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떡고물 바라고 정권 집사 노릇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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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찰’ 막는 민주적 제어 시스템 만들어야

불과 3일이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중간 수사 결과를 전격 발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지난해 12월16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다수의 아이디를 사용한 증거는 나왔지만 게시 글을 작성하거나 댓글을 단 흔적은 없다”고 발표했다. 18대 대선 레이스가 종반으로 치닫던 때다. 발표 시점은 밤 11시, 여야 대선 후보의 TV토론이 끝난 후 1시간이 지난 때였다.

불과 보름 남짓이었다. 중간 발표 내용이 뒤집히는 데 걸린 시간이다.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지난 1월3일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의사 표현을 했다고 밝혔다. 4월19일에는 권은희 수사과장이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수사 개입 사실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검찰은 김용판 전 청장이 수사 결과를 은폐 및 축소하고 일부 조작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확인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경찰은 ‘정치경찰’이라는 오명을 다시금 뒤집어썼다. 사실 경찰은 역대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정치경찰’ 꼬리표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확고한 중립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시민에 봉사하는 경찰이 아니라, 집권 세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조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월 열린 한 좌담회에서 “이번 국정원 사건 수사는 경찰의 수사권 역시 정치적 영향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경찰에 대한 총체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10월15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증인 선서를 거부한 채 자리에 앉아 있다. 김 청장 뒤쪽에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역대 정권, ‘국가경찰 체제’ 지속적 강화

경찰은 왜 집권 세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왜 정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조직이라는 불명예를 떨치지 못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경찰 특유의 중앙 집권적 권력 구조를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다른 나라의 경찰 조직과 비교할 때, 한국의 경찰은 과도하게 일원화·위계화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광복 직후 창설된 한국 경찰은 대륙식의 ‘국가경찰제’와 영미식의 ‘자치경찰제’ 중 전자를 채택했다. 경찰권을 지방정부에게 부여하는 게 아니라 중앙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서구 선진국의 국가경찰제가 그 조직과 권한을 업무나 기능에 따라 분산시키는 데 반해, 한국은 단일 조직으로 일원화해 행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도록 설계했다.

초대 이승만 정부는 경찰 권력을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한 정권으로 꼽힌다. 야당과 국민을 직접 탄압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4·19 혁명 당시 군이 아닌 경찰이 시민을 대상으로 발포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군사정부 시절에도 중앙 집권적 구조를 지닌 경찰은 정권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했다. 각 정권은 조직 확대와 관료 체제 심화 등으로 국가경찰 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매 정권마다 ‘자치경찰 도입’ 논의가 등장했으나 한 번도 현실화한 적이 없다.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은 한국을 사실상의 ‘경찰국가’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문 소장은 “외부의 적을 방어하는 기관이 군대라면, 경찰은 내부의 치안을 수호하고 범죄와 맞서는 기관이다. 그러나 정권이 비판 세력을 진압하는 용도로 경찰권을 남용해왔다. 권력이 중앙 상부로 과도하게 집중돼 있기에 정권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는 정권에 과잉 충성하고 시민의 기본권은 무시하는 경찰의 이중성을 지적한다. 집회·시위 관리, 대규모 파업 현장에서 권한 남용 내지는 인권침해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개혁 과제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쌍용자동차 파업 기간 동안에 경찰이 단전·단수, 음식물과 의약품의 반입 차단, 최루액 투하 등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조치를 과도하게 사용한 사건이 아직도 국정조사의 대상이 돼 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17일 민주당 의원들이 국정원 댓글 관련 의혹 수사에 대한 경찰의 발표에 항의하며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과 면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치경찰제’ ‘수사·치안 권한 분리’가 대안

경찰대 출신들의 권력 확대가 일각의 우려를 사는 바탕에도 경찰의 중앙 집권적인 권력 구조가 있다. 경찰대 출신들이 엘리트 의식으로 뭉쳐 권력집단으로 부상하게 될 경우 시민의 통제를 벗어나 정권과 유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 출신들은 학창 시절 매우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조직 내에서도 엘리트로 인정받는다. 이들 중에는 경찰의 한계를 절감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흔히 ‘4대 권력기관’이라고 하지만, 검찰이나 국정원에 비해 파워 면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찰 엘리트’라는 자부심에 어울리는 사회적 권력을 바라는 심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강력한 중앙 집권 구조의 혁파를 경찰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매번 구호로만 등장했던 자치경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처럼 수사 권한과 치안 권한을 분리해 중앙 권력의 상명하복식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이호중 교수는 “경찰 개혁의 핵심은 경찰의 치안 권한과 수사 권한이 정치권력의 영향력 아래 왜곡되거나 남용되는 것을 민주주의적·법치주의적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찰은 여러 국가 권력기관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분권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약화를 수반한다. 경찰 조직 입장에서는 그러한 개혁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한 일선 경찰관의 말이다. “자치경찰제의 취지는 참 좋다. 제대로 정착되면 좀 더 시민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 논리로는 분명 경찰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대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경찰 권력을 억누르기 위해 ‘자치경찰제’ ‘경찰대 축소’ 같은 의제를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마 당장 경찰대 출신들부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시민이 통제하는 권력’으로 거듭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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