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vs 뉴욕 시장 톡 쏘는 비만 전쟁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4.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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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의 탄산음료 판매 금지 조치로 시끌

“대용량 탄산음료는 이제 공공장소에서 팔지 못한다.”

뉴욕 시가 극약 처방을 내렸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담배를 보이는 곳에 진열해서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밝히면서 건강과 공공 보건을 둘러싼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6월이었다.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16온스(약 500㎖) 이상의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에 사는 성인 인구 3명당 1명꼴로 비만 또는 당뇨, 당뇨 전기 상태라는 심각한 조사 결과가 나온 데 따른 극단적 조치였다.

미국 질병관리국(CDC)은 미국 성인의 3분의 2를 ‘과체중’, 아동의 17%가량을 ‘비만’으로 분류하고 있다. 비만 천국이 된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지목되는 범인은 바로 탄산음료다. 이 중에서도 설탕이 포함된 가당 음료가 비만의 주적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은 소다(soda)로 불리는 콜라·사이다와 같은 가당 탄산음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2012년 5월30일 블룸버그 뉴욕 시장(왼쪽)이 시청에서 탄산음료 판매 금지 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New York Times
비만 줄이자는 광고 낸 코카콜라

탄산음료가 비만의 주범으로 알려지자 코카콜라 사는 1월14일 미국 주요 방송사의 황금 시간대에 비만을 줄이자는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만은 복합적인 도전’이라는 주제의 광고에서 “코카콜라는 저알칼리 음료를 개발하는 등 지속적으로 비만 퇴치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카콜라를 포함한 모든 것에는 칼로리가 있다. 소화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이 마시거나 먹는다면 비만이 된다”며 비만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음료 소비 전문가인 노스캐롤라이나 체플힐 대학의 베리 팝킨 교수는 “코카콜라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비만을 일으킨 주요한 요인으로 남아 있다. 다른 음식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미국에서 비만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바로 설탕이 포함된 음료수”라고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탄산음료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며 탄산음료 규제 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런데 3월11일 법안 발효를 하루 앞두고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뉴욕 주 대법원의 밀튼 팅글링 판사는 뉴욕 시의 판매 금지 결정을 ‘독단적이고 변덕스러운 조치’라며 시행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뉴욕 시의 조치는 일부 가당 음료에만 적용돼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며 만성질환을 퇴치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더라도 뉴욕 시가 적법한 상품의 판매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뉴욕 시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안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거세다. 대다수 소비자단체가 “이번 법안은 비만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창의적인 조치이고, 만성질환 발생률을 낮추는 것은 뉴욕 시 보건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며 뉴욕 시의 정책을 옹호하고 나섰지만 일부 학계와 기업체 사이에 의문부호는 커지고 있다.

듀크 대학 공공정책학과의 코린 크럽 교수는 블룸버그 시장의 제안을 “어리석다”고 일축했다. 그는 “법안은 비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공공 정책이 아니다. 큰 음료를 사는 사람이 작은 것을 사는 것으로 바뀔 뿐”이라며 정책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코카콜라를 포함한 음료업체들도 성명서를 통해 “시민들은 이보다 나은 대우를 받길 기대하고, 마땅히 받아야 한다. 소비자가 어떤 크기의 음료를 구매할지는 소비자 마음인데 보건 당국이 탄산음료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과도한 조치를 취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블룸버그 시장은 단호하다. 그는 뉴욕 시장으로 있는 11년 동안 찬반양론이 거세게 몰아치는 문제에도 아랑곳없었다. 특히 시민 건강과 관련된 조치들에서 그래왔는데 공공장소 흡연 금지, 트랜스 지방 함유 식품 판매 금지, 패스트푸드 제품의 칼로리 표시 의무화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이번 뉴욕 주 대법원의 정책 추진 금지 판결 직후에도 “이것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인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자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과거 흡연 금지법도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다. 그렇다고 지금 사람들이 타인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맡아야 하는 금지법 이전 시대로 돌아가길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저소득층일수록 ‘탄산 비만’ 문제 심각

탄산음료의 주 소비층인 뉴욕 시민 사이에서도 반응은 엇갈린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건강 문제를 생각하면 가당 음료를 많이 마실 경우 온갖 질병에 걸릴 수 있지만, 자기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시민이 있다. 반면 “정부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다. 기업들이 음료에 설탕을 얼마나 넣는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며 뉴욕 시의 규제 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시민도 많다.

아직 ‘비만’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비만 문제를 사회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소득이 낮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비만을 안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토마스 파를리 뉴욕 시 보건국장은 “보건 당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역별로 가당 음료의 섭취량과 비만율이 높은 상관관계가 있으며, 가장 높은 가당 음료 섭취량을 보인 지역들을 보면 뉴욕 시에서 소득 수준이 제일 낮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적으로 정리해 말했다. “비만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소수 인종들이다.”

세금을 더 높게 매겨 가격을 높이는 정책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탄산음료에 세금을 높게 매긴다고 저소득층의 소비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탄산음료 소비에 지출하는 돈이 많아 이들의 부담이 증가되는 역진세(regressive tax)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비만으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의 건강 문제가 개인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더 나아가 ‘평등권’을 외치는 국가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가 복잡하게 얽힌 ‘비만’이라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나섰다. 비만과의 싸움에서 이기자는 의미에서 ‘Let’s Move’라는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고 있음에도 블룸버그 시장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이다. 과거에도 여러 정책들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인기를 얻은 그가 미국 대표 기업들의 제품인 탄산음료 규제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비만과의 전쟁’에서 선봉장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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