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독배 '자살 폭탄주'가 돌고 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7.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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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 후에 일정 기간 각성 효과를 내는 에너지 드링크와 양주를 섞은 신종 폭탄주가 서울 홍대 앞이나 강남, 이태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가고 잇다. 폭탄을 뜻하는 ‘밤(bomb)’이라는 말을 붙여 ‘아구아 밤’ ‘예거 밤’ ‘보드카 밤’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폭탄주를 마시면 밤새 춤을 추어도 지치지 않는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클럽가에서는 이 ‘밤 시리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 폭탄주를 마신 후 나타나는 폐혜도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마시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일으키고, 심할 경우에는 뇌기능 장애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젊은이들 사이에 번져가는 이 신종 폭탄주 문화의 실태를 추적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것은 그냥 음료수 캔이지만 안에 있는 것을 마시면 날 수가 있지.’ 최근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의 광고 내용이다. 광고 카피처럼 이 음료수를 마시게 되면 일정 기간 각성 효과를 보게 된다. 음료수에 있는 다량의 카페인 때문이다. ‘양주와 섞어 마시면 밤새 춤을 추어도 지치지 않는다’라는 입소문까지 퍼졌다. 홍대 앞이나 이태원 등의 클럽에서는 에너지 드링크와 양주를 섞은 신종 폭탄주가 인기를 얻고 있다. ‘아구아 밤(Bomb)’ ‘예거 밤’ ‘보드카 밤’ 등 종류도 다양하다. 홍대 앞에 위치한 ㅎ클럽의 한 관계자는 “에너지 드링크와 섞어 먹는 폭탄주를 손님들이 가장 선호하고 있다. 일부는 단골 고객을 초청해 폭탄주 시음회를 갖기도 한다”라고 귀띔했다. 클럽가에서는 이 에너지 ‘밤(Bomb)’ 시리즈가 하나의 클럽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폐해도 적지 않았다. 폭탄주를 마시고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직장인은 “‘예거 밤’을 먹고 밤을 꼬박 새운 경험이 있다. 몸은 피곤한데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 잠을 잘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에너지 드링크를 섞은 폭탄주의 위해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장기간 복용하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심할 경우 뇌기능 장애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자칫하면 자살 폭탄주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종 폭탄주는 홍대 앞이나 강남,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카페인의 착시 효과’를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윤석호 구로성심병원 외과과장은 “에너지 드링크의 카페인이 술에 덜 취한 것처럼 각성 효과를 내고 있다. 실제는 평소보다 네 배 정도 더 취하게 된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에너지 드링크에는 흥분제의 일종인 구아나라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성분이 알코올과 섞이게 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낼 수도 있다. 안홍철 전 인베스트코리아 커미셔너(단장)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에너지 폭탄주로 인한 부작용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에너지 드링크가 국내에서는 술에 취하지 않게 하는 묘약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라고 걱정했다.

미국 등에서도 이미 사회 문제로 떠올라

미국에서는 이 신종 폭탄주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때 대학가의 비뚤어진 음주 문화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미국 역시 대학생들의 음주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해마다 3백만명 정도의 대학생이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고 있다.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 희생자나 자살 사망자 역시 한 해에만 수천 명에 달한다. 에너지 드링크와 술을 섞어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부작용 역시 가중되고 있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에만 1만3천여 명의 대학생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다가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연구팀은 “에너지 드링크와 술을 섞어 마실 경우 다치거나 병원을 찾는 비율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때문에 미국의 일부 주는 폭탄주의 판매를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다.

프랑스도 최근까지 레드불의 자국 판매를 불허했다. 지난 2001년 레드불을 마시고 농구를 하던 아일랜드 운동선수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 발단이었다. 물론 레드불의 부작용을 입증하지는 못했고, 최근 자국 판매를 허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레드불의 높은 타우린과 카페인 함유량이 신경생리학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보건부는 현재 이 음료수에 ‘임산부와 어린이는 복용을 삼갈 것’이라는 내용이 적힌 경고문을 부착하고 있다.

심지어 레드불의 원산지인 호주에서조차 클럽과 호텔에서 폭탄주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호주 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에너지 드링크의 부작용으로 도움을 요청한 건수는 2백97건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심장 두근거림이나 불안, 소화 불량 등의 증세로 입원을 했다. 20명은 발작이나 환각 등의 증세를 보였다. 대부분이 에너지 드링크와 주류를 섞어 마신 청소년들이었다. 호주 일간지 헤럴드 선은 ‘마약 통제 당국은 각성제가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와 술을 섞어 마시면 여러 종류의 마약을 복용한 것과 동일한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불법 유통되는 고카페인 드링크 대책도 시급

한국의 식약청도 한때 레드불의 국내 수입을 제한했다. 홍콩과 타이완에서 판매되는 레드불에서 미량의 코카인 성분이 검출되면서 제재를 강화했다. 당시만 해도 레드불은 보따리상을 통해 음성적으로 국내에 반입되었다. 이후 남대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었다. 식약청은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레드불을 수거해 성분을 검사했지만, 마약 성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 캔당 62mg으로 카페인을 낮추어 국내 판매를 승인했다. 이후 한국 진출을 노리던 해외 브랜드가 잇달아 한국에 상륙했거나,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너지 드링크의 판매율이 커피나 박카스를 앞지르기도 했다. 관련 폐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음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에너지 드링크의 위해성에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음료에 들어가는 원료의 연구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문호를 개방할 경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특히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고카페인 드링크를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에너지 드링크의 카페인 양은 캔당 70mg 내외이다. 일회용 커피나 박카스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 판매되는 에너지 드링크의 카페인 양은 1백60~3백57mg에 달한다. 청소년의 1일 섭취 기준치를 뛰어넘고 있다. 성인의 1일 기준치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식약청측은 “불법으로 유통되는 제품을 모두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한다. 식약청 식품안전국의 한 관계자는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유통되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를 적발해왔다. 인력의 한계로 모든 거래를 걸러내지는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불법 유통되는 에너지 드링크를 철저하게 걸러내겠다고 장담해왔다. 인터넷을 통해 위험한 에너지 드링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빗나간 상술을 지적하기도 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홍대 앞 등을 상대로 판촉 활동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폭탄주를 권한 적은 없다”라고 말한다. 특히 업계에서는 에너지 드링크의 폐해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내비쳤다. 핫식스를 판매하는 롯데칠성음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커피나 박카스에 비해 카페인 함유량이 높지 않다. 외국의 사례를 국내 상황에 그대로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음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페인 드링크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강점만을 부각시킨 것이 문제이다. 에너지 드링크의 위해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커졌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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