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에 편중된 정수장학회 장학금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8.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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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헌금 파문이라는 악재를 만나 곤경에 처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앞에 매서운 ‘검증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을 비롯한 친박계측에서 가장 신경 쓰는 대목 중의 하나는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이다.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도 그중 하나이다. <시사저널>은 서울시교육청의 정수장학회 및 한국문화재단 관련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은 박 전 위원장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 장학금을 편중적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 시사저널 유장훈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검증대 위에 처음 선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때였다. 하지만 당시는 여당 내에서의 공방이었고, 그마저도 8월 경선에서 패하면서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5년 만에 박 전 위원장은 이제 유력 대선 후보로 다시 한번 검증대 위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은 사뭇 다르다. 12월 대선까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대대적인 총공세가 예상된다.    

당장 예상치 못했던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의 공천 헌금 파문으로 ‘측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당 쇄신과 정치 개혁을 내세우며 당명까지 바꾼 박 전 위원장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측근 관리가 이 모양인데,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문제는 “공천 헌금 파문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새누리당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전 위원장의 핵심 측근들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제2, 제3의 공천 헌금 파동’이 터질 것이라는 관측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본선 경쟁 과정에서 야권이 박 전 위원장을 겨냥해 빼들 ‘회심의 카드’가 무엇일지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문화재단은 지금도 이사장 맡아

친박측에서 가장 노심초사하는 대목 중의 하나는 짙게 드리워진 ‘아버지 박정희’의 그늘이다. 박 전 위원장이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공세에 대해서는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탓에 주변에서는 감히 ‘건의’도 하지 못한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경선 직전에 터져나온 고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 ‘박정희 집권 18년’의 어두운 유산은 벌써부터 하나 둘씩 고개를 들고 있다.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 그리고 영남대 재단 문제 등 박 전 위원장을 향한 공세의 칼날이 겨눠지는 곳이 숱하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장학재단인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 등을 자신의 대선과 총선에 편법으로 동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 등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2년과 1979년에 설립되었으며, 정수장학회는 박 전 위원장이 2005년까지 이사장을, 그리고 한국문화재단은 지금 현재도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공익 법인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서울시교육청의 정수장학회 및 한국문화재단 관련 자료와 김경협 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정수장학회는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던 2005년 이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박 전 위원장의 정치적 지역 기반인 TK(대구·경북) 지역에 장학금을 많이 주는 편중 지급을 계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1999년과 2003년 사이 5년간 장학금 지급 내역에서도 당시 정수장학회가 TK 지역에 집중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 드러난 바 있다(15쪽 상자 기사 참조). 박 전 위원장이 2005년 이사장직을 물러나면서 “정수장학회와는 이제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일관된 주장을 계속 펼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박 전 위원장이 현재에도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문화재단의 이사진과 감사 등 7명 가운데 4명이 현재 박근혜 후보 캠프나 외곽 조직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수장학회는 지난 1962년 박정희 군사 정권이 부산 지역 기업인인 고(故)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헌납받아 설립된 ‘5·16 장학회’를 모태로 하고 있다. 헌납 당시 부일장학회는 부산일보와 부산 문화방송(부산MBC) 그리고 한국 문화방송(MBC)을 소유했다. 현재도 정수장학회는 MBC 주식 30%와 부산일보 주식 100%를 가지고 있다.

정수장학회가 ‘공익 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마다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결산 보고서의 장학금 지급 현황 자료를 보면, 정수장학회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별로 지급한 장학금 현황이 나타나 있다. 이를 분석해보면, 정수장학회는 모두 30억3천4백만원을 전국의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이 가운데 TK 지역에만 6억7천4백만원(22%)을, 나머지 14개 시·도에는 23억6천만원(78%)을 각각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표1 참조). TK와 비(非)TK의 인구 비율을 따져보면, 장학금의 지역 편중 현상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전체 인구 중 TK 인구가 10.2%를 차지하는 데 반해, 장학금은 이보다 훨씬 높은 22%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수장학회의 7개 특별·광역시 교육청별 장학금 지역 현황’과 ‘정수장학회의 9개 도 교육청별 장학금 지급 현황’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2002년부터 2005년까지도 대구와 경북은 각각 특별·광역시와 도 가운데 1위였고, 2006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박 전 위원장이 유력 대선 주자로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지난 2010년부터 대구는 서울과, 경북은 경기와 각각 동일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TK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표2·3 참조).

이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측 인사는 “서울시교육청 등의 통계 자료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수장학회가 특정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많이 지급했다고 해서 박 전 위원장과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면서 여전히 박 전 위원장과 정수장학회가 무관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공익 재단을 사유화해서 선거에 활용했던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박 전 위원장이 네 차례 대구에서 출마해 당선되었던 사실과 박후보 대권 도전의 최대 발판이 TK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수장학회 장학금의 이 지역 편중 현상은 정수장학회와 박 전 위원장의 관계 문제를 떠나서 공익 법인의 선거 활용이라는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라고 주장했다.

지역구 학생 장학금 지급, 선거 시기와 맞물려

한국문화재단 사무실이 있는 건물. 이 건물 5층에 입주해 있으나 건물 입구 안내판에는 간판이 비어 있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박근혜 전 위원장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문화재단 역시 사유화해서 선거에 동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1979년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이 설립해, 이듬해인 1980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32년 동안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재단은 자산 규모가 13억원으로 20년 이상 장학 사업을 해오고 있는 법인이다. 한국문화재단에 대해서는 박 전 위원장의 핵심 측근조차 “무엇을 하는 재단이냐. 정수장학회와 다른 재단인가”라고 기자에게 반문할 정도로, 그 실체를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한국문화재단 장학금 지급에 관련된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분석해보면, 한국문화재단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주로 대구광역시와 박 전 위원장의 선거구였던 대구 달성군 지역에 편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모두 7백15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는데, 달성군을 포함한 대구광역시 학생은 5백38명으로 무려 전체의 75%에 달했다. 이 가운데 박 전 위원장이 정계에 입문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 출마한 달성군 지역 학생은 2백6명으로 전체의 29%에 이르렀다.

지역구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은 선거 시기와도 미묘하게 겹치는 양상을 보였다. 박 전 위원장이 선거에 출마하기 전인 1997년에는 대구시나 달성군 학생 가운데 장학생으로 선발된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이 보궐 선거에 출마했던 1998년에는 대구 학생 65명과 달성군 학생 20명 등에게 ‘처음으로’ 장학금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박 전 위원장이 달성군에서 출마했던 2000년과 2004년, 2008년에도 달성군을 포함한 대구 지역에서만 69명(이 가운데 달성군 장학생은 23명), 29명(달성군 14명), 28명(달성군 10명) 등이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은 장학금 수여 행사에도 직접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총선을 앞둔 2003년 4월12일 대구 달성군 화원읍사무소에서 박 전 위원장은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지역 주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 22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재단 인사들, 캠프·외곽 조직에 관여

한편 한국문화재단 임원들이 박 전 위원장의 선거운동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 재단의 현 이사인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은 이른바 ‘박근혜 5인 스터디 그룹’으로 불리는 핵심 자문 교수 그룹에 속한 인사로, 박근혜 후보 대선 캠프인 ‘국민행복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를 맡고 있다. 최부총장은 또 2010년 12월에 창립한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대표적인 친박 교수 모임으로, 박 전 위원장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다른 이사인 변환철 중앙대 법학과 교수 역시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박 전 위원장의 대선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북대 총장을 역임한 김달웅 이사는 ‘대구·경북미래연구원’ 이사장과 ‘바른사회 하나로 연구원’의 상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창립한 ‘바른사회 하나로 연구원’은 TK 지역의 친박 성향 교수 모임으로, 현재 2백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4월 이 연구원의 행사에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문화재단에서 감사로 있는 김삼천씨는 정수장학회 동창회인 ‘상청회’ 회장을 맡고 있다. 상청회는 해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방문 등의 행사를 열어 박 전 위원장의 사조직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특히 김씨는 해마다 개인 후원 최고 한도액까지 박 전 위원장에게 기부하는 고액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측의 인사는 “한국문화재단 임원과 감사 등이 재단 활동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박 전 위원장을 지지하거나, 지원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2004년 정수장학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박 전 위원장의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이 부적절하다고 공격했고, 당시 대권 도전의 꿈을 키우고 있던 박 전 위원장은 결국 2005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자신의 최측근인 최필립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이사장으로 앉히면서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장학금 TK 지역 편중 지급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사실 박 전 위원장 때문에 안팎의 시선이 워낙 많아 눈치를 보는 측면도 있지만,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1999~2003년에는 주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았을 때여서 TK 지역 편중 현상은 더욱 노골적이었다(아래 표 참조).

지난 2004년 당시 기자가 입수해 공개한 정수장학회의 1999~2003년 장학금 지급 현황을 보면, TK 지역의 장학금 지급액 비율은 무려 약 25%에 달했다. 인구 비율로는 TK가 전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데도, 정수장학회 장학금 비율은 무려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정수장학회의 TK 사랑은 정말 대단했던 셈이다.   

감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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