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컴퍼니’ 많아져야 갑 을 관계 없어진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5: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지금 나쁜 기업들의 나쁜 행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 같다. 훗날 역사가들이 2013년을 ‘나쁜 기업의 해’라고 규정할지 모른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 최근 들어 착한 기업, 다시 말해 ‘굿 컴퍼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나쁜 기업이 판치는 세상에선 더는 희망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비자금’ ‘불공정 거래’ ‘갑의 횡포’ ‘역외 탈세’ ‘골목상권 위기’…. 듣기 거북한 용어들이 요즘 우리 언론을 꽉 채우고 있다. 곪을 대로 곪은 기업 병폐가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비자금을 챙기고, 세금을 빼돌리고, 자식에게 편법 증여하고, 하청업체를 괴롭히는 수법도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CJ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그동안 벌어졌던 대기업 비리 사건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무수히 듣고 본 데자뷰(Deja-vu)일 뿐이다.

이 주최한 ‘2013 굿 컴퍼니 컨퍼런스’가 5월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됐다. 이날 강사로 나온 로리 바시 박사(맥바시&컴퍼니 CEO), 로사 전 아일랜드 UCD 마이클 스머핏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 대학 마케팅 교수,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상민
지난 4월 말 한 통신회사 상담원이 고객 전화를 친절하게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준 일이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다른 통신회사 CEO는 “불편한 고객한테서 전화가 오면 바로 끊어버려라”는 지시를 내려 대조를 이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장은 최근 “돈만 벌면 된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항공사 여자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라면 상무’로 불렸고, 해당 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어떤 기업은 흔히 말하는 ‘밀어내기 방식’으로 영업하다 국민의 지탄을 받았고 이 회사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 회사는 지금 존폐의 기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한번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때가 늦은 듯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지금 나쁜 기업들의 나쁜 행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 같다. 훗날 역사가들이 2013년을 ‘나쁜 기업의 해’라고 규정할지 모른다.

“재벌이 중소기업을 빨아들인다”

케케묵은 기업 관행도 심판대에 올랐다. 갑을 관계, 일감 몰아주기 등이 대표적이다.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크게 개선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음지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일감 몰아주기 등 경제 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키울 뿐”이라며 “이것은 나라 경제나 기업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간 <팔꿈치 사회>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서 보았듯이, 윗물(대기업 이윤)이 흘러넘쳐 아래(중소기업 이윤)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 물을 위로 뽑아 가져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트리클 다운 효과’가 아니라 ‘스펀지 효과’라고 해야 마땅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중소기업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 최근 들어 착한 기업, 다시 말해 ‘굿 컴퍼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나쁜 기업이 판치는 세상에선 더는 희망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지난 5월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2013 굿 컴퍼니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날 키노트 스피치를 한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겠지만 그렇다고 이윤만 남겨서는 안 된다”며 “굿 컴퍼니를 뛰어넘는 그레이트 컴퍼니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굿 컴퍼니>의 저자인 로리 바시(Laurie Bassi) 박사(맥바시&컴퍼니 CEO)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주주의 이익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 착한 기업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단언했다. 착한 행동을 보여주며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은 경쟁사보다 높은 성과를 올리고 주식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바시 박사는 “(미국) 디즈니랜드에서 청소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발견했다”며 “고객이 화장실에 가거나 물어볼 게 있을 때 가장 일선에서 접촉하는 사람이 청소부다. 청소부는 고객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상품이 아니라 이처럼 (고객과의) 접점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부분에 굿 컴퍼니의 중요한 요소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강연한 로사 전(Rosa Chun) 아일랜드 UCD 마이클 스머핏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굿 컴퍼니 랭킹에 들어 있다가 회계 부정으로 갑자기 망한 기업도 있다”며 “한국에도 요즘 한 우유회사가 시끄럽던데, 그 회사는 한국에서 선정된 존경받는 기업에 포함돼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왼쪽)5월29일 검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오른쪽)5월9일 김웅 남양유업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밀어내기’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CEO는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 버려야

라젠드라 시소디어(Rajendra Sisodia) 미국 벤틀리 대학 마케팅 교수는 ‘깨어 있는 자본주의’를 강조하며 “이는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했던 전통적인 기업 경영 철학보다 훨씬 풍부하고 깊은 철학을 의미한다”며 “깨어 있는 자본주의 철학은 기업 경영이 수익 극대화보다 더 높은 목표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게 요점”이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산업혁명 이후 발전한 자본주의는 부를 축적시키고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기업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런데 그 기업은 사회라는 생태계 안에 존재한다. 나쁜 기업은 그 안에서 종업원·고객·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실패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재무제표의 손익계산서를 흑자로 유지하는 영업 스킬과 전략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은 사람이 불로장생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간절하게 성장이 이어지길 바란다. 최근 각광받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말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영속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바람인 것이다.

오픈 소스 정책으로 단숨에 세계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을 누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든 구글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다. 이 슬로건은 빈털터리에서 모험심과 유연한 사고로 거대 기업을 일군 MS·애플 등이 왜 성공했는지를 증명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세계는 한 가족이 됐다. 기업 문화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세계 곳곳으로 하루면 퍼져나간다. 기업이 돈만 벌겠다는 전략을 쓰면 하루아침에 공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때문에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그 기업은 도태된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단순히 (회사) 복지가 좋다거나 회사 구성원만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좋은 회사가 아니다”라면서 “회사를 구성하는 모든 임직원과 고객, 지역과 사회를 포함해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굿 컴퍼니”라고 말했다.

경주 최씨 가문에는 ‘집안을 다스리는 육훈(六訓)’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 가운데 ‘1년에 1만섬 이상 재산을 모으지 마라’ ‘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 등의 경구가 있다. 이른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경주 최씨 ‘과거’와 대한민국 ‘현재’의 대화가 절실한 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