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  ‘마약 야구’에 중독되다
  • 김경윤│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15.05.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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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은 끝…“이제 ‘마리한화’로 불러줘”

프로야구엔 시대별로 꼴찌의 아이콘이 있었다. 1980년대 삼미, 1990년대 쌍방울, 2000년대 롯데가 긴 시간 동안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0년대 꼴찌의 바통은 한화가 이어받았다. 한화는 2009년 이후 6년간 5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시기에 한화는 꼴찌 탈출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박찬호·류현진 선수, 김응용 감독 등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한화의 성적을 끌어올리려 했다. 구단은 200억원의 거금을 들여 정근우·이용규 등 걸출한 프리에이전트(FA) 선수들을 한 번에 잡기도 했고, 충남 서산에 최고급 시설의 2군 구장까지 지으면서 암흑기 탈출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순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2013년 개막전 이후 13연패를 기록하는 등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양산하며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한화는 마지막 개혁의 칼을 들었다. 기존 코치진을 모두 내보내고 김성근 감독을 모셔왔다. ‘성적 청부사’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한화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화는 정규 시즌 한 달을 소화했는데, 2008년 이후 최고의 스타트를 끊고 있다.

4월26일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SK 경기에서 3연승을 기록한 한화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성근 “하루살이처럼 경기 운용하겠다”

최근 6년간 한화의 패턴은 비슷했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과 실수를 연발하며 자멸했다. 그리고 반등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곤 했다. 실제로 한화는 2010년 이후 4년 연속 시즌 초반에 만성 부진에 시달렸다. 2010년 4월까지 9승18패(승률 0.333)를 기록했고 2011년에도 4월까지 6승16패1무(승률 0.273)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2년의 4월까지 성적은 5승12패(승률 0.294)로 역시 3할 승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3년(5승16패1무 승률 0.238)과 지난해(8승14패 승률 0.364)도 다르지 않았다. 한화 팬들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다.

올해 김성근 감독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2루수 정근우, 포수 조인성, 선발투수 이태양, 유격수 한상훈, 외야수 김태완 등 다수의 주전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전력이 급감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남은 선수들로 승부수를 걸었다. 버티기 작전 대신 남은 선수들을 총출동시키며 전력을 투입했다. 4월에 무너지면 올 시즌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개막전 이후 10경기에서 4승6패를 기록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리 좋은 성적도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은 4월10일 부산 사직 롯데전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작전을 바꿨다. 전력 투입을 넘어, 마치 포스트시즌을 치르듯 투수진을 운용하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당시 한화는 2-8로 뒤지던 8회에 1점, 9회에 5점을 기록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연장 11회 초 김태균의 홈런포로 드라마틱하게 분위기를 가져갔다. 하지만 한화는 11회 말 마지막 수비에서 상대팀 장성우에게 끝내기 투런 홈런을 허용해 재역전패를 당했다. 김성근 감독은 이 패배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김 감독은 장성우 타석에 앞서 51개의 공을 던진 권혁을 송은범으로 바꿨는데, 바뀐 투수 송은범이 실투를 해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다. 김성근 감독은 이 경기 직후 “깨달음을 얻었다. 철저히 하루살이 방법으로 경기를 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는 불펜투수들이 무리하더라도 확실하게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이날 이후 한화의 마운드 운용은 매우 불규칙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른바 ‘벌떼 야구’다. 5점 차 미만의 차이가 날 땐, 모든 승리 계투조가 총출동하는 등 전력이 투입된다. 특히 마무리투수 권혁의 역투는 안쓰러울 정도다. 권혁은 4월22일 잠실 LG전부터 26일 대전 SK전까지 5일 동안 3번 등판해 총 132개의 공을 던졌다. 불펜 투구까지 합하면 200개가 넘어간다. 안영명·유창식·송창식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전천후로 공을 던지고 있다. 어쨌든 김성근 감독의 강한 각성과 마운드의 결집으로 한화는 2008년 이후 6년 만에 4월 5할 승률을 기록했다.

한화는 5월에 본격적인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부상 선수들이 대거 합류해 전망은 밝다. 일단 정근우가 4월 하순 1군 엔트리에 포함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고 송광민도 28일 1군으로 올라왔다. 포수 조인성도 2군에서 충분히 출전 기회를 얻은 후 1군에 합류했다. 마무리 윤규진도 5월에 복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여러모로 든든한 지원군이 줄줄이 합류하는 분위기다. 매치업도 좋다. 한화는 4월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신생팀 kt와 맞붙지 않았다. kt는 최악의 전력난을 드러내며 1할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화는 5월에만 kt와 6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승수를 쌓는 데 적잖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재도약 노리는 한화, 5월에 승부 본다

선수단 운용의 폭이 넓어졌고 매치업도 좋아졌지만, 김성근 감독은 특유의 ‘만만디’ 모드로 차분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 감독은 최근 전화통화에서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팀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상 선수가 많았던 4월에 예상을 깨고 약진을 했듯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의미다. 조급하게 복귀 선수들을 풀가동시키는 것보다는 인내를 갖고 단계별로 투입 시기와 부하 정도를 고려하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만년 꼴찌 한화가 연일 극적인 승부를 펼치자 스포츠팬들은 한화의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과 TV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화는 4월까지 홈경기 평균 관중 수 7611명을 기록해 지난해(7424명)에 비해 약 200명 정도 증가했다. 한화가 관중몰이에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방송사들도 한화 효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화는 4월2일 잠실 두산전, 4월10~11일 사직 롯데전, 4월14일 대전 삼성전 등에서 시청률 2%를 넘겼다. 지난해 프로야구 중계 최고 시청률은 1.900%(6월13일 KIA-롯데전)였다. 개막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해 최고 시청률을 밥 먹듯이 갈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팬들이 한화의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매 경기 치열한 혈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쟁취하기 때문이다. 과거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bonehead play, 미숙한 플레이)를 연발하며 자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팬들은 한화의 최근 모습을 ‘마약’에 빗대고 있다. 끊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마약 야구’ ‘마리한화’(마리화나에 빗대 만든 신조어)라는 별칭까지 지어줬다. 김성근 감독도 전에 없던 짜릿함을 느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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