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의료원에 돈만 벌라고 해선 안 돼
  • 강청희│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
  • 승인 2015.06.24 17: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익성보다 공공보건 기능 강화에 초점 맞춰야

지난 5월20일 메르스 최초 확진자 발생 이후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메르스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메르스 확진자는 연일 늘어나 6월19일 기준 166명에 달하고, 격리자는 전날 6700여 명에서 조금 감소해 5900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사망률은 14%를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중동 국가 외에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가 됐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원인으로 정부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공의료 전달 체계의 역할 실종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메르스 사태로 본 공공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향후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영리 추구’ 압박에 시달리는 의료원

메르스가 한국에서 빠르게 확산된 것은 환자들의 상급 병원 이용 관행과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및 응급실 과밀화 현상 때문으로 많은 전문가가 분석하고 있다. 다수의 확진 환자가 감염 초기 단계에 자의에 따라 다양한 이동 수단을 이용해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했고, 대형 병원 환자 쏠림과 응급실 과밀화 현상이 메르스에 대한 감염 관리를 어렵게 만들어 초기에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메르스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서울 강남구 보건소. ⓒ 시사저널 최준필

그렇다면 왜 환자들은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고, 대형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된 것일까. 이는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환자들의 두려움과 이를 해소해주고 행동 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 보건소를 포함한 지방 의료원 등 공공의료 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건소는 지역 보건 당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메르스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지역 보건 당국의 역할은 해당 지역의 의료 자원을 연계·조정·지원하고, 관리·동원해 지역사회 전체 역량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에서 보건소는 지역의 핵심 의료 자원인 병·의원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 기능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보건소는 메르스 의심 환자를 병·의원으로 떠넘기는가 하면, 모든 역량을 메르스 확산 방지에 쏟아야 할 상황에서 일반 진료를 계속하는 비정상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지방 의료원 역시 메르스 사태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다수 지방 의료원이 메르스 사태에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지방 의료원은 그 기관의 설립 목적상 공공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민간 의료기관이 없는 의료 인프라 취약 지역 주민에게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추구하는 효율성 가치는 지방 의료원에도 적용돼 대다수 지방 의료원은 영리 추구에 대한 강요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소 역할·기능 재설정해야

수익성이 낮은 지방 의료원은 더욱 위축되고,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역량을 갖추는 데 신경 쓰지 못하고 폐쇄를 막기 위해 수익성 목표에만 집중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지방 의료원은 수익 추구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수익성 추구 압박은 지방 의료원이 봉착하고 있는 공익적 적자와 의료인력 수급 곤란, 시설 낙후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지방 의료원이 메르스 사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동일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앞서 제기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공공의료 전달 체계에 대한 전면적 재구축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보건소의 경우 지역 보건 당국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역할과 기능을 재설정해야 한다. 지역 보건의료 사업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진료 기능만 남기는 방향으로 일반 진료 기능은 축소하고, 공공보건 분야 기능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일반 진료 기능 축소는 보건소가 지역 보건 당국으로서, 지역 병·의원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선결 조건이다. 보건소의 일반 진료 기능은 축소하고, 지역 의료자원을 총괄적으로 기획·조정·연계·관리해 지역 전체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건소의 역할 재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선심 행정의 도구화가 되지 않도록 지방자치단체, 행자부 직속의 기관 개념보다 보건 사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복지부 산하 기구로 중앙 관리 체계 개편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보건소의 활동 내용이 재설정되려면 보건소 업무 평가 체계도 전환돼야 한다. 즉, 보건소 내원 환자의 진료 성과 향상에서 지역사회 전체 환자의 진료 성과 향상으로 평가의 개념이 전환되어야 한다. 예컨대 보건소 내원 고혈압 환자의 등록 관리율 향상이라는 현행 평가 체계는 향후 지역 전체 고혈압 환자의 관리율 향상으로 전환돼야 한다. 만약 이런 방향으로 보건소의 역할이 재정립된다면, 대한의사협회와 지역 의사회가 적극 협력할 것이다.

지방 의료원의 경우 수익성 위주의 평가를 지양하고, 공공의료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방 의료원은 메르스와 같은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할 때 그 역할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방 의료원은 감염병 및 질병 관리 예방이 주요 사업이고, 민간 의료기관이 담당하기 곤란한 보건의료 사업을 운영 목적에 포함하고 있어서 정부의 지시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격리와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상과 시설 등을 최우선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지방 의료원의 격리병상과 음압시설 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지방 의료원의 상당수는 이들 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의료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방 의료원이 공공의료 제공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려면 수익성 추구가 아닌 지방 의료원의 공공적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향후 메르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정부의 방역 체계 개선과 의료 전달 체계 정상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