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의 울분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5.01.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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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은 아침 일찍 승용차를 몰고 회사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셀프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습니다. 리터당 휘발유 가격은 1520원. 주유기를 차에 꽂고는 속으로 투덜거립니다. “국제 유가가 반 토막 났다는데 기름값은 왜 이리 더디게 내리는 거야.” 김 부장이 넣은 기름값 중 세금이 리터당 900원에 달합니다. 나머지에 정유사 제조 원가, 주유소 유통 마진이 붙어 있습니다. 세금 폭이 커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우리나라에선 찔끔찔끔 내려가는 겁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김 부장은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갑니다. 아내가 “담뱃값 올랐는데 당장 끊어라”고 타박하는 터라 직장에서만 피웁니다. 만원을 주고 담배 두 갑과 거스름돈 천원을 받고 나니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작년 같으면 만원짜리를 내면 담배 4갑을 샀는데 이게 뭐람….” 이 또한 세금이 죄인입니다. 담뱃값 4500원에 붙는 세금은 3318원으로 그 비중이 73.7%에 달합니다. 흡연실에서 자판기 커피와 함께 담배를 피워 문 김 부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연기를 뿜어냅니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와보니 책상 위에 연말정산 서류가 놓여 있습니다. 언론에선 연일 ‘13월의 세금 폭탄’이라고 하는데 자신은 어떨지 걱정이 앞섭니다. 김 부장은 지난해 30만원을 환급받아 요긴하게 썼습니다. 담당 직원의 계산에 따르면 올해는 환급은커녕 4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고 합니다. ‘13월의 보너스’가 나오면 딸 컴퓨터를 바꿔주려던 꿈은 물거품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는 1000만명이 넘습니다. 요즘 이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조세저항이 우려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들에게 소득공제니, 세액공제니 하는 어려운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 부자나 기업들은 봐주고 유리지갑만 털어가느냐는 겁니다. 정부가 증세는 없다고 해놓고 ‘꼼수 증세’를 하느냐는 겁니다. 지난해 국가 세수입(1~10월 누적)을 보면 전년 대비 소득세는 3조9000억원 늘었습니다. 반면 법인세는 7000억원 줄었습니다. 정부는 경기 부진으로 법인세가 줄었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소득세에 집중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습니다. 정부는 세율 인상과 세목 증설이 없었으니 증세가 아니라고 우깁니다. 내는 사람 입장에서 세금이 늘어나면 증세인 것이지, 변명이 구차합니다. 

민심 이반에 다급해진 새누리당과 정부는 연말정산을 손보겠다고 합니다. 법을 소급 적용해 세금을 돌

려주겠다고 하는데 면피용에 불과할 뿐입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나라 살림살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능하고 갈팡질팡해서야 누가 정부를 믿고 세금을 낼지 암울합니다. 세금은 공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항에 부닥치게 됩니다. 동학 농민전쟁도 과도한 농민 수탈이 원인이었고, 로마 비잔티움 제국도 이로 인해 망했습니다. 과거 박근혜정부 경제수석이란 이는 “세금을 걷는다는 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뽑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거위들이 고통스러워 난리입니다. 시중에 가렴주구(苛斂誅求·가혹하게 세금을 걷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란 말이 유행입니다. 국가의 과세권이 형평을 잃으면 권력의 정당성도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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