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보다 못할 게 뭐 있노?”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12.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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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한국에선 ‘저평가주’…비명문 구단 소속 등 요인

‘추추 트레인’ 추신수의 종착역이 결정됐다. 텍사스 레인저스다. 2013년 12월22일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추신수와 텍사스가 계약에 합의했다. 추신수가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3000만원)를 받는 조건으로 텍사스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1억3000만 달러는 2002년 박찬호가 텍사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보유하고 있던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고 몸값을 크게 웃도는 엄청난 금액이다.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를 살펴도 역대 27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계약이자 외야수로는 역대 여섯 번째로 높은 몸값이다. 명실공히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선수임이 증명됐다.

“이제는 국내 야구팬도 추신수가 얼마나 톱스타인지 알게 됐을 겁니다.” 추신수의 대형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그동안 “추신수가 국내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었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가운데 추신수처럼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 선수도 드물다. 일본인 메이저리거와 비교해도 스즈키 이치로(양키스)를 제외하면 추신수를 능가하는 일본인 타자가 없다. 그런데도 고국인 한국에선 추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모르는 야구팬이 많다. 되레 메이저리그 루키인 류현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이번 초대형 계약으로 추신수가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연합뉴스
미국에선 추신수가 한국 대표 메이저리거

사실이다. 한국에선 추신수보다 류현진이 한 수 위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선 추신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특급 선수다. 2013년 9월 기자는 미국 LA·뉴욕·시카고·신시내티를 돌며 메이저리그 현장을 취재했다. 현지에서 만난 메이저리그 담당 기자들은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가운데 투수는 박찬호와 김병현, 야수는 추신수 정도만 떠올려진다”며 “이 가운데 빅리그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추신수”라고 평했다.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추신수는 200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94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9리, 14홈런, 66타점을 기록하며 일약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009년엔 첫 풀타임 출전을 소화하며 타율 3할, 20홈런, 86타점, 21도루를 거뒀다. 특히나 그해 그가 수립한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은 아시아 메이저리거로는 최초의 기록이라 의미가 깊었다.

2010년엔 더 화려했다. 타율 3할과 22홈런, 22도루로 2년 연속 3할대 타격과 ‘20-20 클럽 가입’을 동시에 해냈다. 타점도 90개로 4개나 늘어났다. 추신수는 2011, 2012년 부상과 음주 운전 사건 여파로 다소 주춤했지만, 2013시즌 타율 2할8푼5리, 21홈런, 20도루, 52타점으로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돌아왔다. “아시아 메이저리거는 투수를 제외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빅리그의 편견을 여지없이 깬 쾌거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호타준족임에도 추신수의 국내 인지도가 ‘빅리그 루키’ 류현진보다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허구연 위원은 익숙함을 꼽았다. “류현진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었다. 국내 야구팬은 류현진이 대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거기다 류현진은 각종 국제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해 맹활약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추신수는 2001년 부산고 졸업 후 곧바로 미국으로 떠나며 국내 야구팬의 눈에서 멀어졌다. 2007년까지 주로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통에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2009년 이후 빅리그에서 맹활약했지만, 2013년까지 한국 프로야구가 국내 야구 인기를 주도하면서 아쉽게도 추신수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추신수가 국내에서 덜 주목된 이유

두 번째는 소속팀이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국외파 선수의 지명도와 인기를 좌우하는 요소로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느 팀에서 뛰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현진의 소속팀 LA 다저스는 1990년대 박찬호가 뛰며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서 ‘국민 구단’으로 불렸다. 게다가 다저스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팀이자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LA가 연고지다. 추신수의 소속팀이던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는 반대였다. 세 팀은 공교롭게도 미국 내에서 다저스보다 전국적 지명도가 떨어지는 스몰마켓 팀이었다. 무엇보다 세 팀의 연고지엔 LA·뉴욕처럼 교민이 많이 살지 않았다. 따라서 추신수는 팀과 연고지 후광 효과를 전혀 누릴 수 없었다.”

정확한 지적이다. 한국 야구팬은 국외파 선수의 실적만큼이나 ‘구단이 어디냐’는 이른바 간판에 집중한다. 대표적인 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이승엽과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뛴 이대호다.

일본에서의 두 선수 기록을 비교한다면 이대호가 앞설지 모른다. 이대호는 2012년 일본 프로야구 데뷔 첫해 타점왕에 오르며 한국 프로 출신 선수론 처음으로 개인 타이틀 수상자가 됐다. 2013 시즌에도 타율 3할3리, 24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 반면 이승엽은 일본에서 8시즌을 뛰는 동안 159홈런, 439타점을 기록했으나 개인 타이틀을 수상하지 못했다. 20홈런 이상을 넘긴 시즌도 3번으로,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한 시즌은 단 한 번이었다.

그럼에도 이대호가 이승엽의 요미우리 시절과 비교해 덜 주목받은 건 그의 소속팀이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비인기팀 오릭스였던 탓이 컸다. 한 방송사 PD는 “만약 이대호가 일본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에서 뛰었다면 2013 시즌 류현진만큼의 인기와 관심을 끌었을 게 분명하다”며 “한국 스포츠팬은 이상하리만치 ‘명문 구단’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귀띔했다.

‘1억 달러 사나이’로 변신한 추신수는 2013년 12월30일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이전에도 추신수의 귀국길엔 취재진이 몰렸으나, 이번엔 평소보다 몇 배 많은 기자가 나와 치열한 취재 경쟁을 펼쳤다. 취재 열기만 뜨거워진 게 아니다. 그를 찾는 곳도 많아졌다. 추신수의 지인은 “한국에 올 때마다 (추)신수가 광고 1~2개씩은 찍고 갔으나 이번엔 최소 4~5개는 촬영하고 갈 것 같다”며 “텍사스와의 계약 소식이 알려진 후 10곳이 넘는 기업에서 ‘추신수 선수를 우리 회사 광고 모델로 모시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방송사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한 지상파 PD는 “텍사스와의 계약으로 추신수에 대한 시청자의 궁금증과 관심이 증폭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 말고도 여러 방송사에서 추신수를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추신수가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냐에 따라 새해 벽두부터 방송사의 희비가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 PD 역시 “한국 스포츠팬은 ‘몸값이 얼마냐’에 관심이 많다”며 “만약 추신수가 텍사스와 초대형 계약을 맺지 못했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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