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왜 북·미 대화 테이블 펼치나
  • 김동현│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교수 ()
  • 승인 2011.08.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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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전략’ 한계 다다르자 대북 정책에 변화 꾀해…한국에 대한 ‘압력 행사’로도 비쳐져

▲ 지난 7월29일 북·미 회담이 열린 미국 뉴욕의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 앞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오른쪽)이 클리포드 하프 미국 북핵 특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Xinhua

최근 남북 회담(7월22일)과 북·미 회담(7월28~29일)이 잇달아 열리면서 오랫동안 외면되어왔던 ‘북핵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일단 대화의 창구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평가이다. 특히 뉴욕에서 열린 북·미 회담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기다리는 전략’(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인정하고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의 증가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이후 1년이 다 된 2009년 12월에 가서야 뒤늦게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으로 보내 첫 번째 고위급 북·미 회담을 가졌다. 당시 회담이 끝난 후에 보스워스는 “솔직하고, 진지했으며, 대단히 유익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 뉴욕 회담이 끝난 후 역시 미국은 “진지했고, 건설적이었다”라고 평했고, 북한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앞으로 계속 대화를 하기로 합의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을 보는 시각이나 전략 차원에서 한국 정부를 의식했고, 한·미 공조의 틀을 깨지 않으려 조심스런 행보를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미국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남북한 관계 개선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천명해왔으나, 진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북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남한에 대해 대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중국을 통한 대화 압력을 시도해왔다. 그동안 서울과 워싱턴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중단하고 국제에너지기구(IAEA) 사찰단을 복귀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여전히 북한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즉,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한국과 미국의 지금까지의 입장 고수는 공허의 틀을 공전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평양은 지금까지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내걸었던 ‘북·미 평화협정’ 논의와 유엔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대신, 무조건 비핵화 다자회담을 열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것이 북·미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지난 2009년 12월과 지금의 입장 차이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 논의와 유엔 제재 해제 요구를 포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다만 회담을 열고 난 뒤에 이런 문제들을 동시 행동의 원칙으로 협상하자는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좀 더 근원적인 북·미 간의 적대 관계 해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북한은 내년 ‘2012 강성대국’의 진입 선언 계획과 관계없이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경제 활성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5월 중국 방문 때 말한 것처럼 한반도의 안정이 필요하다. 당장 시급한 식량 지원도 받아야 할 입장이다.

“중국 버티는 한 ‘통미봉남’ 어렵다” 전망 우세

북한은 도발 행위가 자신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여러 차례 배웠지만, 예측 불가능한 북한 권력 구조나 폐쇄적 권력 체제의 속성상 재도발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 분위기 조성이 더  필요할 때’라는 인식이 더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속내이다. 지금 미국은 자국의 정치 환경으로 볼 때 북한에 대해서 마냥 유화책만 쓸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 우선 식량 지원만 하더라도, 북한의 식량 지원 배급의 투명한 감시 체제를 이유로 지원을 꺼리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해보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나 강경 보수파들의 눈치는 물론, 북한에 대해서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최근 뉴욕 북·미 회담의 내용이 극비로 취급되는 이유 또한 그 내용이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알려져서, 북·미 대화나 6자회담 재개를 반대하는 보수 세력들에게 새로운 반대 근거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비밀 외교의 고전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북핵 문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온 전력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한국에 ‘하청(Outsourcing)’한 것인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기다리는 전략’은 북한 길들이기 효과도 미미했고, 성과도 가시적이지 못했다. 막상 북한은 체제가 붕괴되지도 않았고, 행동을 개선하지도 않았다. 국제 사회의 각종 제재와 압력, 극심한 식량난 그리고 내부 불안 요소들로 인해 북한 정권이 생존 위협을 받는다는 증거 역시 없었다. 오히려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빠른 속도로 진척시키고 있으며,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완공과 함께 대륙간미사일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암울한 뉴스만 전해져 왔다. 방치된 기간 동안 북한의 위협 수준만 높아졌다는 얘기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대한 완전한 봉쇄 정책이나 붕괴 정책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미국은 잘 안다. 중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방안은 좋건 싫건, 되든 안 되든 간에, 북한과 대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마냥 대화를 서두를 만큼 상황이 긴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향후 한반도 정세에 분명한 변화의 바람은 불겠지만, 당장 큰 폭풍우가 몰아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북·미 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양국 간의 신뢰 구축, 적대적 관계 해소, 북·미 평화조약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의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단계적으로 들고 나올 것임을 미국은 잘 알고 있다. 지금 워싱턴에는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평양과 협상을 해야 하느냐”라는 강경파의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이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중국의 경제력 부상이 자체 생산 항공모함 진수식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정세의 변화도 미국으로서는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북한에게 ‘통미봉남’을 허용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향후 동북아 정세를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오히려 한국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서울은 대북 정책의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일방적 대미 의존도의 한계를 벗어나 능동적인 타개책을 보여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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