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나무 봤어?” 묻는다
  • 정락인 기자·김민신 인턴기자 ()
  • 승인 2013.11.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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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인들과의 38년 교감 담아 <뭘 써요, 뭘 쓰라고요?> 낸 김용택 시인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벚꽃을 보고 글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민이는 한 줄도 쓰지 않고 놀기만 했습니다. 내가 성민이에게 ‘성민아, 글 써라’ 그랬더니 성민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뭘 써요?’ 하고 물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한참 있다가 성민이가 또 물었어요. ‘그런데 제목은 뭘 써요?’ 내가 다시 ‘네 맘대로 써야지’ 그랬더니 성민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민이가 ‘뭘 써요. 뭘 쓰라고요?’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써 왔어요.”

‘섬진강 시인’이 돌아왔다. 전북 임실군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김용택 시인이 최근 신간을 발표했다. <뭘 써요, 뭘 쓰라고요?>는 시인이 아이들과 글쓰기 교실을 통해 교감해온 38년의 기록이다. 전반적으로 글을 쓰는 단계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는 시험을 보거나 단 하나의 정답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김 시인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고찰하며,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철학적인 삶의 태도를 키우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아이들이 품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끌어냈을 뿐이다. 자세히 보고 듣고 생각하며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부쩍부쩍 자란다.

“내가 아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김용택 시인은 1982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21인의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을 발표했다. 이후 많은 작품을 통해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2008년 교단을 떠난 후에도 ‘작은 학교’를 열어 많은 방문객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교감을 지속하고 있다.

교육자로서 38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소감을 묻자 김 시인은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각자 마을에 있는 나무 한 그루씩을 매일 관찰하라는 과제를 냈다. 경수는 학교 오는 길에 보이는 느티나무로 정했다. 김 시인이 “나무 봤어?”라고 묻자 처음에 경수는 그냥 나무에 대해서만 대답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경수의 대답은 달라졌다. 어느 날은 느티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할아버지들을 봤다고 했다. 또 어느 날은 느티나무 앞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또 하루는 들판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더라고 했다.

김 시인은 이것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지향하는 교육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의 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나무만 보지 않고, 그 주변도 보게 되는 교육. 즉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교육이야말로 참된 가르침이다. 김 시인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자연과의 교감 통해 세상 탐구하길”

김 시인은 <뭘 써요, 뭘 쓰라고요?>의 마지막을 ‘시인과 나무’로 마무리한다. 산 아래 작은 마을 뒷산엔 어린 나무가 있었다. 소년이 청년이 됐을 때 나무는 청년의 키보다 더 자랐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고 청년은 시인이 됐다.

청년은 결혼 후 아이들을 데리고 느티나무에 갔다. 나무 그늘에서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시인은 시를 썼다. 세월이 흘러 시인의 아이들은 마을을 떠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시인은 아직도 느티나무 아래서 시를 쓰고 있다. 김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다. 주로 자연을 모티브로 작품을 써온 김 시인에게 나무란 각별한 존재다. “나무를 보다 보면 많은 일이 일어난다.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절마다, 햇빛과 바람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 자연이란 영원불멸한 가치다. 자연은 항상 완성돼 있으며 그럼에도 늘 새로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가 아이들에게 벚꽃과 나무, 비 등을 관찰하도록 한 뜻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 시인은 “아이들이 자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가치를 얻길 바란다”고 말한다. 자연과 사람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일. 사는 일이 곧 공부다. 38년을 교육자로 살았음에도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김 시인의 말을 듣고 그의 시가 떠올랐다.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벌들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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