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뒷바라지하다 날 샌다”
  • 경북 군위·이혜숙 객원기자 ()
  • 승인 2013.04.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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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무소속 등 기초단체장 세 번 지낸 박영언 전 군위군수의 ‘공천 폐지론’

4·24 재보선을 앞두고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 후보에 대한 정당의 공천 폐지 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등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었던 만큼 “이번에야말로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여론의 눈치를 살피던 정치권은 다시 ‘기득권 유지’ 쪽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폐지 보류’ 방침을 밝혔고, 새누리당 역시 ‘조건부 무공천’이라는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섰다(20쪽 상자 기사 참조).

당장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기초단체장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민선 전(前)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권문용 회장)는 4월3일 “여야는 국민과 한 약속을 빠른 시일 내에 이행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직 기초단체장들이 특히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이들이 지금의 정당 공천제에 따른 폐단을 온몸으로 겪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4월3일 경북 군위에서 박영언 전 군수를 만났다. 박 전 군수는 군위군수를 세 번 연임했다. 민선 3기(2002~06년) 때는 정당 공천, 민선 2기(1998~2002년)와 4기(2006~10년) 때는 정당 공천을 포기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기초단체장 후보의 정당 공천제가 갖는 폐해를 잘 알고 있다.

4월3일 박영언 전 군위군수가 기초단체장 정당 공천 폐지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기초단체장 후보 정당 공천 폐지가 지난해 대선 당시 여야의 공약이었음에도 슬그머니 ‘없던 일’로 돌아갈 낌새다.

정당 공천제가 모든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부 국가,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특이하게 변형됐다. 일본은 정당 공천이 남아 있긴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특히 영·호남 지방에서 특정 당의 공천은 곧 당선이란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공천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말이 정당 공천이지 사실은 지역 국회의원의 단독 공천이다.

지금까지 군위군수를 세 번 지냈다. 그중 두 번은 무소속이었고, 한 번은 정당 공천이었는데.

나는 내무부 공무원과 관선 시장 등 공직 생활을 오래 했다. 처음 군위군수 선거에 나올 때 당시 현직 군수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내게 공천을 주는 문제를 두고 알력이 심했다. 공천심사위원 상당수가 나를 지지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공천을 받았다. 당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다(1998년 군위군수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선 박 전 군수는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됐다). 그 다음에는 정당 공천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입당하고 나니까 군수직을 수행하면서 야당과 갈등이 심했다. 무소속이면 여야를 불문하고 협조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2006년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인가?

그때도 사실 공천심사위원회에서 70%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도 결과는 30%의 지지를 받은 다른 사람이 당의 공천을 받는 것으로 되었다. 공천심사위원회가 투명성을 높이면 된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다. (공천) 결정권을 한 사람(국회의원)이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해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다시 나와 이기긴 했지만 정당 공천의 폐단을 여실히 느꼈다. 한마디로 정당 공천제는 국회의원의 전유물이다.

박 군수가 높은 지지율을 얻었는데도 다른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건 뭐…. 배경을 안다 하더라도 여기서 다 밝힐 수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니까….

박 전 군수는 이 대목에서 말을 아꼈다. 그러나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에 불만을 품은 예비후보들의 탈당이 전국에서 속출했다. 열린우리당 전북 순창 지역 기초의원 5명이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은 기초의원을 정치권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며 집단 탈당했다. 이후 전북 지역 20여 명, 충남 지역 10여 명도 탈당 대열에 동참했다. 당시 중앙선관위원회가 발표한 ‘2005년도 고액 기부자 명단’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에게 수백만 원의 목돈을 기부금으로 낸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이 30~40명에 이르렀다. 당연히 공천 로비용이라는 의혹이 따랐다. 박 전 군수도 그때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정당 공천의 폐단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국회의원 한 명에게 의지해 공천을 받다 보니 단체장들이 지역 주민보다 지역 국회의원을 먼저 보게 된다. 그 말은 지역 단체장들이 주민보다 국회의원을 더 섬기게 된다는 말이다. 공천을 받은 단체장들은 국회의원에 예속된다. 나도 공천받고 4년 해봤지만 그 기간 동안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무슨 행사다 뭐다 해서 오면 그 뒤에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하기에 바빴다. 나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대다수 단체장이 직면하는 문제였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역 주민을 섬기는 정치가 우선이라는 게 나의 확신이다.

어떤 제도가 오랜 기간 유지된다는 건 장점도 있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이 자기 권한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 문제다. 자기들의 표와 이익을 위해 당연히 없어져야 할 제도를 인위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처음부터 정당 공천 폐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공천 폐지를 언급할 수밖에 없게 만든 데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역할이 컸다. 위기의식을 느낀 박근혜 후보가 일단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끌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반면 민주당은 공약을 했으면서도 (지금) 지키지 않고 있어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다.

정당 공천이 없어지면 인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고, 정치 신인이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원래 지방자치제도 자체가 중앙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역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 행정을 강화하는 것이 지자체의 취지다. 때문에 중앙에서 어떤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 지역에 잘못된 사람이 많이 살면 잘못된 사람이 대표가 되는 것이고, 옳은 사람이 많이 산다면 옳은 사람이 대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잘났건 못났건 자기 테두리 내에서 대표성을 갖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정당이 결정해서 자꾸 내려보내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깨진다. 결국 지역 주민이 선택할 것이냐, 정치인이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다.

2007년 7월25일 당시 박영언 군위군수(맨 왼쪽) 등이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을 찾아 강재섭 대표를 만났다. ⓒ 뉴시스
정당 공천이 없을 경우 후보가 난립해 투표율이 저조하거나 선거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지역에 20명쯤 나온다면 그 지역의 표가 20분의 1로 등분될 수 있다. 그중 10%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내려온 사람이 와서 하는 것보다는 낫다. 10%라도 지역 주민의 선택이 들어간 것이니까. 외지의 특정인이 정당이란 이름 하나만 가지고 와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20%, 30%, 40% 지지율로 당선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을 타고 내려온 사람은 여전히 지역 주민은 안 보고 공천을 준 국회의원과 당만 바라볼 것이다.

중앙과 지방의 분권만을 강조할 수는 없지 않나. 중앙당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많을 텐데.

국회의원의 역할이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의 공천권을 쥐고 있으면 그 사람이 중앙에 가서 단체장의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부탁하겠는가. 공천에서 자유로운 단체장이 당선된 경우 국회의원에게 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국회의원도 그 단체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3선 군수로서 정당 소속과 무소속을 모두 경험했는데 그 차이가 현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가?

많은 차이가 난다. 당에 소속됐을 때는 당의 행사가 우선이기 때문에 지역 행사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이 같은 정치 성향으로 이른바 코드가 맞는 경우 지역을 위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그런 점 때문에 공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코드가 맞느냐, 안 맞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자치단체장은 지방 현안에 대해 자기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중앙당과 코드가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도 코드와 별개로 이뤄지는 일이 많았다. 예컨대 무소속일 때는 새누리당의 힘도, 민주당의 힘도 빌릴 수 있다. 정당색이 명확하면 오히려 다른 당의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국책 사업의 경우 특히 그렇다.

정당 공천제를 유지하면서 주민소환제도, 주민감사제도를 적절하게 이용하면 단점이 보완될 수 있지 않겠나?

권력의 속성상 힘의 원리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런 제도가 악용될 때가 많다. 그런 제도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국회의원부터 소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입법자인 국회의원이 자기들은 소환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린 것 아닌가. 원칙으로 돌아가서 국회의원들이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을 때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것이다.

공천 폐지에 대해 민주당은 보류 상태다. 새누리당이 그나마 조건부 찬성 쪽인데.

민주당이 공당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정말 공천권을 내려놓겠는가는 의문이다. 국회의원의 속성상 자기들의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놓은 것일 뿐. 그래서 더욱 민심을 모으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먼저 공직선거법부터 개정하는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현직 단체장들의 입장은 어떤가?

재미있는 것이, 현직 단체장들이 사석에서 모였을 때는 공천 폐지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전화 한 통이면 다 꼬리를 내린다. 눈치를 봐야 하니까. 결국 그만둔 단체장들이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정당 공천 폐지 발목 잡아  
제 밥그릇 챙기려는 국회

지방선거의 부활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지난 1990년 여야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1991년 기초단체 의회인 시·군·구의회 선거가 실시됐다. 당시에도 정당 공천 문제가 여야 간에 쟁점이었다. 지금과 같은 광역단체장 및 광역의회 그리고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회 등 이른바 4대 선거가 동시에 실시된 것은 1995년부터다. 당시에는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정당 공천을 배제했지만, 기초단체장 선거에는 정당 공천을 허용했다. 기초단체 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기득권 유지를 꾀하는 국회의원의 입장을 절충한 꼼수였다. 1996년 한때 여당인 신한국당에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일부 여당 의원과 야당의 반대로 유야무야 됐다.

국회는 2006년 지방선거부터 기초단체의원 선거까지 정당 공천을 허용하도록 법을 바꿨다. 국민이 뭐라 하던 기득권을 키운 것이다. 정치권 일부와 시민단체에서 “중앙 정치에 의해 지방 정치가 휘둘리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7년 6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서 기초단체장·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제 폐지와 후원제의 제한적 허용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2009년 3월에는 기초지방선거정당공천폐지운동본부가 출범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매년 공천 폐지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전 교수가 지방선거 공천 폐지를 들고 나오자, 여야 정치권도 이에 편승해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지 불과 3개월도 안 돼 이 약속은 다시 휴지 조각이 될 처지가 됐다.

민주통합당은 “아직 당내 의견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폐지 보류’ 방침을 밝혔다. 당초 공천 폐지 입장을 확실히 했던 새누리당 역시 “우리만 공천을 폐지하면 선거에서 백전백패”라며 ‘조건부 무공천’이라는 모호한 안을 내놓았다. ‘지역 사정에 따라 특별한 이견이 없는 경우’에 한해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말해 지역에서 공천을 원할 경우에는 당이 공천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꼼수”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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