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28 17: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18 광주’ 소재 소설 <소년이 온다> 펴낸 한강

한강 작가(44)가 신작 소설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출간한 지 한 주가 지나서야 들었다. 신간을 일반 독자보다 조금 일찍 만나온 터라 살짝 기분이 상했다. 기성 작가라면 신간이 나오면 으레 출판기념회나 기자간담회를 갖는다. ‘소설가 한강’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어떤 행사가 있었을 텐데…. 

한 작가가 누구인가. 그는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한 소설가다. 1994년 서울신문에 <붉은 닻>으로 등단했다. 등단 이후 꾸준히 작품을 써가고 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작품 중 <몽고반점>은 2005년 심사위원 7인 전원일치 평결을 받아 이상문학상에 선정됐다. 당시 이어령 교수는 문학평론가로서 이 작품에 대해 “기이한 소재와 특이한 인물 설정, 그리고 난(亂)한 이야기의 전개가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차원 높은 상징성과 뛰어난 작법으로 또 다른 소설 읽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 시사저널 우태윤
신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5·18)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이제는 너무 오래된 소재라 큰 반향을 기대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새 소설을 냈다는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띄우자 그 아래엔 ‘세월호 침몰 참사’ 속보로 연결하는 배너가 눈길을 끈다. 묘하게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와 세월호 참사 보도 사이의 34년이라는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34년이 흘렀어도 ‘5·18 광주’ 이야기는 계속돼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새 소설에 대한 반향이나 저자의 소감이 우선 궁금했다. “오래 생각해온 소재지만 쓰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른 소설은 탈고 뒤에 성취감이나 후련함 같을 걸 느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쓸 때의 고통을 돌아보게 하면서 자꾸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념이나 정치적 사건 등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일에는 작가에게나 기자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민감한 사안이라며 기피할 수도 있다. 대박이 나올 소재가 아니라면 도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소년이 온다>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다만 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일 것인데, 이를 통해 한국 문학의 인간학적 깊이가 심화될 여지는 아직 많다.” 그는 또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가 함께 쓴 것 같은 문장은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했다.

억울한 영혼들의 말 대신 전하는 ‘오월의 노래’

5·18에 대한 소설이 나올 때마다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도 문학평론가에게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게 독자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작가는 왜 이 소설을 꼭꼭 숨겨오다 이제야 내놓았을까. 한 작가는 “내가 열한 살 때인가, 아버지가 가져온 처참한 현장 사진을 보았다. 아버지가 숨겨두고 지인에게만 보이던 것인데, 어린 내가 호기심에 몰래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가 태어난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을 쓰는 일은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것과 정말 다른 일이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열다섯 어린 소년은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 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 용서하지 않을 거다. (…)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가 겪은 5·18 전후 삶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이 드러난다.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스러운 고통이 되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소설은 이러한 국가의 무자비함을 날것 그대로 그려내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말은 지금 현실을 반영한 직언으로도 들린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됐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