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안 갔는데, 한국이 왜 가?”
  • 유재순│일본 JP뉴스 대표 (.)
  • 승인 2015.09.09 16:20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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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아베 정부, 산케이 내세워 ‘한국 때리기’…박 대통령 전승절 참가에 노골적 불쾌감

지난 8월31일,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게재된 장문의 기사 하나가 한국 정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산케이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정치전문위원이 ‘미·중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타이틀로,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정부 그리고 한국 국민들을 이씨 조선 시대에 빗대 비하하고 한껏 조롱한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사대주의가 일관된 외교’ ‘민비를 둘러싼 조선 도착사(倒錯史)’ ‘비꼬는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3개의 소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작성했다. 여기서는 일본인에게 시해를 당한 명성황후를 굳이 비하하듯 ‘민비’라고 호칭한 채,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대주의라는 ‘민족의 나쁜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며 ‘민족의 DNA’까지 거론하는 막말 행태를 보였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기사가 수많은 한국 관련 보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한국과 박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작심하고 썼다는 데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8월2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부통령과의 회담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EPA 연합

“일본 3류 신문을 한국이 일류로 키워준 꼴”

산케이신문은 산업경제신문의 약자로 1933년 창간됐다. 경제 전문지다 보니 판매부수는 그리 많지 않다. 조간 161만부, 석간 52만부를 발행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에서 요미우리신문은 956만부, 아사히신문 743만부, 마이니치신문 333만부, 닛케이신문이 277만부다. 산케이신문의 경우, 실제 일본 정부 협력 공기관의 정기구독자를 제외할 경우 실제 구독자 수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만큼 스스로 구독 신청을 해서 산케이신문을 읽는 일본인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신문 위상 또한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 닛케이에 이어 여섯 번째 순위에 해당한다. 그만큼 이 신문이 가지는 일본 내 사회적 영향력도 미미한 편이다. 판매부수도 공식적으로는 160만부지만 실제 팔리는 부수는 훨씬 더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일반 스포츠신문들이 180만부에서 200만부 사이를 웃돌고 있다고 본다면, 산케이신문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산케이신문의 성격은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친미 보수, 반공주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일간 매체로서는 요미우리신문과 성향이 비슷하다. 역대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와서 산케이신문의 논조가 상당히 극단적으로 변했다. 특히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와 중국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난타’를 해대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업적인 전략에서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을 때리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른바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산케이신문은 이미 그 단맛을 몇 번 보았다. 실제 한국 특파원을 지낸 산케이신문 기자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우린 오히려 한국에 고맙다고 해야 한다. 한국 덕분에 3류 신문인 산케이가 세계적인 일류 신문으로 격상되었다. 가토 다쓰야 기자의 박 대통령 스캔들에 대한 기사는 사실 우리들도 몰랐다. 인터넷판에 올라왔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솔직히 그때 한국에서 그렇게 크게 안 떠들었으면 극히 일부 사람들만 읽고 그대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산케이 기자인 우리도 모르는 기사를 한국에서 크게 띄워주고, 나중에는 세계 유수 언론 매체가 가토 기자를 언론 자유의 전사처럼 영웅시하고 중요 뉴스로 다뤄주면서 그야말로 산케이는 앉아서 수십억 엔의 홍보 가치를 얻은 셈이다. 이번 기사도 그런 차원이다.”

이 같은 연장선에서 이번에 노구치 히로유키 정치전문위원의 기사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이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우리도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안 갔는데 한국이 왜 가? 상당히 불쾌해! 바로 이런 것이다. 솔직히 미국이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간 일본이 오히려 더 굴욕적인 사대주의에 젖어 있는 건데 말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나 우익들은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왜 극도로 경계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일부나마 지난 8월14일 발표한 아베 담화문에 들어 있다. 원래 아베는 중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면 아래서 양국이 서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고, 담화문에도 5~6차례 중국을 직접 거론하면서 사과를 하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를 나열할 때 단 한 차례 거론했다.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단 한마디에 아베는 중국 방문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베로서는 대단히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지난해 8월1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혐한 비즈니스’에 뛰어든 산케이신문

9월3일 전승절 행사가 펼쳐지는 시점에도 일본 TV에서는 정치평론가들이 게스트로 나와 시진핑 국가주석 옆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국가 정상이 누구냐를 놓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시진핑 부부 바로 옆에 박 대통령이 서 있는 장면이 TV 화면에 몇 번이고 클로즈업됐다. 이래저래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일본 정부와 보수파들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비록 전략적이라 할지라도 박 대통령에 대해 융숭하게 대접하는 모양새를 보고 그 분노가 한껏 솟구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 정부와 언론 보도의 분위기다. 그렇게 한국과 박 대통령이 싫으면 관심을 끊으면 간단할 텐데, 오히려 박 대통령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더 트집을 잡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치인들은 보수 우익들을 결집할 호재로, 산케이신문 같은 우익 매체는 자신들의 미미한 ‘존재 가치’나 ‘위상’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철저히 한국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적자생존의 전략 차원에서 일부러 왜곡 보도 등 최대한 자극적인 표현으로 한국 때리기를 해 상업적 이득을 얻겠다는 것이다. 즉 한국 때리기가 돈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 일본에서는 ‘혐한(嫌韓) 비즈니스’라는 말이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한국 때리기가 인기 상품이 되고 있다. 한국을 때리는 기사가 나가면 주간지는 5만~10만부가 더 나가고, 단행본은 보통 20만~30만부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다. 이 같은 현상은 벌써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산케이신문이 이에 뒤늦게 편승한 것이다. 이 신문은 과거 다소 우익 성향의 논조를 띠긴 했지만, 그래도 일간지라는 기본적인 품격은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그 품격조차 땅바닥에 내려놓은 듯, 물불 안 가리고 혐한 비즈니스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혐한의 단맛을 본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우익 성향 매체들의 한국 때리기 보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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