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전자책 다 삼킨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4.11.1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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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 진출…대비책 없어 안방 내줄 판

아마존이 2014년 9월에 한국 담당자 공모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한국 출판 시장 진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아마존의 한국 시장 진출은 부진한 한국의 전자책 시장을 성장시켜줄 계기가 되겠지만, 한국 시장을 아마존에 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자아내게 한다.

아마존은 2014년 7월에 월 10달러만 내면 수십만 권의 전자책을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무제한 구독 서비스인 ‘킨들 언리미티드’를 내놓는 등 전자책 서비스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를 바탕으로 아마존은 세계 전자책 시장의 65%를 장악했다. 또 유럽에서 가장 활성화된 독일 시장에 진출해 점유율 43%로 1위를 달리고 있다. 2012년 진출한 일본에서도 불과 2년 만에 선두인 라쿠텐을 제치고 38%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은 비슷한 문화를 가진 한국 시장에서도 안착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아마존이 한국 전자책 시장 진출을 선언하자 한국 전자책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반면 아마존을 맞이하는 한국의 출판업계는 응전 준비는 고사하고 진영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다. 한국의 전체 출판 시장은 5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중 전자책 시장은 3~5%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의 전자책 진출은 세계에서 가장 발 빠른 편에 속한다. 아마존보다도 빨랐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전자책이 등장하다가 북토피아를 계기로 전자책 시장이 본격 열리는 듯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북토피아는 한국출판인회의라는 기존 조직을 바탕으로 1999년 120개 출판사가 공동 출자해 만든 전자책업체다. 출판업계는 북토피아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찾고 출판 시장의 미래를 견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북토피아는 처음 내건 거창한 목표와 달리 업계에 상처만 남기고 침몰했다. 진심으로 전자책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당시 불던 코스닥 열풍에 뛰어들어 큰돈을 만질 생각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자책 시장의 내실 강화보다는 주식에만 신경 썼다. 결국 북토피아는 경영권 분쟁과 도덕적 해이로 출판사 미지급 저작권료 60억원과 100억원의 부채만 남기고 침몰했다.

북토피아가 무너지자 한국출판인회의는 2010년 다시 한번 60여 개 출판사를 주축으로 180여 곳이 참여한 KPC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미 북토피아의 실패를 경험한 학습효과 탓에 KPC는 큰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북토피아의 실패를 이유로 한국 전자책 시장의 주도권은 출판사가 아닌 유통업체로 넘어갔다. 현재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교보문고·YES24 등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그러나 서점들 역시 자기 밥그릇을 뺏길까 우려해 따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전자책 시장에서 보여준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교보문고가 30만 종, 예스24가 15만 종, 인터파크가 14만 종의 전자책을 서비스하고 있으나 호환성·편리성·가격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마존 진출 단기적으론 호재

서울경제신문과 인터파크도서가 조사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전자책에 대한 불만으로 독서 피로감(24%), 볼 만한 전자책이 없음(22%), 이용절차의 번거로움 (15%), 비싼 가격(12%) 등을 들었다. 현재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 가격의 70% 수준에 형성되고 있는데 응답자의 89%가 지금보다 싸져야 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 절반이 바라는 전자책의 적정 가격은 종이책의 50% 이하였다. 읽고 싶은 책이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응답도 71%나 됐다. 한국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도 인기 신간을 비롯한 다양한 책의 공급과 가격 인하 및 편리하면서도 가격이 싼 정액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소비자가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곳이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다양한 책을 공급하면서 편리하고 가격이 싼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보여준 정책의 신뢰성도 확인된 상태다. 때문에 아마존이 내년 한국 전자책 시장에 진출한다면 한국의 출판사 및 저자들도 아마존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아마존은 한국 시장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얻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아마존이 성공하게 되면 한국 출판계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출판계는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와의 종이책 콘텐츠 계약도 이런 출판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는 2011년부터 지식백과 서비스에 맞는 디지타이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1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네이버는 출판사의 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뽑아 재가공해 백과사전 형태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출판사에는 1권당 1000만원에 10년의 사용권 계약을 제안한다. 10권을 계약하면 1억원의 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세한 출판사로서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고 벌써 300여 곳이 계약을 한 상태다. 이처럼 눈앞의 달콤함에 현혹돼 한국 출판계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출판계의 현실이다.

출판계의 진짜 위기는 아마존의 전자책 시장 진출이 아니다. 전자책 활성화는 단기적으로 출판계에 호재다. 진짜 위기는 그 뒤에 올 것이다. 출판업계는 아마존의 한국 시장 진출 3년 후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전자책은 저자 개인이 유통사인 아마존, 애플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와 직접 출판 발행 계약을 하는 형태로 발전될 것이고 이 경우 출판사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어질 것이다.

또한 모바일 시대의 도래로 언제 어디서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기게 되면서 독서 인구 자체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독서 인구도 장편의 책을 읽는 독자는 빠른 속도로 감소할 것이고 50쪽 이내의 짧은 책을 읽는 독자로 전환될 것이다. 아마존은 이러한 독자 인구의 변화에 맞춰 싱글북이라는 짧은 분량의 책을 출판하고 미래의 주력 상품으로 키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11월11일 패스트북(fastbook)이라는 브랜드로 50쪽 이내의 짧은 책만을 스마트폰 앱으로 발행해 새로운 출판 시장을 두드리는 시도가 생기고 있다. 비비스타라는 섹시화보집도 스마트폰 앱으로 등장하는 등 모바일 시대에 맞춘 새로운 출판이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결국 한국 출판업계는 저자 직접 발행, 독서 인구 감소, 장편 독자의 감소 등 장기적인 변화에 대비할 때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출판사 중심의 전자책 시장으로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전자책의 경우 이펍(ePub)이라는 세계표준이 존재하는데,  2011년 발표된 3.0판부터는 동영상이나 음성파일도 포함할 수 있도록 개선되면서 멀티미디어 전자책 발행이 가능해졌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기능도 강화됐다. 따라서 이펍을 출판업계가 표준으로 밀면서 이펍을 기반으로 저자 및 출판사와의 부가 상품과 연계시키는 전략으로 출판업계를 유도하는 것이 한국 출판사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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