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온 걸까? 골프채 놓고 김우중 돌아오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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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가족과 끈끈한 인연…여권에 대우맨 여럿 포진

백발노인이 새벽같이 골프를 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요즘 모습이다. 그는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후 한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골프에 재미를 붙였다. 베트남에 머무르며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9홀을 돌며 골프를 친다는 김 전 회장이 3월20일 귀국했다. 22일 서울 부암동 에이더블류(AW)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 46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는 이경훈 대우인회 회장(전 대우 회장),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전 대우 무역부문 사장), 김용원 전 대우전자 회장,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회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등 대우그룹 출신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과거 대우그룹을 이끌던 핵심이 총출동했다.

김 전 회장은 2010년부터 매년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왔다. 경영 일선에 복귀하려는 사전 작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재기설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이번 기념행사장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건강이 좋아져야 뭘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짧은 말로 재기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후진 양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여운을 남기고 행사 다음 날 출국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관계자는 3월24일 “김 전 회장은 이미 출국해서 현재 한국에 없다”며 “언제 다시 입국할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맨 오른쪽)이 3월22일 열린 대우그룹 창립 46주년 기념식장에 들어서며 전 임직원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에서 경영 복귀설 ‘솔솔’

김 전 회장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 세계 시장을 누볐던 대우맨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우인회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등이 눈에 띄는 단체다. 또, 매년 창립 기념식을 통해 대우의 기업 정신을 반추한다. 김 전 회장이 주창한 대우 정신이 박근혜 정부 출범을 맞아 꿈틀거린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김 전 회장의 경영 복귀설이 요새 뜨거운 감자인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을 따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며 “그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현 정부에 자리를 차지한 대우 출신 인사들이 힘을 보태면 복귀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전망했다.

김 전 회장은 몇 해 전 베트남에서 열린 강연에서 “지금도 가끔 대우가 재기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며 “대우가 다시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경영 복귀 시기가 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또 최근 “제품을 팔 시장이 없으면 시장을 만들어서라도 미래를 개척하는 김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와 통한다”는 전 대우그룹 관계자의 말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김 전 회장과 박 대통령 가족의 관계는 대구사범학교에서 시작된다. 김 전 회장의 아버지 고 김용하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은사였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1960년부터 66년까지 한성실업에 근무했던 서른한 살 청년 김우중은 1967년 서울 충무로에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하는 일마다 성공했다. 1970년대 대우건설-대우증권-대우전자-대우조선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신흥 재벌이 됐다.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이뤄진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박 회장이 삼양산업(EG의 전신)을 인수할 자금 9억원을 빌려준 사람이 김 전 회장이다.

새 정부 들어 국회는 물론 청와대에 대우 출신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그의 재기설을 뒷받침한다. 박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전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이었다. 백기승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대우그룹 홍보담당 임원이었다. 최경환·안종범·강석훈·정희수 새누리당 의원도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다.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은 김 전 회장의 연세대 경제학과 후배로 친분이 있다. 김 전 회장이 사면받은 지 5년이 지났고 대우그룹의 공과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만큼 세월이 지났다는 점과 지난해 체납 세금 14억5000만원을 모두 완납한 것도 경영 복귀설에 무게를 더한다.

매달 검진받으며 건강 챙겨

1998년의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여파로 부채 비율이 6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신청했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출국한 후 베트남·중국 등지에서 도피 생활을 했다. 이때도 나름으로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왔다. 김 전 회장이 재기할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베트남 국토개발 사업을 자문하면서 쌓은 인맥이 상당하고 현지에서 대우 브랜드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좋기 때문이다.

그는 인재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하는 세계 경영인 육성 과정(글로벌 영비즈니스맨)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해외 시장 개척과 경영에 관심 있는 국내 대학 졸업생 30~40명을 선발해 1년 동안 교육을 통해 실전형 인재를 키우는 과정이다. 지난해 베트남 국립 달랏 대학교에서 이 과정을 마친 1기생 33명 전원이 연봉 2만~3만 달러를 받으며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포스코, CJ푸드빌, 한솔 등)에 취업했다. 김 전 회장이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건재함을 과시한 대목이다. 현재 교육받고 있는 2기 학생 40명을 대상으로 김 전 회장을 비롯해 장병주 전 대우그룹 무역부문 사장(세계경영연구회 회장) 등 대우그룹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재기 가능성이 작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자금이 없는 데다 나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이유에서다. 오랜 해외 도피 생활을 마치고 2005년 6월 귀국한 그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06년 분식 회계 등의 협의로 징역 8년6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00억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포기하고 복역하다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31일 특별 사면됐다.

당시 링거를 맞으며 법정에 들어설 정도로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과거 심장 수술도 받은 이력이 있는 데다 지난해 대우그룹 창립 기념식에는 보청기까지 착용했다. 하지만 최근 그의 모습이 달라졌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모습은 78세의 노구에도 꼿꼿했다. 얼굴빛은 맑았고, 보청기도 착용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지었고 행사 중반에는 행사장에 모인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건강을) 체크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매달 건강검진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브란스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나이가 많지만 특별한 병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때 삼성그룹과 LG그룹을 제치고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서열 2위까지 대우그룹을 성장시켰던 그는, 공항 수속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세계를 누볐다. 부인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지난해 한 공식 석상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일에 미쳤던 사람이 한가로이 골프를 즐기는 모습은 낯설다. 그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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