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88만원 세대’도 ‘미생’도 없었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1.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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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토토가’ 큰 인기…1990년대 대중문화 부활

 


1990
●1월 첫 정식 라이선스 일본 만화 <드래곤볼> 인기 폭발
● 2월 민자당 창당(3당 합당)
● 10월 <슬램덩크> 연재 시작
● 10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MBC), 평균 시청률 44.3%
● 10월 가수 김민우, <입영 열차 안에서> 가요TOP10 골든컵 수상 후 실제 입대
● 11월 가수 김현식 사망, 사후에 <내사랑 내곁에> 200만장 판매
● 11월 홍콩 영화 <도성> 개봉, 주성치 시대 개막
● 12월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연간 베스트셀러 등극

 

1991
● 4월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가요 TOP10 골든컵
●v 7월 코텔, 하이텔로 서비스명 변경
● 11월 노동부, 1992년부터 총액임금제·시간제근로제 도입
● 12월 SBS 개국


1992
●  홍대 앞 댄스클럽 <발전소> 개관
● 3월 경찰청 ‘노래방 설치 및 운영 기준’ 입법 예고, 노래방 확산
● 6월 드라마 <질투>(MBC) 방영,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 최고 시청률 56.1%
● 7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가요 TOP10 골든컵, 서태지 신드롬 ?
● 7월 영화 <결혼 이야기> 53만명 동원(92년 흥행 1위)
● 11월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KBS) 방송, 최고 시청률 42.8% 기록


1993
●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 4월 영화 <서편제> 104만명 동원(흥행 1위)
● 8월 대전엑스포 개막, 금융 실명제 실시
● 10월 서해훼리호 침몰
● 12월 ‘신세대 전용 화장품’ 트윈엑스 광고 등장, 엑스 세대 마케팅 본격화 ?


1994
● 홍대 앞 록카페 <드럭> 개관
● 1월 015B의 <신인류의 사랑> 가요 TOP10 골든컵
● 6월 드마라 <사랑을 그대 품안에>(MBC) 열풍,
   재벌남과 가난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한국형 로코의 원조
● 4월 밴드 ‘너배너’의 리더 커트 코베인 자살
● 7월 김일성 사망
● 10월 성수대교 붕괴
● 10월 나우누리 서비스 시작, <엽기적인 그녀>가 나우누리 게시판(1999) 출신
● 11월 김영삼 대통령 ‘시드니 세계화 선언’
● 12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1995
● 홍대 앞 테크노바 ‘상수도’ ‘MI’ ‘흐지부지’ 등장
● 1월 쓰레기 종량제 실시, 세계화 추진 위원회 출범 ?
● 1월 <모래시계>(SBS) 방영
● 3월 직할시를 광역시로 개칭
● 3월 Mnet, KMTV 개국
● 4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가요 TOP10 골든컵
● 5월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가요 TOP10 골든컵
● 6월 삼풍백화점 붕괴
● 6월 만화 <드래곤볼> 연재 종료, 국내 판매 부수만 2000만부 이상
● 7월 고용보험제 실시
● 8월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
● 8월 가수 김광석 소극장 공연 1000회 달성 ?
● 9월 <중경삼림> 국내 개봉, 왕가위 신드롬 ?

 

1996
● 1월 김광석 사망, 자살 논란
● 8월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가요TOP10 골든컵
● 9월 드라마 <첫사랑>(KBS) 방영, 역대 최고 시청률 65.8% 기록
● 10월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2회 공연에 10만명 운집, 문화 충격

 

1997
● 1월 한보그룹 부도
● 7월 영화 <접속> 67만명 동원(흥행 1위)
● 8월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
● 12월1일 IMF 한국에 550억 달러 긴급 지원

 

1998
●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
● 3월 스타크래프트1 발매, PC방 확산,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본격화 ?
● 3월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SBS) 방영 시작
● 4월 CGV 1호점 개관, 멀티플렉스 시대 개막 ?
● 6월 정주영 현대 창업주 소떼 방북
● 7월 딴지일보 등장
● 8월 크라잉넛의 1집 <말달리자> 발매
● 10월 일본 대중문화 1차 개방


1999
● 2월 영화 <쉬리> 244만명 동원
● 5월 유승준의 <열정> 가요TOP10 6주 연속 1위
● 7월 스타벅스 1호 매장 등장

 

 


연초에 방영된 TV 예능쇼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특집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회사원 김영준씨(41)는 “TV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나와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청춘을 통과한 3040세대의 대체적인 반응 역시 김영준씨와 같다. 시청률은 20%가 넘게 나왔다.

이런 현상에 대한 1차적인 반응과 분석은 ‘복고’다. 사람들은 대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자본과 욕망의 논리가 가장 치열하게 맞붙는 괴로운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과거를 되짚을 땐 너그러워진다.     

시작은 2012년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돼 그 시절의 첫사랑을 소환해내면서 4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어 케이블 채널 tvN의 <응답하라 1997>(2012년), <응답하라 1994>(2013년)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억의 소환 장치로 쓰인 것은 그 시절의 노래였다. <건축학개론>에는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있었고,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숫제 드라마에 1990년대의 히트곡이 수십 곡씩 삽입됐다. 이를 회차별로 정리한 표가 인터넷에 따로 나돌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음악에 대한 이런 호응에 힘입어 당시 인기 가수들을 중심으로 ‘청춘나이트’라는 이름의 콘서트가 기획되기까지 했다. 김건모·쿨·클론(구준엽)·코요테 등 당시 인기 가수들은 최근까지 ‘청춘나이트’ 쇼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TV 쇼 ‘토토가’는 최근 몇 년 사이의 1990년대 복고 트렌드의 완결판인 셈이다. 1990년대의 히트곡들은 당시를 연도별로, 월별로 기억하는 좌표이자 1990년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해 10월 가수 신해철이 사망하자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 미디어(SNS)를 뒤덮은 반응과 맥을 같이한다. 1990년대의 아이콘 중 하나인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사망하자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에는 애도의 물결이 넘쳐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가장 큰 공통 주제 게시물로 꼽힐 정도였다.

<건축학 개론> <응답하라>가 1990년대 ‘소환’

이는 신해철의 음악을 즐겼던 이들 대부분이 3040세대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SNS를 통해 활발히 자신의 발언을 남기는 계층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토토가’에 대한 반응도 인터넷에서 뜨거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현상에 대해 소비권력의 교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브랜드 컨설턴트는 “3040세대의 구매력이 라이프사이클상 지금 절정기에 올라 있다. 그만큼 그들의 취향이나 소비 속성에 대해 상품 기획자든 문화 기획자든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대중문화에서 ‘회고’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는 것은 1970년대나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를 위한 추억이었다. 쎄시봉 열풍이나 미사리 카페촌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미사리 카페촌도 예전보다 수가 줄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신 3040을 위한 이런 상품이 대중 매체에서 대박을 치고 있다. 서상미 한길사 편집부 차장은 “3040이 소비 주체가 된 게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요즘 것은 하찮고 예전 것은 묵직하고 좋은 느낌이랄까,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기에 현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3040의 1990년대 열광에는 그런 보상 심리가 깔려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스타크래프트1, 크라잉넛
3040이 소비 주체 되며 현재 문화 이끌어

1990년대는 지금과 달랐을까. 자유와 공정이 온 세상에 넘쳐나고, 취업난에 허덕이는 ‘미생’도 없고, ‘구조조정’도 없고, 창의력이 넘쳐나고, 음악에는 표절도 없고, 가수들의 실력은 짱이었을까.

대중문화에서 보자면 1990년대는 20세기 초 이후 일본에 대고 있던 문화의 젖줄을 서구 직수입으로 바꿔나가던 시기다. 엑스재팬의 팬이었던 서태지가 미국식 랩과 힙합을 섞은 <난 알아요>(1992년)로 한국 가요를 K팝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킨 것은 상징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 문공부의 관급 외화 수입 쿼터에 기대 살던 한국 영화계가 젊은 영화 기획자의 등장으로 <결혼 이야기> <접속> 등 새로운 상업영화 흐름을 만들어내며 자생력을 쌓아갔다. 최초의 한류 드라마로 꼽히는 <별은 내 가슴에>(1997년)가 등장했는가 하면 SM엔터테인먼트가 H.O.T(1996년)라는 ‘기획 상품’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켜 2000년대의 한류를 예고했다.

하지만 걱정 없는 시대는 아니었다. 88 서울올림픽과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팽배하고 1997년 국가 부도라는 전대미문의 난관에 봉착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팽창 시대와 갑작스러운 종말이 공존하던 시기인 셈이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1996년 8월 대기업인 선경인더스트리가 전체 직원의 30%인 900여 명을 당시 이름도 생소했던 ‘명예퇴직’을 시킨 것은 신호탄이었다. 이어 1997년 초부터 한보그룹 부도, 해태그룹 부도, 기아자동차 부도 등 ‘대마불사’ 신화가 깨지고 외환위기가 닥쳤다.

‘양극화’ ‘고용 불안’은 낙관적이기만 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이 두 단어가 일상이 됐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3저 호황의 끝물을 누린 1990년대는 풍요와 자유의 시대였다. 1990년대에 등장한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로 무장한 X세대는 그 산물이다. 그때는 88만원 세대나 미생이 없었다. 그게 199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동력이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20대에게도 그 시절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199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힘은 물질적 풍요만은 아니다. 노정태 문화평론가의 말이다. “3040세대가 1020세대였을 때 그들 세대의 스타가 과거의 스타를 쫓아냈다. 서태지가 국내에서 못 듣던 음악을 들여오자 신세대는 열광했고 기성세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들여올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싸이가 유튜브에서 1등을 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의 스타가 기존의 스타를 물리치고 올라오는 현상이 없어졌다. 1990년대의 1020 스타인 서태지나 신해철은 전체 판도를 뒤흔들었다. 지금 1020 스타인 엑소가 티켓 파워는 있지만 1990년대의 1020 스타처럼 판을 흔드는 임팩트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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