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된다면야…” 악의적인 ‘한국 때리기’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12.0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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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간지들 앞다퉈 ‘혐한’ 보도…우경화 편승한 장삿속

10여 년 전 일본 지하철 상단에 광고하고 있는 각종 주간지 표지를 보면 한국 관련 기사가 자주 눈에 띄었다. 주로 한류 스타들에 대한 기사였는데 당시 드라마 <겨울연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욘사마’(배용준)를 비롯해 한류 스타들을 다루는 기사가 즐비했던 때다. 한류 스타들의 일본 공연이라도 있는 날이면 주간지들은 한국을 다루느라 바빴다. 스타만 취재하는 게 아니라 한국 음식과 문화, 심지어는 관광 정보도 취재의 대상이었다. 한국을 방문해 인사동·명동·동대문·강남 거리 분위기를 스케치하는 주간지가 허다했다. ‘한국 기사=돈’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던 시절이다. 당시 후지 TV가 한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방영한 탓에 우익 단체들에게 “한국 드라마 방영을 중지하라”는 압력을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여전히 지하철 상단에 걸린 주간지 표지에는 한국 관련 기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과거처럼 우호적인 기사가 아니다. 한국을 비하하는 기사 일색이다. 과거에 한국 비하는 소수의 인터넷 사이트나 일부 잡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요즘에는 주간지들이 주도하고 있다. 일본 내 반한(反韓)·혐한(嫌韓) 분위기가 마치 주간지의 표지에서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11월28일 서울 종로 교보문고에 비치된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 다이아몬드’는 ‘삼성,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다’라는 기사를 표지에 실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우경화 분위기 편승해 ‘혐한’ 특집 꾸며”

발행 부수 70만부로 주간지 중 1위인 ‘주간문춘’이 반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아베 총리가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 게임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다”라고 말한 내용을 보도해(아베는 이런 발언을 한 사실을 부인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합동 총회를 파행시킨 주인공이다. 주간문춘은 거의 매주 반한 기사를 싣고 있다. 이 잡지의 최근 기사를 보면 이렇다. ‘총력 특집,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미움을 받는다’ ‘한국은 바보다! 일본 수산물 금지로 중국 맹독 식품 의존’ ‘폭거! 한국의 일본 수산물 금수’ ‘한국의 망언을 10배로 갚아야’ 등 자극적인 제목 일색이다. 57만부로 발행 부수 2위인 ‘주간신조’도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위안부, 사실의 검증’ ‘노골적인 (일본) 증오가 수포로 돌아간 한국의 분풀이’ 등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룬 반한 기사를 싣고 있다.

후발 주자들의 한국 때리기는 더욱 심하다. 2003년까지 발행 부수 1위를 달렸던 ‘주간포스트’는 최근 한국을 이용해 추락한 잡지 위상을 회복하려는 듯 반한 감정 조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인의 일본 증오는 멈추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양산하는 한국’ ‘한국은 반일 자체가 목적’ ‘세계에서 반일 발언을 퍼뜨리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뿐’ 등 자극적인 기사를 싣고 있다. ‘주간SPA’도 ‘한국인의 역사관은 모두가 환상’ ‘일본인은 왜 이토록 한국이 싫게 되었는지?’ ‘중국과 한국의 경제 붕괴에 편승하는 투자법은?’ 등 깜짝 놀랄 만한 제목을 뽑고 있다.

‘주간플레이보이’처럼 저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들춰내며 선정적인 사진을 게재하는 매체조차도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 3류 잡지 취급을 받는 주간지들 역시 한국 때리기 대열에 합류해 선정적인 기사를 쓴다. 심지어는 글로벌 시사주간지지만 일본에서는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뉴스위크 일본판조차도 ‘반일 한국의 망상’ ‘한국이 전쟁 범죄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 등의 기사를 게재하며 존재감을 높이려고 한다.

최근 들어 일부 주간지가 반한 기사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1991년 버블 경제가 붕괴된 후 일본은 20여 년간 경기 침체를 겪으며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한국과 중국은 점점 성장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을 하며 일본을 제치고 G2로 등극했고 막강한 군사력마저 축적 중이다. 이웃 국가들의 발전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때로 과격하게 나타났다. 일본 국내 경제의 침체와 국제 관계에서의 부진이 한국과 중국 때문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흐름을 확대 해석하며 반한 감정을 조성하는 게 현재 일본 주간지들이다. 한국 때리기 기사는 과거 일부 보수층 독자가 타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대에 걸쳐 먹혀들고 있다는 주간지 내부 평가도 이런 흐름을 강화시켰다. 일본 ‘주간현대’의 모토키 마사히코 전 편집장은 “사회가 우경화하는 과정에 아베 정권이 탄생했다. 일부 주간지는 독자를 의식하기 때문에 우경화로 가는 분위기에 편승해 혐한 특집을 만든다”고 말했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주간지들의 생존 문제에 있다.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한국 때리기다. 스마트 시대에 주요 미디어들조차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주간지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예를 들어 전성기를 구가하던 남성 잡지 시장은 점점 하향세다. 사단법인 일본잡지협회에 따르면, 6대 주간지인 주간문춘·주간신조·주간아사히·선데이마이니치·주간현대·주간포스트의 판매 부수는 260여만부를 정점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일본 신문까지 나선다면 양국 관계 최악”

대형 출판사들은 대부분 주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간지 사업은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주간지 부수가 격감하자 그 여파가 그대로 출판사의 경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주간지는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등 선정성 보도 쪽으로 방향을 잡기도 한다. 여기에 추가된 것이 한국 때리기다. 주간지들은 살아남는 방법으로 민족주의에 영합하는 방향을 택했다.

우호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주간지들의 반한 기사는 오히려 고착 상태에 빠진 양국 관계를 더욱 냉랭하게 만든다. 주간문춘은 최신호(12월5일자)에서 ‘박근혜의 아줌마 외교’라는 기사를 통해 박 대통령을 ‘금주의 바보’로 선정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로 소동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인 교수는 “그나마 아직은 냉정하게 논조를 지키고 있는 주요 일간지들의 움직임이 향후 관건이다. 신문들이 한국 때리기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한일 관계는 정말 어려운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진정으로 양국 관계를 위한다면 매스컴이 냉정하게 대응하고 사실에 근거해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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