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든, 홍명보든 데려올 수만 있다면…
  •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08 18:02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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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지도자 영입에 혈안 된 중국 프로축구…상대적으로 K리그는 위축
청두 톈청의 이장수 감독은 5개 팀을 연이어 맡으며 중국 리그에 진출한 국내 지도자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 EPA연합

지금 중국 대륙을 흔드는 대표적인 콘텐츠는 축구다. 유럽이 부럽지 않은 뜨거운 경기장 분위기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모여들며 중국 축구는 업그레이드를 이뤄냈다.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은 열렬한 축구팬으로 해외 순방 때마다 축구장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영국을 방문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안내를 받으며 프리미어리그의 신흥 강호인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찾았다.

중국 축구 ‘큰 덩치에 비해 좁은 인재풀’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를 따르지만 정치 체제는 사회주의인 상황에서 돈은 최고 권력자의 성향을 좇을 수밖에 없다. 최근 5년 사이 중국의 재벌들은 축구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투자는 곧바로 성과로 이어졌다. 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인 슈퍼리그의 광저우 헝다는 10월22일 아시아 클럽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광저우는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한다는 전북 현대와 비교해도 3배가 훌쩍 넘는다.

하지만 호황에 휩싸인 중국 축구도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인적 자원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자국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고, 지도자의 능력도 탁월하지 않다. 그래서 중국 축구에 투자되는 돈은 외국의 인력으로 향한다.

중국 축구는 한국 축구에 대한 경외감과 질투를 동시에 갖고 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나라가 월드컵 등에서 월등한 성과를 내는 것을 부러워하며 한국 지도자들을 영입했다. 1990년대부터 김정남·박종환·차범근 등 유명 지도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가장 성공한 사례는 이장수 감독이다. 충칭 리판, 칭다오 중넝, 베이징 궈안, 광저우 헝다, 청두 톈청 등 5개 팀을 연이어 맡으며 성공 신화를 쓴 그는 현재도 중국 축구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인 지도자로 꼽힌다.

최근에는 박태하 열풍이 불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했고, FC 서울 수석코치를 거쳤던 박태하 감독은 올해 초 중국 2부 리그인 갑급 리그의 옌볜 창바이산을 맡았다. 조선족 자치주를 연고로 하는 작은 클럽인 옌볜은 박 감독의 지도 아래 2부 리그에서 우승했다. 중국에는 2부 리그 팀인데도 연간 800억원가량의 예산을 쓰는 허베이 화샤 싱푸 같은 클럽이 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조직력을 중심으로 시즌 초부터 돌풍을 일으켜 결국 우승과 1부 리그 승격을 모두 일궈냈다.

‘옌볜의 히딩크’로 불리는 박 감독의 성공은 중국 축구계에 신선한 자극이 됐다. 옌볜은 재정 규모가 갑급 리그에서도 최하위권이라 당초 3부 리그 강등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옌볜에 밀려 2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1부 리그로 승격한 허베이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던 세르비아 출신의 라도미르 안티치감독을 시즌 중 경질하기도 했다. 허베이는 지난 7월 전북 소속으로 K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 출신 공격수 에두를 이적료 50억원을 포함해 총액 120억원을 들여 영입해 국내에 충격을 준 팀이었다.

예산 규모가 3분의 1 이하인 K리그 팀들이 중국 클럽들을 꺾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善戰)한 데 이어, 2부 리그에서도 박 감독의 옌볜이 효율적 성과를 내자 중국 대륙에서 한국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반등했다. FC 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1부 리그 중위권 팀인 장수 쑨톈으로부터 현재 받는 연봉의 3배가 넘는 액수의 파격적인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고민 끝에 중국행을 택하지 않았지만, 슈퍼리그 내에서 한국인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상호 전 U-19 대표팀 감독도 2부 리그로 강등된 상하이 선신의 감독으로 다음 시즌 중국 무대에서 데뷔한다.

중국 축구계의 적극적인 러브콜 속에서 홍명보 감독은 신중하게 대응 중이다. ⓒ EPA연합

현재 중국 축구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인물은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한 후 대표팀에서 물러나 1년 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홍 전 감독은 현장 복귀를 타진 중인데, 중국과 일본의 클럽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국제적 인사인 데다 월드컵에서는 실패했지만 U-20 월드컵 8강, 올림픽 동메달 등의 실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베이징 궈안, 광저우 푸리, 항저우 뤼청, 허베이 화샤싱푸 등이 홍명보 영입전에 뛰어든 상황이다.

막대한 지원, 그만큼 치르는 대가도 커

홍 전 감독은 중국 클럽들의 관심과 슈퍼리그라는 무대에 대한 호기심을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 축구가 지닌 양면성 때문이다. 거액의 연봉을 앞세워 유명 지도자를 데려오지만, 성적이 부진할 때는 쉽게 버리는 게 또한 중국 축구계의 특징이다. 이장수 감독은 “중국에서는 감독과 계약을 할 때 3연패를 하면 동의 없이 경질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 시즌만 해도 슈퍼리그에서는 17번의 감독 교체가 이뤄졌다. 최용수 감독 역시 “유혹이 컸지만 지도자가 성적을 내려면 팀의 믿음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중국으로 가지 않은 까닭을 설명했다.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치르는 대가도 어마어마한 셈이다.

인적 자원의 지속적인 유출이 심화될수록 K리그는 열세에 몰리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K리그는 선수에 이어 지도자들까지 애써 키운 뒤 인근 리그에 뺏기는 ‘셀링 리그’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리그의 독보적인 1강으로 꼽히는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 역시 최근 중동과 중국 클럽의 러브콜에 흔들렸다. 최감독은 “지금처럼 K리그가 축소되고 위축되면 국제 경쟁력이 약해진다. 자연스럽게 국가대표팀 전력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인 지도자를 향한 호평이라는 ‘빛’만큼 국내 축구계의 ‘그늘’도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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