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중수부’ 기선 잡기 대검-중앙지검 신경전
  • 안성모·조해수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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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사안별 TF팀·반부패수사본부 신설 등 고검 체제 강화” 중앙지검 특수부 부상 의식한 듯

대한민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중수부를 일컬어 ‘검찰의 자존심’ ‘검찰의 꽃’이라고들 한다. 반면 ‘권력의 시녀’ ‘정치 검찰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18대 대통령이 된 박근혜 당선인은 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2일, 박당선인은 검찰 개혁안을 발표하며 “국민으로부터 나온 검찰권을 국민에게 되돌려드리겠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중수부를 폐지하겠다”라고 천명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던 중수부가 마침내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다.

1981년 창설된 중수부는 영욕의 31년을 보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홍걸 씨를 구속시켰으며, 현 정부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처벌했다.

특히 대통령의 아들과 친형 구속은 모두 현직 대통령 시절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중수부의 칼날에 쓰러져간 ‘거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문제는 중수부의 칼날이 ‘죽어가는’ 권력에게로만 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살아 있는’ 권력이 휘두르는 데로 칼춤을 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9년,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인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수부의 힘은 역대 중수부장 출신들의 이후 행보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27쪽 표 참조).

ⓒ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제2의 중수부’?

중수부 폐지 움직임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줄곧 있었다. 당시 법무부는 중수부를 폐지하고 대신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방안을 올렸지만, 검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도 중수부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으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내가 먼저 (나의) 목을 치겠다”라며 극렬히 반대했다. 당시의 중수부장이 박근혜 당선인의 선거 캠프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2011년에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중수부 폐지에 합의하자,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상륙 작전을 시도하는데 갑자기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면 부대가 어떻게 되겠는가”라면서 정치권과 정면 대치했다. 지난해 말, 검찰의 잇따른 비리로 인한 비난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중수부 폐지를 검토했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오히려 검찰 내부 역풍에 휘말려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임사에서 “내부 적과의 전쟁에서 졌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중수부 폐지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여의도와 서초동 주변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박당선인의 한 측근은 기자에게 “중수부 폐지는 확정되었다. 유보되거나 변동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중수부 폐지는 검찰청법 제16조 ‘(검찰의) 기구의 설치와 기능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는 조항에 따라 대통령령만 개정하면 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 개혁의 제1 순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박당선인은 ‘포스트 중수부 체제’에 대해서 “일선 검찰청의 특수부에서 중수부 기능을 대신하게 하겠다. 다만 예외적으로 관할이 전국에 걸쳐 있거나 일선 지검에서 수사하기에 부적당한 사건은 고검에 TF팀 성격의 한시적 수사팀을 만들어 수사하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부서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이다. 정·관·재계가 몰려 있는 서울을 관할로 두고 있는 중앙지검 특수부가 중수부의 기능 대부분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지검 특수부는 특수1부·특수2부·특수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서마다 부장검사를 제외한 5~6명의 검사와 13~16명의 배테랑 수사관이 배치되어 있다. 중수부는 중수부장(검사장) 아래 수사기획관(부장검사)을 두고, 중수1과, 중수2과, 첨단범죄수사과로 구성되어 있다. 중수1·2과가 맡았던 사건은 중앙지검 특수1~3부가 맡고, 첨단범죄수사과가 담당했던 사건의 경우 중앙지검의 첨단범죄수사 1·2부, 금융조세조사 1~3부 등이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지검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면서 차기 검찰총장보다 중앙지검장, 중앙지검 특수부장 인선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은 “검찰총장의 권력은 총장 직속 기관인 중수부로부터 나왔다. 또한 중수부의 폐지는 곧 대검의 유일한 수사기관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수사기관이 없는 고등검찰청(고검)과 고검장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듯, 대검과 검찰총장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검찰 개혁 의지는 중앙지검장과 특수부장 인선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상설 특검·특별감찰관 제도 도입에는 부정적

대검은 현재 이런 분위기를 상당히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대검은 명목상의 기구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힘은 서울중앙지검에 쏠리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검의 한 관계자는 “중앙지검 특수부 기능을 강화하면 사실상 그것은 기존의 중수부와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이 된다”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그보다는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고검의 기능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이전의 ‘저축은행합동수사본부’ 같은 성격의 TF팀을 사안별로 구성해 고검장 아래 두는 방안이 좀 더 현실적으로 논의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나타냈다. 민주당의 한 의원 역시 “중수부가 폐지된다고 해서 정치 검찰의 행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인적 쇄신이다. (인적 쇄신이 없다면) 특수부라는 ‘작은 중수부’들이 전국에 난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범정) 역시 포스트 중수부 체제에서 주목받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동안 중수부는 전국 각 지검의 특수부 수사를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중수부 폐지 이후 특수부의 컨트롤타워는 검찰 정보 라인의 핵심인 범정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범정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건을 각 특수부에 배정하고, 이를 관리·감독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범정 자체가 중수부와 마찬가지로 ‘정치 검찰’의 온상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 쪽에서 박당선인측에 “중수부의 직접 수사 기능은 폐지하되, 고검 등에 ‘반부패특별수사본부’(가칭)를 신설해, 일선 지검 수사를 지휘·지원하는 역할을 지속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박당선인은 중수부 폐지 후 공수처를 신설하는 대신 상설 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친박계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중수부 폐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클 뿐, 검찰 개혁의 큰 그림을 놓고 보면 중요하지 않다.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다. 상설 특검제가 중수부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중수부를 폐지한 이유가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특검은 정치적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나. 검찰이 사건을 특검에 호락호락 넘겨줄 리도 만무하다. 상설 특검제는 (특검이) 국회 통과에 걸리는 시간만 단축할 뿐 과거 특검의 한계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권력의 힘을 빼는 작업은 역시 지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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