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박 대통령이 서다니···”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9.0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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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상회담에 초조해진 김정은, 고립 탈피 위한 국제무대 데뷔 시기 관심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지금의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가 이 격언을 실증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전통적 혈맹 관계인 북한과 중국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정상회담을 한 차례도 하지 못한 데 비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6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중국의 전승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시 주석 옆에서 중국군을 사열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석하지 않고 최룡해 비서가 참석했지만, 외곽에 자리 배치를 받았다.

중국은 우리와 같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고 항일 무장투쟁을 함께했다.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폈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우방이었지만, 2차 대전 종전 이후 냉전 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적대국이 됐다.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으로 한국과 중국은 총부리를 겨눈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한·중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과 반비례해 북·중 관계는 소원해지고 있다. 한·중 수교 교섭 당시 김일성 주석이 북·미 수교와 함께 한·중 수교가 이뤄져야 한다며 한·중 수교 시기를 조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이를 거절하고 한·중 수교를 단행했다. 이에 격분한 북한은 ‘중국도 믿을 수 없다’며 개혁·개방을 본격화하는 중국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생산력 발전에 주력하던 중국은 한국의 산업화 경험을 전수받고자 수교를 서두르고 경제교류를 적극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중 의존 구조’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공세적으로 편입한 중국은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G2’ 국가로 ‘화평굴기(和平?起)’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과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형성한 중국은 세계 문제에서 대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바뀌고 있다.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등에 중국이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도 ‘신흥대국’으로서 국제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편입한 것을 두고 ‘호떡집 간판을 내걸고 피자를 파는 것과 같은 격이다’는 말이 있다. 이미 중국은 경제적으로 사실상 자본주의 국가다. 사회주의 정치제도는 중상주의 발전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개발독재 체제’에 불과하다. 지금의 중국은 자본가가 공산당원이 될 수 있는 시대로 변했다.

전승 70주년 열병식에 전통적인 혈맹 북한을 제쳐두고 박 대통령이 시 주석 옆에 자리한 것은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전진기지인 셈이다. 중국의 한국 중시 정책은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 체제에서 한국을 분리시켜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안보적으로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이중 의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잘 펼쳐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한국이 처한 이중 의존 구조를 반영한 것이다.

1954년 10월1일 김일성 북한 주석(왼쪽)이 마오쩌둥 중국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전승절 이후 북·중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도

항일 무장투쟁의 빨치산 전통을 정권 정당성의 근거로 해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한 북한 정권으로서는 중국에서 개최하는 전승절 행사에 최고 지도자가 참석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집권 4년 차가 됐지만 지금까지 외국 정상들과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도 갖지 않았다. 지난 5월 러시아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중국 전승절에도 김 제1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과연 그가 어떤 나라와 첫 정상회담을 가질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은 공개성·투명성·신속성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은둔 통치’를 해왔던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공개 활동을 활발히 해온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굳이 피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정치 경험이 일천한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이 내부 권력 공고화에 주력하느라 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중국과 가까운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군부 측근 실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의 주된 관심은 대내 권력 공고화다. 3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은 대내 권력을 공고히 하고 정치 경륜을 쌓은 다음에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다음으로, 김정은 정권이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적극 동참과 한국 중시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핵 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 관계에서 찾고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 북·미 적대 관계가 해소되지 않으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한국 등과 ‘북핵 불용(不容)’의 원칙을 공유하면서 제재와 압력에 동참하고 있다. 생존 전략 차원에서 핵이 필요하다는 북한과,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의 빌미가 된다는 중국의 주장이 충돌하면서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이 전승절 행사를 치르고 나면 북한을 달래기 위한 외교 노력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북·중 정상회담이 추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끝으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하고 다른 나라와 정상회담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정신’에도 맞을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로 촉발된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킨 남과 북이 ‘8·25 합의’를 잘 이행한다면 남북정상회담도 추진할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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