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밥값’, 김영춘의 ‘담쟁이’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6.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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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어느 날 밤,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서울대 로스쿨 조국 교수가 시를 한 편 올리고 있다. 정호승의 시 <밥값>이다. 그때서야 조 교수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에 참여한다는 보도가 생각났다.

어머니 /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 아무리 멀어도 /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탄핵’ 바람을 타고 한 번 다수당이 되었던 경험을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새정치연합의 역사에서 승리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것을 진단하고 치유하며, 수술도 해야 하는 일이 혁신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조 교수의 몫이다. 그가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비장하게 다짐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호승의 시를 읽고 있는 조 교수의 모습은 10년 전 같은 자리에 서 있던 국회의원 김영춘의 얼굴과 겹쳐진다. 2005년 가을, 열린우리당이 선거 패배의 충격을 정리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선거 패배 후 세리머니의 출발이었다. 첫 회의가 열렸다. 위원들 앞으로 마이크가 옮겨갈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작렬했다. 초선 국회의원, 김영춘의 발언 차례였다. 그가 품 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낸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 도종환의 시 <담쟁이>였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조국이 ‘지옥’이라고 부른 것이나, 김영춘이 ‘벽’이라고 한 것은 새정치연합이 처한 암담한 현실이었다. 이번에는 그곳을 벗어나거나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0년간, 아무런 감동 없이 되풀이되는 혁신 세리머니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새정치연합이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방안을 몰라서가 아니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진단과 처방들이 책상 서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도종환의 시 <담쟁이>를 읽던 청년 김영춘이나 정호승의 시 <밥값>을 마음에 새기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선비 조국의 맑은 마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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