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또 시끄러운 집안싸움 터졌구나"
  • 이지호│일본 통신원 (@)
  • 승인 2015.08.03 14:33
  • 호수 9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벌가 경영권 다툼, 일본 사회에서 조롱거리 부각

‘롯데 왕자의 난?…신격호 대표이사 전격 해임’(조선일보 7월29일자), ‘롯데 ‘동주 쿠데타’ 실패…신격호 퇴진’(한국일보 7월29일자), ‘94세 아버지 업은 장남 ‘신동주의 반란’…1일 천하로 끝나’(중앙일보 7월29일자).

롯데가(家)의 경영권 승계 다툼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기사 제목들이다. ‘쿠데타’ ‘왕자의 난’ 등 정권이나 왕권 다툼에 비유되고 있다. 한국에서 거대 재벌 기업 롯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롯데가 내부에서는 연로한 신격호(94·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 총괄회장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신동주(61·일본명 시게미쓰 히로유키)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60·일본명 시게미쓰 아키오) 한국 롯데그룹 회장 등 형제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롯데가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승계 다툼은 한·일 양국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의 인터뷰가 실린 7월30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 연합뉴스

일본에서 롯데 이미지는 ‘야구팀 가진 제과회사’

그야말로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언론에서는 관련 기사가 실시간으로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반면, 일본 언론은 이번 사태를 차분하게 사실관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경제 전문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월29일, ‘롯데 시게미쓰 일족의 난’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태의 내막을 다뤘다. 이 신문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일행의 일본 입국부터 신 총괄회장의 대표권 박탈에 이르기까지의 전후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매체는 “롯데 그룹에서 골육(骨肉)의 다툼이 표면화됐다”면서 “향후 초점은 주주총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서 “신 전 부회장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롯데 형제 싸움에서 차남이 형의 반란을 제압하고 승리했다. 더불어 아버지의 대표권도 박탈했다”고 보도했고, 산케이신문은 ‘롯데 해임된 장남, 쿠데타 실패? 창업자 대표권 잃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밖에도 모든 일본 언론이 이번 사태를 한국발 소식을 곁들여 보도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보도에는 다소 온도 차가 있다. 이는 한·일 간 롯데의 위상과 이미지 차이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1922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신 총괄회장은 1941년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48년 도쿄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세웠다. 초창기 일본 롯데는 껌을 제조해 판매했는데, ‘스피아민트 껌’ ‘그린 껌’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1959년에는 ‘오쿠치노 고유비토, 롯데(입속의 연인, 롯데)’라는 선전 문구를 대유행시키면서 전국구 제과 브랜드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지금도 ‘껌’을 비롯한 제과업은 일본 롯데의 핵심 사업이다. 롯데 하면 일본인들은 여전히 ‘껌’을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롯데는 제과업체 이미지가 강하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6월, 일본 롯데에 대해 “야구팀을 가진 제과회사라는 인상”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롯데는 건설·호텔·유통 사업으로 확장된 거대 공룡 재벌 기업이다. 롯데의 이미지는 한·일 간 간극이 클뿐더러, 위상도 다르다. 일본 언론이 롯데가의 ‘집안싸움’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도 한국과 같은 ‘뜨거운(?)’ 반응이 없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월30일자 조간신문에 신동주 전 부회장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진에 대한) 해임 요구는 묵살됐지만, 곧 열릴 주주총회에서 주주로서 임원 교체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롯데가의 형제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월 롯데홀딩스 대표 자리에서 해임됐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진행하던 투자 안건이 예산을 초과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손해액은 수억 엔 정도였지만,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사장으로 추정되는 자가 왜곡된 정보를 아버지께 전달했고, 영구 추방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밝혔다. 신 총괄회장이 이번에 역으로 신 회장의 해임을 요구한 데 대해서는 “중국 사업을 포함한 한국 롯데의 실적 부진을 아버지께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신 회장에게 일본 롯데그룹 임원직에서 물러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의 이 같은 지시에도 불구하고 신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신 총괄회장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본으로 직접 찾아간 것이라고 신 전 부회장은 설명했다.

롯데 후계자 분쟁, 일본 사회의 차가운 시선

이 같은 인터뷰 기사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인터뷰 기사 하단에 적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해설’ 내용이다. ‘빈약한 거버넌스 노출’이라는 제목의 해설란에서 이 신문은 신 총괄회장의 독단 경영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소동은 두 아들이 아버지를 서로 자기 편으로 삼으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며, 그 탓에 그룹이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 한 사람의 의지로 경영이 좌지우지되는 롯데의 기형적 기업 지배구조를 꼬집은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이 같은 지적은 롯데를 일본 국내 기업으로 보고 있기에 가능한 비판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 재벌가의 후계 다툼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아사히신문 등 일부 일본 언론의 롯데 관련 기사에서는 삼성·현대 등 한국 재벌가에 유난히 이러한 후계자 다툼이 많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인들도 “또 한국 재벌가에서 시끄러운 집안싸움이 터졌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본 사회에 혐한(嫌韓) 붐이 일어나면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땅콩 회항’ 사건 이후에는 한국 재벌가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높아졌다. 가족 중심 경영을 펼치는 한국 재벌기업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족벌경영의 폐해, 후진적 경영 구조 등 한국 재벌가의 문제점이 이번 롯데가의 집안 다툼으로 다시금 일본 사회에서 조롱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