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5.01.28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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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이장희·송창식·윤형주 배출한 음악감상실 배경 영화 <쎄시봉>

새해 벽두부터 복고 바람이 거세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불러온 1990년대 가요 열풍이 채 가라앉기 전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당시 유행했던 가요가 흘러나온다.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 순위는 세월을 거슬러 달리기 시작했다. 달력은 2015년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데 사람들의 감성시계는 1990년대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다. 극장가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넘어선 <국제시장>을 비롯해 중국 문화혁명 시기를 그린 원작을 1950년대 한국으로 바꿔 만든 <허삼관>, 1970년대 ‘남서울 개발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영동 지역 땅 투기 현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강남 1970>이 나란히 걸려 있다.

또 한 편의 영화 <쎄시봉>이 2월 초 개봉을 기다린다. 1960년대 후반 서울 무교동을 주름잡으며 조영남·이장희·윤형주·송창식 등 쟁쟁한 포크 가수를 배출했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단순히 그 시절, 그 공간의 풍경만을 복기하는 작품은 아니다. 이 영화는 윤형주와 송창식이 팀을 이룬 전설의 듀오 ‘트윈폴리오’에 제3의 인물이 있었다는 설정을 내세운다. 여기에 20대 청춘의 풋풋한 사랑과 그 시절의 낭만, 감성적인 음악을 버무렸다. 복고 코드에 감성을 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영화가 탄생했다. 마치 1970년대 버전 <건축학개론>(2012년) 같다고 할까. 주인공들이 어떤 사연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후 2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트윈폴리오의 제3 멤버 오근태(정우)와 그의 첫사랑 자영(한효주).ⓒ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많던 청춘은, 사랑은 어디로 갔는가

<쎄시봉>은 무교동 최고의 핫플레이스 쎄시봉에서 ‘마성의 미성’ 윤형주(강하늘)와 ‘타고난 천재’ 송창식(조복래)의 불꽃 튀는 첫 만남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쎄시봉 김 사장(권해효)은 이들의 가수 데뷔를 위해 트리오 팀 구성을 제안하고, 이장희(진구)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오근태(정우)를 추천한다. 윤형주와 송창식의 목소리 사이에서 튀지 않고 깔릴 중저음의 베이스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오근태가 기타 코드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통영 촌놈’이라는 것.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팀이 와해되기 직전, 이들은 쎄시봉에 나타난 미모의 여인 민자영(한효주)에게 반해 팀을 유지하기로 한다. 첫눈에 자영에게 반한 근태의 결심은 남다르다. 오직 자영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 영화의 탄생 배경을 얘기하기 위해선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폐지된 MBC 토크쇼 <놀러와>는 추석 특집으로 ‘쎄시봉 콘서트’ 1·2부를 마련했다. 조영남·송창식·윤형주·김세환이 출연해 당시의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줬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특집에 힘입어 조영남을 제외한 세 명은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라는 전국 투어도 진행했다.

김현석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 역시 이 즈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1960년대 포크 음악을 즐겨 들었던 김현석 감독은 ‘놀러와-쎄시봉 콘서트’를 보고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그 시절 청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스무 살 무렵의 어설프지만 풋풋한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테니 말이다.” 김현석 감독의 말이다. 트윈폴리오에 제3의 인물이 존재했던 건 사실이다. 1968년 윤형주와 송창식 그리고 이익근이 만들었던 트리오는 이익근의 입대로 자연스럽게 듀엣이 됐다. 여기에는 별다른 사연이 없었지만 김현석 감독이 허구의 인물 오근태를 내세워 그의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그들의 노래와 엮어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트윈폴리오 이전에 쎄시봉 트리오가 있었다는 데서 출발한 영화 .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통제와 규제 뚫고 피어나던 청춘의 낭만 

극 중 정우가 연기한 오근태는 김현석 감독의 전작 <광식이 동생 광태>(2005년)의 광식(김주혁), <시라노: 연애조작단>

(2010년)의 병훈(엄태웅)과 꼭 닮아 있다. 사랑 앞에 한없이 소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열어 바치는 순하고 착한 남자. 여기엔 수줍은 남자의 속 깊은 순정이 있다. 근태는 “넌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는데?”라고 당돌하게 묻는 자영을 향해 “평생 널 위해 노래할게”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자영과 손잡고 걷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하고, 첫 키스 다음 날 자면서도 웃음 짓고, 그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약속하는 것을 본 순간 세상 모두를 잃은 듯 우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첫사랑이라는 아련한 기억을 맞춤하게 불러낸다.

여기에 이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감성적 울림을 주는 음악을 얹는다. 쎄시봉 멤버의 주옥같은 노래는 영화의 스토리와 맞물리며 적재적소에 활용된다. 해변에 둘러앉아서 <조개껍질 묶어>를 부르고, 자영에게 딱지를 맞는 남자들의 모습을 <담배 가게 아가씨>로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조영남이 톰 존스의 노래를 번안해 부른 <딜라일라>, 쎄시봉 트리오가 처음으로 화음을 맞추며 연습하는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늦은 밤 자영을 위해 근태가 열창하는 <그건 너> 등 수많은 명곡이 스크린 위를 수놓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곡은 <웨딩 케이크>다. 김현석 감독은 큰 뼈대로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이크>를 놓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경쾌한 멜로디에 이별하는 사람의 슬픈 심경이 담긴 가사를 붙인 곡이다. 각색 과정에서 강조된 곡은 이장희가 작곡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다. 김현석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쎄시봉>은 <웨딩 케이크>로 시작해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로 완성된 영화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쎄시봉>은 20년 후 우연히 다시 만난 40대 근태(김윤석)와 자영(김희애)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영화의 주제를 완성한다. 그러면서 청춘에 대한 그리움을 충실하게 불러낸다. 기성세대의 정서만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 통기타를 치며 노래했던 7080세대는 당연할 것이고, 요즘 젊은 세대 역시 감히 누리지 못한 어떤 시절이기에 그 풍경이 그립다. 대학교가 취업사관학교처럼 변해버린 이 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미니스커트 단속과 통행금지가 있었던 그 시절에서 낭만을 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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