의 적대 감정만 커진다.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좀비가 배용준처럼 묘사되었다고 해서 또 문제가 되기도 했다. 타이완에서 한 방송인이 한국 연예계에는 성상납 관행의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또 ‘도를 넘은 혐한류’라며 일이 크게 번진 일도 있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미각 걸그룹이라는 식의 성인 비디오가 나왔는데, 그것이 또 혐한류이고 우리 걸그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네티즌이 반발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든 사례에 대해 우리가 사사건건 공격적으로 대응하면 동아시아 네티즌들의 국가 간 대립 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너희 나라’를 가르기 시작하면 한류는 확산되기 힘들다. 문화를 내보내는 입장에서는, 한류가 최대한 이질감이나 경계심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미국의 문화 산업을 생각해보자. 미국의 문화 상품은 세계 곳곳에서 비판받았다. 그때 미국의 대응은, 그런 비판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타국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자국의 문화 상품을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데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자 미국 문화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도 미국 문화 산업의 경쟁력이 저절로 유지되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가수 출신 방송인인 배철수씨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나의 고민은 우리 청소년들이 가요만 들으면서 팝 음악을 너무 안 듣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자발적인 지지자가 생겨났다. 우리 영화 <디워>와 <트랜스포머>가 맞붙었을 때도 많은 한국인이 <디워>를 조롱하며 <트랜스포머>를 찬양했다. 요즘에는 아이폰에 대한 찬사가 줄을 잇는다.

결국 콘텐츠의 질이 관건인 것이다. 우리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혐한류가 있건 없건 한류는 계속 잘될 것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적대감을 키우는 공격적 대응보다, 우리 콘텐츠 질 높이기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 혐한류 대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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