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극우·망언 뿌리는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비롯”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8.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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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맞수’ 가상 대담집 낸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씨는 흔히 우파 진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반공·반북(北)주의’ ‘자유시장경제 옹호’로 요약되는 보수 담론을 적극적으로 주창하고 선도해왔다. ‘보수 이데올로그’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국제어의 반열에 오른 영어를 제도적으로 공용화하자는 ‘영어 공용화론’, 일제강점기에 성취한 근대화에 주목하자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은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런 그가 독특한 내용의 신간 <역사가 말하게 하라>를 발표했다. 계백과 김유신, 왕건과 견훤, 최영과 이성계, 인현왕후와 장희빈,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등 한국사의 맞수들이 만나 가상 대담을 벌이는 내용이다. 겉으로는 이른바 ‘썰전’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허나 이들 사이에서 불꽃 튀는 논쟁은 나타나

ⓒ 시사저널 이종현
지 않는다. 한때 역사의 라이벌이었던 이들은 감정의 앙금을 내려놓고 대화한다. 각각의 대화에는 저자 복거일씨의 역사관·사회관이 강하게 투영돼 있다. 그 과정에서 기존 한국사 서술의 통념을 뒤집는 도발적인 주장들이 나오기도 한다.

광복절을 약 일주일 앞둔 8월7일, 새 책을 출간한 복씨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한국사를 기술하는 기본 관점,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에 대한 해석 등을 두고 특유의 시각을 드러냈다. 역사적 문제로부터 시작한 질문은 자연스레 현 시국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투철한 대북관, 한-미-일 동맹 체제, 재벌 중심의 자유주의 경제 등의 보수적 가치관을 힘주어 강조했다.

 

‘역사적 인물들의 가상 대담’이라는 형식이 독특하다. 이런 기획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한 매체에서 연재물로 제안해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연재)하다 보니 역사관, 특히 한국사의 기술에 대해서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을 밝힐 기회가 됐다. (책 속에는) 사회의 통념과 다른 얘기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원래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틀을 깨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 중 하나다. 나는 그 누구보다 그 일을 활발히 해왔다. 이번 작업도 그 연장이다.

한국사 기술에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나.

우리 역사 기술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다. 민족주의적인 태도가 기본이고, 나아가 국수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까지 있다. 세계 역사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자리를 성찰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역사서와 실제 사료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다. 시민들이 역사책을 읽으면 역사에 대해 오히려 잘못 해석하게 된다.

확실히 대중의 통념에 어긋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시각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너무 ‘수탈’에만 집중한다. 당대 2000만 조선인의 삶을 수동적인 것으로만 인식한다. 처절하게 독립운동을 벌이면서도 근대화를 진행시켜온 과정을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또 일본의 잘못을 강조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조선 왕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미화한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중세 사회였던 조선에서 현대 사회인 대한민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근대화가 폄하된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서양 문명을 체화해온 과정이 (역사적 평가에서) 빠져버리는 것이다.

조선 사회 이전의 사회 질서를 향한 비판적 접근이 눈에 띈다. 고려 때 노비 반란을 일으킨 인물 만적의 입을 빌려 “지독한 노예 제도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발전을 막았다”고 밝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노예제는 매우 엄격한 수준이었다. 임금이 매우 싼 노예 노동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기술 혁신과 경제 발전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조선 사회 지식인 그 누구도 이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양반 기득권 속에 갇혔기 때문이다. 실학자들도 왕조와 양반 계급을 유지하며 해답을 구하려 한 사람이었다. 양반이란 게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서 노예의 노동으로 생활한 이들이다. 상투 틀고 상놈들 볼기나 치면서, 전쟁 나면 도망가기나 했다. 우리가 왜 새로운 개화의 물결에 동참하지 못하고 뒤떨어져 나라까지 빼앗겼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우리는 조선 시대를 터무니없이 미화한다.

곧 광복절이다. 조선 시대를 비판하고 일제강점기 당시의 근대화 과정을 평가하자는 주장이 일부에겐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한데.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은 명백하다. 이미 드러난 역사가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하지만 (개화기에) 일본이 큰일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일찍 근대화에 나섰고 그래서 성공했다. 일반적으로는 서구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화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다 보니 서구 문명을 일본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은 통로에 불과했다. 더 중요한 건 서양 문명이 전통 문명을 압도하며 새로운 문명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다. 그걸 인정해주면 일본 사람들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지 않겠나. 일제강점기를 두고 지금 일본과 아옹다옹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은 잇따라 ‘망언’을 내놓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국수주의적인 발언이 이어지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는 서구 문명을 향한 열등감이 강하다. 그것이 굴절되어 극우적 행태로 분출된다. 과거 일본(이 서구 문명의 도입 과정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주면 일본 사람들이 상처받은 열등감을 치유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무조건 잘못된 것만 이야기하면 이들의 열등감은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상당히 중시하는 느낌이다.

일본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북한과 목숨을 건 투쟁을 해왔지 않나.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할 때 전략적 후방이 어딘가. 일본밖에 없다. 현재 미군 전력의 상당 부분도 일본에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깊다. 물자 공급처 역할을 수행한 일본이 없었으면 한국전쟁에서도 패배했을 것이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도 일본의 발달된 기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국토를 수호했던 이순신 장군의 입으로 ‘자주국방론’을 비판하는 부분도 상당히 도발적이다.

자주국방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었다. 자주국방, 말은 참 좋다. 그런데 그 결과가 뭔가. 갈팡질팡하고 있지 않나. 자주국방은 아주 비효율적인 발상이다. 주한미군의 힘을 빌려 전쟁을 억제하는 게 훨씬 낫지 않나. 자주국방 하자는 것은 집집마다 ‘자주 치안’ 하면 된다는 얘기랑 똑같다.

‘현재 한국의 군사력을 감안하면 이미 자주적인 대북 억제력을 확보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 났을 때 이기는 것 자체가 아니다. 아예 대남 도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억지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군사력, 중국의 외교력을 확보해야 하고 거기에 일본까지 끼어야 한다. 지금 일본이 자꾸 이탈하려 하는데, 빨리 끌어들여야 한다.

송강 정철의 입을 빌려 붕당 정치의 폐해와 현대 민주사회의 ‘민중주의’(포퓰리즘)가 본질상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비판했던 것과 맥이 통하는 듯하다.

경제민주화란 19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산주의의 경제적 측면을 가리킨 말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모든 사람이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체제다. 시장경제라는 말 자체가 곧 민주화를 전제하고 있다. 시장경제라는 말 자체라는 것 속에 이미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이다. 거기에 ‘민주화’를 더 붙여 부를 재분배하려는 것은 곧 공산주의적 발상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탈’ ‘하청업체 쥐어짜기’ 등 불공정한 경제 여건에 의해 발생하는 피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나.

그렇다고 이를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규제하려는 것이 옳은가. 대기업이 특정 업종을 못 하고 중소기업만 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책인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소기업들도 잘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하는 식으로 해결할 문제다. 재벌 대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건 정말 문제다. 사실 재벌 규제는 예전부터 해오던 것 아닌가. 새삼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내걸며 나설 필요가 있나.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선거를 위해서는 좋았다. 박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근본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통치하는 데는 결정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재벌 기업을 윽박지르고 한쪽에선 투자하라고 한다. 돈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겁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하겠나. 기업들 의욕 꺾고 장사 못 하게 하면 국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고용이 침체된다. 이러다간 나라 경제가 거꾸러진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철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광화문이 가만히 있겠나.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입 밖에 낸 순간 발목이 잡힌 것이다.

가상 대담 형식을 취했음에도, 저자 후기에서 ‘대결 자체보다 개인적 및 사회적 화해’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논쟁적인 주장을 많이 하면서도 사회 통합에 대한 문제의식이 남다른 것 같다.

싸우고 나면 감정의 앙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쉽게 털어내기 힘들다. 화해가 어려운 이유다. 이 책에 실린 가상 대담은 오랜 세월이 지나 감정의 앙금이 사라진 이들이 나눈 대화다. 감정을 내려놓고 역사를 바라보게 되면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을 만들어낸 사회적인 힘이 보인다. 역사를 볼 때는 그 사회적인 힘, 당대의 큰 조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책에서 그런 부분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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