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수령, 계급장 놀이 즐기나
  • 이영종│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
  • 승인 2015.03.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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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와 황병서, 2인자 놓고 엎치락뒤치락…롤러코스터 북한 권력 서열

북한 권력 상층부가 또 요동치고 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핵심 요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축출되는 등 큰 변동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로동신문은 지난 3월9일 보도에서 최룡해를 ‘노동당 정치국 위원 겸 당 비서’로 불렀다. 당 정치국은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당 규약 25조)하는 기구로 당 국가인 북한에선 최고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상무위원회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를 굳혀온 최룡해 등 3명이 멤버인 정치국 내 핵심 자리다.

‘농구광’ 김정은, 수시로 투입했다 빼는 식

최룡해의 자리 이동과 함께 누가 대신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했고, 다른 주요 포스트의 변동은 없었는지가 관심거리다. 지난 2월1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주목받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회의 열흘 뒤 김정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방문을 보도하면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최룡해보다 앞서 호명하는 등 그동안 이상 징후는 감지돼왔다는 게 대북 정보 당국 관계자의 귀띔이다. 노동당은 지난해 4월8일 개최된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군 총정치국장을 최룡해에서 황병서로 바꿨다. 또 우리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을 장정남에서 현영철로 교체했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아직 이번 회의의 결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곧 관영 매체를 통해 호칭 변화를 속속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10월30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투기 비행훈련 참관을 최룡해(오른쪽 세 번째)와 황병서(맨 오른쪽)가 수행했다. ⓒ 조선중앙통신
최룡해의 당내 직책 강등에서 볼 수 있듯 김정은 체제 들어 핵심 요직에 대한 인사가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수행횟수를 기준으로 볼 때, 집권 첫해인 2012년에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106회)이 최고 실세였다면, 이듬해인 2013년에는 최룡해 당시 총정치국장(153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126회)이 가장 많이 김정은과 공개 활동을 함께했다. 2인자 자리를 해마다 바꾸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들 3명에게도 북한군 계급이 부여돼 있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 노동당에서 일해온 인물들이다. 특히 장성택 숙청 이후 황병서와 최룡해는 좀 심하게 표현해서 자고 나면 권력의 서열이 바뀌어 있을 정도로 수시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군 고위 간부들의 경우 김정은 시대 들어 더욱 극심한 변동을 겪고 있다. 장성급 인사들의 계급과 보직이 수시로 바뀌는 건 우리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별이 세 개에서 한 개로 떨어지기도 한다. 북한군 장성은 별 하나인 소장을 시작으로 중장-상장-대장 계급 체계를 갖고 있다. 그 위로 차수-원수(김정은)-대원수(김일성·김정일) 등의 계급이 있다.

군부 계급 강등의 경우 가장 최근 사례는 박정천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이다. 상장에서 소장으로 지난 2월 2계급 강등된 경우다. 김정은의 어린 시절 농구 코치 역할을 했다는 최부일 인민보안부장도 지난해 12월 상장에서 소장으로 2계급 강등됐다. 국정원은 최부일의 강등이 지난해 5월 인민보안부가 건설한 평양 고층 아파트 붕괴 사고 때문인 것으로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은 잦은 교체로 특히 부침이 심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2012년 7월 총참모장으로 이동하며 차수로 승진했으나, 3개월 만에 대장으로 강등됐다. 이듬해 5월엔 해임됐고,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으로 복귀하는 등 굴곡을 겪었다. 김정일 집권 시기, 인민무력부장인 김일철과 김영춘이 각각 9년과 3년간 장기 재임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군부 고위 인사를 중심으로 핵심 간부층이 임명과 보직 해임, 벼락 진급과 강등을 되풀이하는 걸 두고 김정은의 용인술과 관련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농구를 좋아하는 김정은이 선수들을 수시로 투입했다 빼곤 하는 인사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군부 장악 행보가 거친 걸 두고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콤플렉스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발탁 인사와 징벌성 좌천으로 장악력을 키워가기 위한 포석이란 풀이도 나온다. 후계자 시절 자신이 눈여겨봐둔 신진 인사를 기용하면서 기존 인물을 퇴진시키는 물갈이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설계사 출신인 마원춘을 집권 직후부터 대표적인 건축·건설 사업 총책임자로 기용하고 국방위 설계국장이란 직함과 군 계급까지 부여한 게 그것을 잘 드러낸다. 물론 마원춘의 경우도 비리 책임을 물어 지난해 11월 숙청함으로써 ‘영원한 실세는 없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북한 권력 내부의 자리 다툼이 어우러진 결과란 해석도 있다. 특히 노동당과 군부의 알력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최룡해의 강등은 조연준 제1부부장을 비롯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끈질긴 요구가 반영된 것이란 말도 나온다. 군 경험이 없는데도 군부를 컨트롤하는 핵심 자리인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점과 아버지(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후광을 업고 있다는 측면에서 최룡해는 조직지도부에 눈엣가시였다는 것이다. 최룡해가 지난해 4월 총정치국장 자리를 황병서에게 내준 것 또한 이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군부의 계급 강등이 잦은 걸 두고서는 중국군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계급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중국 군부의 문화에 자연스레 젖어든 것이란 풀이다. 1955년 처음 계급제를 도입했다가 10년 만에 폐지하고, 1988년 다시 부활시킨 중국군에선 아직 대장 계급도 없이 별 셋인 상장이 최고 계급이다.

김정은의 롤러코스터식 인사 스타일과 이를 통한 노동당·군부 장악 실험이 어디로 치달을지 주목된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초 군부 원로에게 특각(별장)과 벤츠 승용차 선물로 환심을 사고, 지지를 요청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은 최고사령관 직책 외에 국방위와 노동당 중앙군사위 등의 최고 직책도 갖고 있다. 집권 4년 차인 그의 권력 안정성을 평가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군부를 확고히 장악했다는 관측과 아직 불안하고 미숙한 수준이란 진단이 엇갈린다. 김정은이 당과 군부의 핵심 인사들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병영 국가 체제인 북한의 존속을 좌우할 아킬레스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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