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법률’보다 ‘좋은 법률’이 으뜸
  • 홍완식│한국입법학회장 ()
  • 승인 2013.12.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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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품질 높이려 국내 첫 ‘정성 평가’ 도입…성숙한 의정 활동 이끄는 계기되길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의정 활동 평가는 나름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일명 ‘통법부’라 불리며 ‘행정부의 시녀’라는 조롱을 받았던 권위주의 시대 국회를 청산했으나 국회의 기능과 역할을 회복하기에는 의회민주주의 기반도 부족했고 의정 활동 경험도 일천했다. 이런 가운데 의정 활동 평가는 국회의원들에게 커다란 자극과 격려가 되었다. 비록 ‘어느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를 위주로 한 정량 평가식 의정 평가였지만, 그나마 법안을 발의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국회를 활성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시대가 변하면, 어떤 제도건 본질은 변함이 없어도 외양은 바뀌어야 한다. 법안 발의 건수를 중심으로 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의정 평가는 국회의원들에게 많은 법안을 발의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으나, 입법된 법률의 품질을 개선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법률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부족함에도 발의되었다거나, 위헌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법령의 수직적 체계 내지 수평적 체계를 결여하고 있는 법률안이 제출되는 경우도 있다. 법률안의 문구나 형식에 충분한 검토가 없는 경우도 있고, 명확성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법률안도 있다.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사항을 규율하고자 하는 법률안도 있다. ‘법률도구주의’와 ‘법률만능주의’적인 사고가 지배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여러 문제점에도 의정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공감한다. 그간에 시행된 정량적 의정 평가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좋은 법률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시사저널과 한국입법학회는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입법 기능에 대한 정성적 평가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국회의원이 ‘많은 법률’을 만드는 것보다는 ‘좋은 법률’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값지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싶었다. 앞으로 법률안을 만들 때 신중함과 책임감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랐다.

19대 1년 차 통과 법률 420여 건 대상 평가

2012년 5월 말에 개원한 제19대 국회에서 2013년 12월까지 제출된 법률안은 8200건에 이른다. 국회에서 이 많은 법률안을 심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이렇게 많은 법률안에 대해 우열과 옥석을 가리는 의정 평가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입법학회에서는 교수와 변호사를 중심으로 의정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 대상을 한정하고 평가 기준을 만들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면서도 전문성이 강한 의정 평가를 위해 수차례의 세미나와 평가 회의를 거친 후 제19대 국회 1년간 통과된 법률 420여 건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의정 평가가 편파적이거나 전문적이지 못하면 중립성과 신뢰성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문제점을 보완한, 좀 더 개선되고 신뢰를 주는 의정 평가를 하기 위해 고민했다. 이러한 결과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에 대한 질적·내용적 평가를 마치고 우수 법률 10개와 이러한 법률의 입법을 주도한 5명의 국회의원에게 대한민국 입법대상을 시상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 국회도 산업화 입법의 시기와 민주화 입법의 시기를 지나 선진화 입법의 시기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국회는 법률안의 입안이나 심의·의결에서 과거보다 더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의정 활동에 대한 정성 평가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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